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관하여(1)

by 김석철



하사가 왜 '미친개'라고 불리는 지를 두 눈으로 코 앞에서 목도한 곳은 남대문 시장하고도 가장 번잡한 사거리에서였다. 침만 흘리지 않았지 영락없이 광견병에 걸려 발작을 해대는 꼴이었다. 성성한 소문이야 익히 들어왔지만 평소 설렁설렁 겪어본 바로는 미친 개라고 불릴만한 건덕지가 없는 그저 그런 고참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적당한 거드름과 심통, 그에 걸맞은 약간의 폭력성과 변덕은 이미 중사 사, 오 년 차를 넘기는 동기들 틈바구니에서 만년 왕고참 하사로서 하대를 당하는 낙오자의 당연한 울분 정도로만 여겨졌다.

이임 회식 자리에서 대대장의 멱살을 싸잡고 패대기를 쳤다느니, 삿대질과 쌍욕을 퍼부어 보름 영창을 살았다느니 하는 소문만 전설처럼 전해졌지, 당사자를 위시한 당시 현장에 동석한 그 누구도 진실의 진위에 대해서는 함구를 했다. 대대 본부 인사 담당이었던 나 또한 박 하사에 대해 굳이 어디에 처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문서고를 들쑤셔가면서 까지 곰팡내 찌든 과거 인사 고과에 관련한 자료를 들추어 볼 가치는 느끼지 못했다. 만년 하사로 낙인이 찍힐만한 사유로서는 그만한 건수도 없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보도블록을 빼어 들고 갓길에 주차된 승용차를 박살 낼 거라 돌진하는 박 하사를 온몸으로 막아선 이는 칠 개월의 아기를 태중에 안은 꽃문양이 나부끼는 임신복 차림의 박하사 아내였다. 현란한 발박자에 맞춰 한껏 흥에 올라 골라 골라를 외치던 여리꾼은 말할 것도 없이 수없는 인파가 삽시간에 동심원을 그리며 돌을 쳐든 미친개와 그의 여인을 중심으로 경계선을 그었다. 순간 군중 속에서 노골적으로 배어 나오는 기대감에 찬 눈빛을 놓칠 수가 없었다. 몇몇은 놀라고 일부 무리는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 숙덕거리거나 정의로운 시민정신으로 무장한 누군가가 튀어나가 판을 엎어주는 서사를 그림과는 아랑곳없이 속편을 종용하는 관객들은 임시로 그은 경계선 외곽에서 주춤거렸고 편을 정하지 못한 나는 심판도 관중도, 그렇다고 중재자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 놓이고 말았다. 백미러가 박살 나기도 전부터 하얀색의 승용차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차주를 불러댔었다. 발길질에 문짝이 짜부러 들 때도 데시벨 높은 날카로운 비명이 여인과 차의 어디에선가 터져 나왔다.

사건의 발단은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고작 삼천 원짜리 반팔 티셔츠 한 장 때문이었다. 옥외 가판대 위에 내동댕이치다시피 어수선하게 겹겹이 쌓인 알록달록하고 속이 반쯤은 비쳐 보일듯한 티셔츠에 눈길이 박힌 박 하사는 고집불통 일곱 살의 악동처럼 가판대에 들붙어 옴짝달싹을 하지 않았다.

으르고 달래는 실랑이가 한참이나 이어졌지만 피차간 언성만 높아질 뿐 둘 중 어느 누구도 뜻을 굽힐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곧 사단이 날 거란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홍으로 번뜩이는 경광등을 뒤로하고 지직대는 무전기를 손에 든 두 명의 경찰관이 인파를 가르고 나타난 때는 박 하사가 보닛을 향해 보도블록을 내려찍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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