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씨, 깜짝이야!
하양이의 소행이다. 삼일 연거푸 그랬다.
이틀간은 어디서 물고 왔는지 큼지막한 들쥐랑 생쥐를 문 앞에 패대기쳐 놓더니 아침에는 토실토실 살이 오른 제법 큰 두더지를 생포해 와서는 꼭두새벽부터 냐옹거리고 있었다.
날 때부터 배고픔이란 자체를 몰랐던 노랑이는 매사가 느려터진 만만디 뚱냥이가 되어 굴러 다닌다. 틈만 나면 따땃한 양지녘에서 배를 펑퍼짐하게 늘어뜨린 째 입이 찢어져라 긴 하품을 물거나 아치랑거리며 세월아 네월아 한다. 예리함을 잃은 눈은 흐리멍텅하게 풀렸고 그나마 늘상 반쯤은 감겨 있다. 팔자 늘어진 천하태평의 고양이가 노랭이다. 급기야 얼마 전에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멍청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고양이 체면을 다 구기고 말았다.
반면 출신도 모르는 하양이는 얍삽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종일 촉을 곤두세우고 시빗거리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하는 짓이 마치 동네 달건이 같아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만 새파란 눈에서 쏘아대는 날카로운 눈빛 하나만큼은 살 떨리는 매력이 있어 그나마 참아주는 거다.
얼마나 배를 곯고 살아왔는지 피골이 상접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토끼 같은 짜리 몽땅한 꼬랑지는 태중에 있을 때 애미가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탓이라고 그랬다. 그러니까 태생부터가 기구했던 하양이었다는 얘기다. 젖떼기가 무섭게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오로지 생존 본능 하나에 기대에 독하게 살아남은 녀석이다.
야생에서 기댈 곳 하나 없이 홀로 던져진 하양이는 일분일초가 두려움과 배고픔의 연속이었음은 불 보듯 뻔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번뜩이며 후미진 곳에 파고들어 바들바들 떨었을게 틀림없다. 쓰레기봉투를 헤집고 잔반통을 탐하는 하양이의 생존기는 매 분초가 기적이었는지 모른다. 절대 약자의 위치에 놓인 약하디 약한 야생묘는 가혹한 천형을 달고 났는지 얄궂게도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치명적인 약점이 될 하얀색 마저 뒤집어쓴 채 버려지고 말았다. 치즈냥이나 고등어냥이, 턱시도냥이 할 것 없이 나름의 생존에 유리한 보호색을 장착했지만 새하얀 몸뚱아리는 사계가 설원이 아닌 지형에서는 자칫 무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잉여 존재가 되고 만다. 애미의 선택은 외통수였을 것이다. 약자를 위한 관용은 어디에도 허락되지 않았다.
상반된 기질의 두 고양이가 동거를 시작한 지도 어언 반년이 되었다. 어렵사리 한 걸음씩 다가서더니 시나브로 터줏대감인 노랑이의 영역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말았다.
끽해야 자기 체구 반의 반에 불과한 하양이의 앙칼스러운 기세는 야성을 잃은 노랑이에게는 생소한 두려움이었는지 언제부턴가 바깥으로 겉돌기 시작했다.
손에 든 먹이를 받아먹을만치 경계거리가 허물어졌음에도 하양이는 변함없이 팽팽한 긴장감을 누그러뜨리지를 않는다. 단 한 번도 배를 까보이거나 살갑게 곁을 내어준 적이 없다. 기척만 들려도 쪼르르 한걸음에 달려와 치근대는 모양새로 미뤄봐서는 적어도 해코지는 하지 않을 동료쯤으로 받아들인 듯한데 여전히 츤데레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뼈만 앙상했던 하양이가 반년만에 거짓말처럼 살이 통통히 오른 모습으로 제법 당당한 자태를 갖추었다. 푸석했던 털에 윤기가 돌고 시린 눈빛은 더욱 뇌살적으로 예리해졌다. 사냥감을 향해 어깨를 낮추고 엉덩이를 곧추세우고서 바짝 엎드린 채 긴 시간을 기다리다 한순간 용수철처럼 튕겨나가 거침없이 덮치는 순간은 험한 야생에서 살아남은 포식자의 그 모습 그대로다.
뼛속까지 저민 결핍의 힘, 강렬한 생존 욕구에 더해 날 때부터 사지로 몰린 하양이에게 눌어붙은 체질화되어 버린 결핍의 흔적이다.
노랑이의 영역에 터를 잡은 이후로는 배고픔이나 적으로부터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자그마치 반년이나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노랑이의 먹이를 노략질하고 숨긴다. 끊임없이 사냥감을 찾아 눈을 희번덕거리며 근육에 긴장을 풀지 않는다. 여전히 하양이의 세계는 죽느냐 사느냐 단 둘의 선택지만 주어졌을 뿐이다.
떨쳐내지 못한 터널 시각으로는 내일이라는 희망은 애당초 목록에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여분이 없으니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아량도 결국은 배부름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않나.
노랑이와 하양이는 한 공간을 두 세계로 쪼개어 놓았다.
결핍이란 이름의 평행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