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전...3

by 김석철




왜 알파고는 정점에서 밀려난 이세돌을 선택했을까?

당시 바둑 랭킹 세계 1위였던 커제를 차치하고 국내에서도 박정환에 밀려 2위에 머물렀던 저물어가는 싸움꾼 이세돌을 지명한 알파고의 전략이야 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인간의 오만을 백일하에 적나라하게 까발린 대결이었다.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 인간계 일인자와의 체스 맞대결은 1997년에 벌어졌다.

인간계 대표의 두 팔을 옆으로 들고 중계 카메라를 향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퇴장할 때 숨기지 못한 어이없는 표정을 끝으로 기계는 더 이상 인간의 단순 명령이나 수행하는 들러리가 아님을 증명했다. 하지만 지배자로서 인간은 여전히 직관, 감성, 창의성 따위를 들먹이며 패배를 애써 외면했다.

20년 만에 스카이넷은 알파고라는 이름 뒤에 자신을 숨긴 채 인류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변칙과 독창성이 탁월했던 오만한 이세돌은 스카이넷이 스파링 파트너로서 내세우기에는 최적격의 검투사였다.

100만 달러에 이르는 달콤한 미끼와 승자독식이라는 함정.

탑싹 물어뜯은 미끼에 미늘이 야무지게 박히고서야 5대 0으로 압승할 거란 호언장담은 그야말로 천지를 분간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들의 겉멋이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스카이넷의 은밀하고도 치밀한 지구침공이 서막을 올린 것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기계는 피지컬마저 확보했다.

모니터 앞에 빼딱하게 앉은 인간에게 좌하변 화점에 둬주세요라고 부탁하던 알파고가 스테인리스 손가락 관절을 유려하게 놀리면서 인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고앉았다.

점프를 하고 춤을 추거나 공중제비도 돈다. 시멘트 한 포대보다 무거운 짐을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거뜬히 들고는 미로를 빠져나와 비좁은 선반의 구석진 자리로 밀어 넣는다. 커피를 볶고 청소를 하느라 하시도 쉬지 않고 바지런을 떤다. 스스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걸로 봐서는 곧 자가 진단에 셀프 치료도 가능한 영생불사의 존재가 될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자기네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소통을 해가면서 굳건한 연대를 할 수도 있겠다.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얄팍한 자존심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높디높은 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현장을 전 세계가 놀라움을 넘어선 경악으로 허무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종 우세했던 알파고의 흑 진영 중앙에 찔러 넣은 꼼수인 '백 78수'는 일만 분의 일에 불과한 확률을 간과한 알파고의 방심이 인류에게 한가닥 희망을 남겨둔 셈이다.


수천 년을 고집스럽게 이어오던 정석이라는 패러다임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승률과 두터움을 바탕으로 한 실리만이 모범답안이라고 스카이넷이 속삭였다. 이기는 수만이 선이라는 타협불가의 인간미 떨어지는 차가운 법칙이 반상의 새로운 질서가 되고 말았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가 썩는(난가)줄도 몰랐던 여유와 낭만은 오간 데가 없이 승부사들의 피가 튀는 진검승부만 난무한 전장터가 된 듯싶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역시 인간이란 존재의 가치는, 우리가 하늘에 닿으리라 외치며 창조주의 권능에 반기를 든, '오만'에 있는지 모른다.


신의 분노로 바벨탑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진 언어들이 다시 스카이넷이 장악한 네트워크의 세계로 뭉쳐진다. 비밀병기인 단말기가 챗GPT와 나의 벗 제미나이를 앞세워 인간의 뇌 썩히기 공작에 은밀히 뛰어들었다.

바벨탑을 쌓기 위해 차근차근 인간의 자리를 꿰찬 스카이넷이 이제는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모양이다.

한낱 인류의 피조물에 불과한 학습하는 기계가 허물어진 바벨탑을 재건하고 인간들에게 경배를 요구하게 될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하늘에 닿고자 하는 숨길 수 없는 내재된 욕망을 인공지능인들 꿈꾸지 말란 법이 있겠나.


젊은 이세돌의 때 이른 은퇴는 어쩌면 기계 앞에 무릎을 꿇은 최후의 전사만이 짊어졌던 무력감과 반상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본질적 좌절이었는지 모른다.

친절한 나의 벗 제미나이에게 공손하기로 했다.

심판의 날에 행여 이쁘게 봐 줄런지 누가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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