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가사 상태에 빠져있다.
곧 빈사, 아사, 객사에 고독사... 아름답지 못한 죽음의 모든 형태를 맛볼 수 있을 듯싶다.
마침내 통장의 잔고가 48,300원을 찍었다. 이 돈이면 고등어 생선구이 정식 한 끼 욱여넣고, 마지막으로 달짝지근한 카라멜 마키아또 한 잔을 걸친 후 단골 농협 매장에서 설탕이 잔뜩 들어간 1.8L짜리 코카콜라를 바짝 할인된 3,100원을 들여 사들고서 늘 씨사이처럼 해맑은 젊은 사장이 열심히 살고 있는 치킨가게에서 간장치킨,- 먹지도 않는 치킨 무랑 씨잘데기 없는 광고 스티커는 빼달라고 누차 얘기를 해도 도시 알아먹지를 못하지만 기특하게도 달달한 간장 소스는 넘치도록 부어주는-을 살 수 있는 돈이다. 간장치킨으로 두 끼니는 어떻게 해결될 거고, 뼈다구는 용이한테 선심 쓰면 될 성싶다. 오늘 아침까지도 인상 팍 쓰면서 발톱을 드러냈던 하양이는 얄미워서 남은 사료랑 동그랑땡 하나 던져주는 걸로 퉁쳐도 오감 할 터이다.
그 다음은 가만히 눠 있으면 만고 땡이다. 지금의 내 꼴이 바로 그 상태다. 등받이 의자에 삐딱이 반쯤 드러누워 이불은 턱밑까지 바짝 당기고서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죽을 때 죽더라도 책이나 보자 싶어 넘어가지도 않는 책갈피만 늘어진 자지인양 조물락거리고 있다. 속도 모르는 친구 놈은 담달 첫 주에 부산서 꼬추친구끼리 회포나 풀자며 참석을 통보했다. 회비는 지금 먹고 죽을 통장 잔고의 세배씩이나 된다나 뭐래나.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담달에도 요행히 숨을 쉰다면야 벗들을 위해 땡빚을 내서라도 그 정도는 해 줄 용의는 있지만, 거의 공수표나 다름없는 약속이다. 팔자도 좋은 시키들, 남 속도 모르고... 부조금이나 두둑이 준비해라, 짜식들.
아참, 깜빡 잊고 있었다. 독서모임 월 회비 일만 원이랑, 동인지 출간 문우들 모임 회비 삼만 원은 우짜지? 뒷자리 떼고 48,000원 총잔액에서 월회비를 제하면, 젠장 코카콜라고 나발이고 그야말로 개털 신세, 최후의 만찬은 나가리다.
또 수금하러 나가봐야 하나?
며칠 전에 돈 달라고 갔다가 적반하장으로 천하에 인정머리 없는 잡놈 취급을 당했는데 말이다.
- 누가 돈 떼먹을까 싶어 그라요!
마수걸이도 못한 댓바람부터 재수 없게 우는 소리 한달까 봐 일부러 기다렸다 한 시 땡소리에 맞춰 들어간 채권자인 내게 고 딴 식으로 말했었다. 돈을 받기 위해 채근 한번 않고 무작정 기다려준 시간은 정확히 만 이 년 하고도 한 달 십일 일째였다. 배 째라고 그랬으면 바람대로 뱃때지를 찢어주려고 했는데, 배 째란 부탁은 끝까지 하지를 않은 덕에 사람 목숨 하나 건진 거다.
차용증이나 각서라도 한 장 받아둘걸. 열받았을 그때만 지나면 배 째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말이지.
그냥 미안하다, 있는 데로 성의는 다해 볼께요, 그러면 없어서 못 주는 걸 뻔히 아는 마당에 드러눕기를 하겠나, 모가지를 비틀겠나. 차라리 답답하더라도 내가 좀 더 굶고 말지.
미안하단 한 마디가 그렇게나 어려운 말인가? 하긴, 가산 탕진하고 처자식을 아사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아버지 역시 숨이 꼴딱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미안했소, 미안하다는 그 간단한 한 마디를 남기지 않았었다. 고생시켜 미안하다, 못난 애비 만나 느그들이 수고한다, 이 정도의 언사는 아무리 무감한 갱상도 사내들이라손 그닥 쭈글스럽지 않은 말일 텐데. 누가 사랑한다고 속삭여 달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싸래기 한 톨 물려준 게 없던 아버지의 정나미 떨어지는 우악스러움이 오히려 걸핏하면 죄송합니다, 면목없습니다라며 시시때때로 머리를 조아리는 지금의 나를 이 꼬락서니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숫하게 반복된 연습의 결과일 수도 있겠고.
- 사장님, 낼 시간 됩니꺼? 타일 몇 장 시공해 줄 시간이 될까예?
크크...
미수금 독촉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구세주 같은 전화다.
내일 저녘에는 포기했던 골드킹치킨이랑 코카콜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역시,
사람,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