왜, 어디서, 무엇을 이딴 건 중요치가 않았다.
벗들과 '함께'라는 이유 하나면 충분했다.
방년 17세의 또래 나이에는 원래 그런 거였다.
누군가가 난데없이 독립유공자 안희제 선생님의 생가를 가보자고 그랬다. 의령의 백산이란 곳이라 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스쳐 지나가듯 던진 독립선열에 대한 얘기에 감전이 된 친구였을 것이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순간, 어떤 이는 감동했고 또 어떤 이는 스스로에게 평생의 족쇄를 채우는 순간이기도 했다.
까까머리 소년 다섯은 시외버스를 타고 물어물어 산을 넘고 들녘을 지나 개여울을 건넜다. 오솔길을 만나고 뙤약볕이 쏟아지는 신작로를 걸었다. 어디쯤에 서있는지도 모르는 소년들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적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또렷이 알았고 흔들림이 없었다.
농로변에 거적때기로 대충 덮어놓은 농한 수박을 주먹으로 으깨어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목마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개울보다는 넓고 강보다는 좁은 하천이 발목을 멈춰 세웠다. 기나긴 역사를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흘러온 유곡천이 백산의 땅을 쉬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십리 밖, 의병장 홍의장군이 나서 멱감고 뛰놀았을 고망산 허리를 굽이 돌아온 물줄기가 설뫼마을의 방개봉을 마주한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사공은 오간데 없는 나룻배를 대신한 낡은 뗏마가 낯선 이방인 소년들을 재촉했다. 금세라도 유곡천을 두 동강 내버릴 기세인 굵고 튼실한 밧줄 끄트머리에서 나그네를 기다려왔던 작은 뗏목에 몸을 실었다.
소년이 허락된 땅을 향해 힘차게 밧줄을 당겼다.
논두렁 사이로 난 황톳길 끝나는 곳에 나지막한 초가삼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뒤편의 기와를 얹은 한옥이 있었는지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고풍스러운 초가의 댓돌 앞에 늘어선 소년들이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까까머리를 조아리며 넙쭉 큰 절을 올렸다. 사실은 영문조차 모르고 친구를 따라 강남 간 소년이 태반이었기에 지금도 참배를 했었다는 사실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새까맣게 잊고 있다. 다섯의 소년이 공유한 그날의 시간이 사십 하고도 오 년이 흐른 지금에 유독 나 혼자만의 추억담으로 각인되어 버린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바람결, 햇살, 쇠똥 냄새... 그 어떤 것도 잊히지가 않았다.
(찾아낸 사진;다섯이 아니라 여섯명이네요)
곁에서 다소곳이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백발이 성성하고 아담한 키의 인자한 미소를 띤 노파가 물었다. 어린 너그가 우짠 일이냐고.
아는 거라곤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함자가 전부였다.
큰 절을 올린 이가 스러져가는 풍전등하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어떤 걸음을 걸었고, 무슨 고초를 당했는지 알리도 없었다.
소년 하나가 다짜고짜 백산으로 가자 그랬고, 넷이 쫄래쫄래 따라나섰다 그중 하나는 평생을 빚 진 자가 되어 설뫼 땅에 떨구어지고 말았다.
백산 선생님의 질녀라고 본인을 소개했던 것 같다.
다섯의 빡빡머리 어린 학생들 머리를 오래도록 쓰다듬으면서 계속 같은 말씀을 되뇌셨다.
'기특한 것들, 기특한 것들...'
백산으로 가자고 했던 벗은 물속 깊은 곳에서 세상과 이별을 했다. 백산 땅의 안희제가 아니라, 아호가 백산인 그냥 백산 안희제였다는 사실을 끝내 몰랐을지도 모른다.
기특한 것들, 기특한 것들.
백산 선생의 부름에 이제서야 뒤늦은 대답을 올린다.
선생님,
제가 어떡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날, 잊혔던 날에
제가 설뫼의 땅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