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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다!

by 김석철


표암 강세황 초상


인물화나 초상화를 그릴 때, 잘 그렸다는 말 들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실물보다 잘 생기게 그려주는 겁니다.
인물 사진은 '보정 작업'을 통해서 그렇게 합니다.
어떤 전시장에서 보니까, 전신거울인데 사물을 길쭉하게 비추는 게 있고 반대로 짧게 보이게 하는 오목 거울이 있었습니다. 거울이 대놓고 왜곡을 하는데도 깔깔대며 즐거워합니다.
때로는 뻔한 거짓말도 필요한 거지요. 세상이 진실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살벌할까요.

초상화에 진심이던 선조들의 그림을 보면, 솔직을 넘어 얄밉기까지 합니다. 검버섯, 저승꽃, 곰보 자국, 수염 한 올까지 낱낱이 그려냈습니다. 대상이 지엄하신 상감마마 어진이냐, 고관대작이냐 그딴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달마도처럼 거칠고 호방한 기세로 그려낸 인물화도 있습니다만.
당시 화공들이 천치는 아니었을 텐데 정무적 감각은 많이 둔했던 모양입니다. 이왕지사 그릴 바에야 좀 더 잘생기고 멋지게 그려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잡티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고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숨기고 싶은 치부를 죄다 까발려도 책 잡히지 않았던 시대의 분위기가 사뭇 의외입니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탈무드에는 허용하는 두 가지의 거짓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미 물건을 샀을 때는, 좋은 물건 잘 샀다고 말해줄 것과, 결혼한 친구에게 신부가 정말 예쁘니 부디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입니다.
세상에 선한 거짓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저는 오늘도 마음에도 없는 입 발린 거짓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들어서 기분 좋아지는 거짓말은 좋고 나쁨을 떠나 골백 번도 더 할 작정입니다.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탁 까놓고 솔직히 말해보자는 꼬드김에 혹 해서 순진하게 넘어가는 순간 사회생활 애로가 많아집니다. 취중진담의 이유가 뭔데요. 나중에 술김에 꽐라가 돼서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한마디면 죽을 죄도 사함을 받잖아요.

제 아들 녀석은 엄마가 심어놓은 쁘락치입니다.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고 신신당부를 하고 합의를 해도 어느새 나불나불 촉새처럼 죄다 불어버립니다. 솔직해서 큰 일입니다. 공범의식이 있어야 끈끈한 결속력도 생길 텐데, 쁘락치 한 녀석 때문에 가끔 콩가루 집안이 됩니다.저만 맨날 죽일 놈 되는 거지요.
눈치 없는 인간과 거짓말을 못하는 인간은 상종을 말아야 합니다.

새빨간 거짓말이야 어떤 이유로든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선한 거짓말(white lie )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거짓말 자체가 부정하다고 못을 박은 종교계와 원칙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예측 불허의 세계는 그렇게 딱 부러지는 게 아니잖아요.
칸트의 정언명령이니 뭐니 하는 고상한 이론 따위는 골치가 아프니까 입에 올리지 않을 겁니다. 사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간단한 덧셈, 뺄셈보다 의미도 없었구요.
저는 누가 뭐라고 떠들든 백색 거짓말이 필요하다 싶으면 주저 없이 할 생각입니다.
용기와 격려를 주는 거짓말,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거짓부렁...그런거 수두룩하쟎아요?

그나저나 요즘 입만 벌리면 새빨간 거짓말을 달고 사는 게 유행인지 여기저기서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작자들 때문에 속이 뒤숭숭합니다.
주딩이를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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