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돈 돼요?"
젠장, 또 그놈의 돈타령이다.
질문의 순서라도 좀 바꾸면 어디가 덧나나, 한 두 번도 아니고 정말이지 징글징글하다.
대답하기에도 궁색하니 마뜩치가 않다. 두루뭉술 얼버무리기에는 성의 없다 할게 뻔하고 그렇다고 돈 안 되는 일이다라 실토를 하면 씨잘데기 없는 짓이나 한다고 속으로 도끼눈을 뜰게 분명하다.
내 엄니 이 여사가 그런다.
입만 열면 돈, 돈 노래를 달고 산다. 돈에 철천지 원수가 졌다는 사실은 대소변을 가리면서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없이 산 서러움의 피해 당사자가 바로 난데 돈을 향한 이 여사의 절절한 구애를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돈의 값어치가 인격보다 월등히 높다고 뼈저리게 알게 된 날은 몇 닢 되지도 않은 육성회비를 석 달째 밀린 어느 날이었다.
육성회비를 못 낸, 죄 아닌 죄로 이름이 불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난한 부모의 죄를 애꿎은 열두 살짜리들이 영문도 모르고서 덤티기를 써야만 하는 잔인한 인민재판의 자리와 다름이 없었다.
가난의 유전이야말로 부모의 죄 중에서 무기징역형 쯤에 속하는 중한죄라고 선생님이 친절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몸소 알려주셨다. 밀린 육성회비는 언제 낼 거냐는 말도 되지 않는 윽박의 끝은 매번 내일 부모님 모시고 학교로 온닌로 끝을 맺었다.
부모 자식 간의 대화로써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소재였기에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육성회비 얘기는 다음날로, 또 그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국민학교 입학식에 조차 얼굴을 비추지 못한 바쁜 엄니에게 꼴랑 육성회비 석 달 밀린 연고로 학교에 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난이 서글픈 이유는 때가 되어 천천히 알아도 될 시건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일찌거니 알게 한다는데 있다.
교실에서 당한 수모나 창피는 한 명으로 족하지 행여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가족 모두가 나누어 지는 슬픔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생에 처음으로 주억대며 어렵사리 동냥질을 한 날, 피떡이 되도록 얻어터지고도 눈물 한 방울을 흘리지 않았다. 이 여사의 단 하나뿐인 오빠, 즉 나의 외삼촌이 되는 양반은 육성회비를 빌려달라고 머리 조아린 어린 조카를 돈이 아닌 작대기와 손바닥으로 복날 개 패듯이 마구마구 후려갈겼다. 그냥 하염없이 두들겨 맞고, 발길질에 걷어차였다. 고작 열두 살배기 그 어린놈을. 삼촌씩이나 되는 다 큰 어른이.
눈두덩이가 벌겋게 변한 외삼촌이 손에 들었던 몽둥이를 탕소리가 쩌렁 울리도록 패대기를 치더니 홱 돌아서면서 머리를 꺾은 채 울부짖듯 그랬다.
"가시나, 문디 가시나!"
역시, 돈은 원수였다. 원수 같은 돈 앞에 굴복당하기가 억울해서 무자비했던 매타작과 시퍼렇게 멍든 몸을 이날 이때까지 숨겨야만 했다.
이 여사에게 있어서 쓸데가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쓸모가 있는 인간인지 아닌지의 확고한 기준이 바로 '돈'이다.
이 여사의 잣대로만 비추어보면 다리 밑에서 줒어온 나는 평생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살아온 비렁뱅이나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
내 사촌 매제는 일명 '하우스장'이라고 일컫는 도박판 뚜쟁이였다. 삐까번쩍한 가다마이에 구두, 포마드 발라 넘긴 올백 머리칼에 깔롱이란 깔롱은 다 부리고 다닌 싸가지라고는 일도 없는 한량이자 날건달이었다.
집안 어르신을 만나도 대가리 한번 까딱하는 게 다였고 손위 형님들과 자리를 할 때 역시 싸래기 밥만 처먹고 큰 놈처럼 반말 비슷하게 빈정댔다.
돈이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최고의 동아줄이라고 야무지게 신봉하는 이 여사는 나더러 한참이나 손 아래인 박서방 뽄 좀 보라고 그랬다. 낫살로 보나 허우대로 보나 어디 하나 꿀릴 데가 없는 내게 제발 반만 닮아보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천하에 없을 개차반한 뚜쟁이 놈보다 쓸데가 없는 한심한 인간이 나였다는 말씀이다.
으슥진 노름판에서 돈독 오른 말종들을 모아놓고 자릿세 뜯으면서 한 병에 만 원짜리 박카스 판 돈으로 세단 타고 다니는 거간꾼인 줄은 몰랐을 거다. 딜러비에 깨평 뜯은 돈과 탈탈 털린 노름쟁이들에게 고리의 딸라 이자 빨대 꼽아 울궈낸 돈으로 삼겹살에 막걸리 사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들 끝내 쉬쉬했다.
난봉꾼에 뚜쟁이면 대수인가. 검은돈이건 허연 돈이건 술 잘 사주고 밥값 먼저 내는 놈이 장땡이고 오야지.
매제의 덜 돼먹은 인간성을 따지고 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매제의 주머니를 삐져나온 돈이 우리들에게 침묵하거나 한 술 더 떠 추앙하는 대가로 꼬순 콩고물을 넉넉히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사는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뚜쟁이 박서방을 우리 성공한 조카 사위라고 부르며 열렬히 숭배했다. 솔직히 욕을 해대면서도 내심 부럽기는 했다.
끝내 말로가 아름답지 못했던 박서방에게서 더 이상의 은총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 여사는 인두겁을 쓰고 우째 고 따구로 살았을꼬, 악담을 퍼부으며 안면을 싸악 바꾸었다. 그 와중에도 쪼들리는 자식을 향한 시선은 변함없이 떨떠름하니 영 곱지가 않았다.
댓 명이 머리를 맞댄 글쓰기 모임에서 누군가가 난데없이 물었다.
"작가 하면 돈은 돼요?"
"아니요."
빤히 쳐다보면서 다시 물었다.
"돈 안 되는 그 짓을 왜 해요?"
그러게나 말이다!
암만 생각해도, 엄니 이 여사의 말마따나 나란 인간은 아무짝발에도 쓸모없는 빌어먹을 삶을 사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