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판을 최종적으로 접을 묵언의 권리가 패자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바둑을 단순 유흥이나 놀이 정도로만 여기지 않고, 정심과 부동심을 연마하는 '기도'라고도 했습니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풍류랄까 멋들어짐은 단연코 '복기'의 시간입니다. 반성과 경우의 수를 수담으로 함께 나누는 복기는 승자도 패자도 의미가 없습니다. 상대방의 악수는 나의 반면교사가 되고, 상대가 둔 훌륭한 한 수는 나에게 큰 가르침이 됩니다.
살다 보면 부지기의 패배와 승리를 경험합니다. 조롱하고 우쭐댑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분루를 삼킵니다. 승자는 기억되고 패자는 잊힙니다. 그러나, 삶의 경주는 싫든 좋든 다시금 반복이 되어야만 하고 또 어김없이 되풀이됩니다. 오늘의 좌절, 환희가 내일도 이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음 사는 게 얼마나 분통 터질 일이겠습니까.
'복기'는 한판 속에서 엇갈렸던 좌절과 희열을 곱씹게 만드는 중요한 시간이자 바둑이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면서도 흔들림 없이 품격을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티브이 바둑 해설자로 한 때 유명했던 이에게 실험을 했었습니다.
단명국을 빼면 바둑 한판에 나누는 수는 평균 100에서 120수, 쌍방이 교차로 한 번씩 착점을 하니까 200에서 250수가량이 됩니다.
마구 흩어놓고 첫수부터 수순에 따라 진행을 합니다. 완벽하게 옮겨 놓았습니다. 도중에 말을 걸고 집중력을 분산시켜도 문제없이 해결해 냈습니다.
두 번째 숙제로는 기초도 모르는 쌩초보 둘이 엉망진창으로 둔 바둑의 복기가 주어졌습니다. 250수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해설자는 어이없게도 20여 수쯤에서 머리를 절절 흔들더니 쓴웃음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대실패였습니다.
정석과 후루꾸의 차이, 질서와 무질서의 간격이 만들어낸 천양지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삶에서 경중을 떠나 기본, 정석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가를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가벼이 여길 행마는 없다는 교훈은 바둑이건 인생길이건 다를 바가 없음이 증명된 셈입니다.
무한백수로 엎드려 빈둥대다 난데없이 바둑의 복기가 떠오른 건 한심한 지금의 내 꼬락서니 때문입니다. 내게 남겨진 시간은 넉넉지가 않은데 하릴없이 방구석에서 궁상이나 떨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한 시간, 두 시간, 열 시간 뒤에도 속으로 한심한 돌쇠 놈 그러면서 십중팔구 지금 이 자세 고대로 누에고치처럼 굳어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백날 복기니 자기반성이니 하는 거창한 변명거리를 만들면 뭣 하겠습니까. 죽으면 썩어문드러질 몸뚱아리 하나를 못 이겨 절절매는 판국에.
그러고 보니까 용이 아침밥도 걸렀습니다.
이러고 삽니다.
내가 굶식한다고 죄 없는 착한 똥개 용이마저 덤티기로 쫄쫄 굶게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복기보다는 육신을 일으키는 게 백만 배는 더 급한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