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사전...1

by 김석철




데파라, 문테라.

어제 들었던 말입니다.

모티, 수군푸, 조푸, 짜달바시, 패내키, 허들시리...


나는 되도록이면 사투리랑 순우리말을 많이 써먹으려고 용을 씁니다. 물론, 반드시 사전 검색은 거친 후에 씁니다. 같은 값이면 일상적이면서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는 모르지만 날 것 그대로를 글 속으로 가져옵니다. 운율상, 혹은 단어 자체가 주는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우왁스런 외골수는 단지 '우리 것'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똥고집입니다. 수없는 목숨값과 눈물로 맞바꾸고 지켜온 우리글과 말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의 으뜸 원칙은 '말장난' 치지 말자 입니다. 깔롱을 진다든지 뭔 말인지 해석조차 헷갈리게 빙빙 돌리는 표현은 성격적으로 맞지가 않습니다.

글의 근본은 말, 즉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가 언어인 만큼 전달이 애매하거나 애보다 배꼽이 더 큰 베베 꼬는 표현은 사치, 혹은 깔롱이라고 단호히 말하고 싶습니다. 현학적이니 참신하다느니 하는 기준은 사족입니다. 평범한 우리가 듣고 말하는 언어는 선문답이나 시어가 아닙니다.

'슬랭'이라고 해서 주로 할렘가의 흑인들이 건들거리면서 마치 랩을 하듯 내뱉는 말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사전에서는 '점쟎치 못한, 저급한, 상말' 이렇게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점쟎치 못한과 교양 있는의 잣대는 흑백의 인종적 차이점입니까?문법을 정확히 지키지 않는 언어는 저급한 용어인 겁니까?

한 때 우리말에도 이런 식의 등급을 매긴 적이 있습니다. 각종 자동 한글 맞춤 서비스를 이용해 보면 여전히 사투리는 여지없이 교정하라고 지적질을 합니다. 엄니는 어머니라고 고쳐 써야 한답니다. 엄니, 어망, 오마니, 어마이, 어무이, 옴마, 으메, 옴매...

글을 써보면 어감의 차이를 확실히 느낍니다. 육십을 살면서 나는 글을 쓸 때가 아니면 한 번도 '어머니'라고 육성으로 말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옴마, 친구의 엄마는 어무이 그랬습니다. 지금 이 글도 나중에 맞춤법 검사 눌러보면 죄다 단어 수정하라고 황색경보가 줄줄이 뜰 겁니다. 그럼 저는 그럽니다.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할매, 오데 가는교?"

"문디 자슥, 니가 알면 우짤긴데. 똥 누로 간다, 와!"

화장실 간다고 안 합니다. 해우소는 티브이 광고에서나 들어봤지 살면서 실제 들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잘해야 변소 정도.

칙간, 측간, 구시, 뒤깐, 정낭, 통시, 열에 아홉은 똥간 간다고 그럽니다.

정겹습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엄니는 대번에 그럴 겁니다.

"문디 손이 머를 잘못 뭇나? 안 하던 짓을 하고 자빠졌노?"


할머니, 할매, 할망구, 할마시, 할매탕구, 할마이, 할망, 할이미, 큰아매. 북한은 클마니, 아망이라고도 부른다는데 뒷담화 할 때나 욕을 할 때, 다정히 부를 때나 짜증 날 때 부르는 호칭은 미세하게 어감이 다 다릅니다. 상황뿐만 아니라 누가 부르냐는 대상에 따라서도 틀리니 우리말의 탁월한 우월성은 뭐니 뭐니 해도 압도적인 어휘의 갯수에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십문 칠, 안성맞춤은 방짜유기나 신발 문수에만 그치는말이 아닙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한'것이 표준어라는 통일어입니다.

나는 끝까지 '교양 없는' 갱상도 촌놈으로 살다 죽을랍니다.

상스럽고, 저급하고, 투박하고 거친 언어일 망정 반드시 지켜내야 할 귀하디 귀한 '우리말'을 두고 어디를 가겠습니까.

질펀한 욕지거리일지라도 말입니다.


가시나, 잘 지냈제?

그래, 이 문디 머스마야.

교양있는 사람들의 귀에 이런 무작스런 거시기한 말이 품은 속 깊은 정서가 이해는 될려나?

좋아서 죽겠다는 우리동네 고추친구들의 끈적한 인사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