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 시간은 한 시간, 단판 승부.
성에 차지 않는 시답잖은 수가 놓이면 여지없이, 거기에 착점 한 이유라도 있겠지?라는 독백을 빙자한 훈수를 들어야 했다. 허투루 놓일 돌은 반상 361의 교차점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었다. 있어야 할 최적의 자리인지, 왜 하필 그 자리인지 질문부터 하라는 요구였다.
만년 아마 1단의 고인 물 고수 김사장의 바둑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전장에 나서는 마오리족의 전사 같이 늘 진중했고 진퇴에 주저함이 없었다. 팔짱을 낀 채 허리를 한껏 등받이 쪽으로 젖히고서 찬찬히 훑어내리며 판세를 읽었다.
나는 반대로 머리와 몸통을 바둑판이 닿을 만치 앞으로 바짝 내밀고 얼른 내가 둘 차례가 되기만 채근했다. 이미 손은 기통으로 들어가 잘그락 잘그락 연신 바둑돌을 까불댔다.
놓기 전에 생각하는 김사장과 놓고 나서 수습하는 나는 첫수가 놓이기 전부터 이미 승부가 판가름이 나 있었던 셈이다.
쿠사리를 들을 때뿐이었다. 일단 끊고 본다. 박이 터지도록 육박전을 벌이다 보면 만방으로 대마가 죽고 사는지 조차 까맣게 잊고 만다.
사실 김 사장과의 대국 시간 한 시간이면 호적수 친구들과 세 판은 두고도 족히 남을 시간이었다.
형국을 살핀다든가 말을 운용하는 기본적인 전략도 없이 손길 가는 대로 지르고 보는 경솔함은 비단 바둑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매사가 그랬다. 사업을 구상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사안을 두고 줄당기기를 할 적에도 폐석, 요석 구분조차 못하고 사육된 꿩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늘 패자의 자리에 섰다. 줒어 담을 수 없는 말실수로 의도치 않게 상대방을 찔렀다. 한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경솔함은 늘 같은 후회를 되풀이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들 하지만 돌이 놓인 기본적인 이유조차 살펴보지 못하는 내게는 백만 번의 같은 실패가 반복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책 속의 길도 보는 사람이라야 볼 수 있는 거고 그저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길라잡이가 된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이래서 놓이는 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선택의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까워도 반상도 결국은 닫힌 공간일 뿐이다. 시작과 끝, 입구와 퇴로가 있다.
귀와 변, 중앙 어디에 놓이더라도 판을 짜고 포석과 행마, 패와 버릴 돌 등 수많은 선택의 결정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361로 1.74×10의 170승의 갈림길에서도 단 1%의 승률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바둑은 증명해 왔다. 죽으란 법은 결코 없다. 반상의 기적, 지레 제 풀에 돌만 던지지 않는다면 기적은 의외로 자주, 그리고 가까이에 있다.
대추니 곶감이니 어딜 가나 남의 제사상에 꼭 입을 대는 주책들이 있다. 바둑, 장기판 할 것 없이 눈총에는 아랑곳없이 꾸역꾸역 훈수질을 해대는 소갈머리 없는 인간 말이다. 낄낄 빠빠라고 낄 때 안 낄 때, 나아갈 순간과 물러 설 자리를 잘 읽는 것을 소위 '지혜'라고 한다. 틈만 나면 남의 판을 기웃대는 훈수꾼 치고 제대로 된 고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 참나. 오빠! 거기서 똥을 내면 우짜노, 비 쭉대기를 냈어야지!"
망할 놈의 가시나, 내 손에 든 패를 죄다 다 까발린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찰싹 들러붙어, "옴마! 아니 그거 말고,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이 지랄을 한다. 콱씨!
행여 내가 던진 훈수질에 괜스레 상처를 받은 이나, 앞으로 받을 이에게는 사과를 드린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 일차원 단세포 인간이니까 그러려니 여기시고 부디 너그럽게 용서를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