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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는 눈깔을 닦아야...

by 김석철 Feb 18.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매불망, 자식 걱정..




  슬슬 움직여보자.
세월을 낚던 태공망의 빈 낚싯대를 거둘 시간이 되었다. 빈 어망에 들녘의 햇살 듬뿍 담고 억새의 속삭임을 한가득 채웠으니 자리를 터는 엉덩이가 가볍다.
 
 "왔어요, 왔어요. 집 나간 고등어가 왔어요. 팔딱팔딱 뛰는 명태도 왔어요."
 동네 어귀 멀찌감치 서부터 확성기의 볼륨을 올렸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고등어, 맹태, 조푸, 계란. 없는 거 빼고 다 왔어요."
 당산나무 아래 진을 치고, 야발스러울 만치 납신거리며 입심 좋은 바람잡이 몇 명이 모일 때까지 너스레를 떨다 보면 뭔 일인지 궁금해서라도 마실을 나오게 되어있다.

 아침 장만을 위한 부식거리를 팔기 위해 여명이 한참이나 먼 한밤중서부터 바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새벽을 여는 것은 오늘 새롭게 떠오를 태양이 아니라, 유세를 떠는 장닭과 겁 많은 시골개들의  요란한 앙상블이다.

 잠 좀 자자. 아이고, 아부지 죄송함다. 새벽이 익고 칡넝쿨 같은 인생사가 뜸이 든다.
 
  "아나! 옴마는 이뿌니까 한 마리 더 낑가 준다"

 "문디 자슥, 나는 와 한 마리 더 안주노!"

 "에라이, 몰겄따. 오늘 폭싹 함 망해보자."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낙낙한 덧거리질로 바람을 잡는 것이 시골 동네 장사의 재미이자 알짬이다. 푸드 트럭도 나름 단골이라는 게 있고, 외상도 있다. 명태, 오징어만 팔려나가는 게 아니다.
 생선은 마진도 꽤나 쏠쏠한 데다 인기도 좋아 식자재 트럭 장사의 일등 효자 상품이다.
 도시에서는 대가리 쳐내고 배를 갈라 내장 손질을 한 후 토막 내서 곱게 포장을 해줘도 괜한 눈치가 보이는데 반해, 시골 동네의 생선 장사는 얼마나 뱃속이 편한지 모른다. 오히려 생긴 그대로 통짜배기로 줘야 좋아한다. 부산물인 대가리, 창자는 멍멍이 특식이 되고 달구의 별식이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니까.
까만 비닐봉지에 두부 한 모 사들고 쫄랑거리며 골목길로 접어들 때 저물어 가는 햇살도 바쁘게 따라붙는다. 구부정하게 접힌 허리, 휘적이는 몸빼바지..어머니의 뒷모습이 황혼에 젖어간다.

  창녕의 박진에는 애들 키만큼 자라는 단무지 무가 수확철이면 온 밭을 굴러다녔다. 이맛도 저 맛도 없는 매끈하게 빠진 무를 한 입 가득 덥석 물어뜯으면서 드넓게 펼쳐진 밭으로 향한다. 낮 시간에는 할망 아짐 할 것 없이 죄다 양파밭에 나가 쪼그리고 있으니 농촌의 쌈짓돈은 밭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다.
 두부 한 모 덤벙 썬 후, 간장 양념 적당히 바르고 이쑤시개 몇 개 꼽아 냅다 밭두렁길을 달렸다.
 " 이기 무신 일이고?"
 "옴마, 욕보는데 입가심으로 따끈한 조푸나 한 입 해 바라, 쥐긴다카이."
 흙바닥에 털썩 궁뎅이 깔고 앉아 시간을 나누다 보면 주문은 그냥 따라왔다.
 눈 비 오는 궂은날이나 농한기에는 막걸리 한 병들고 사랑방인 마을회관으로 가서 재롱 잔치를, 농번기에는 논 밭 즉석 무대에 퍼질러 앉아 한바탕 넉살 좋은 신명을 부리다 보면, 어무이 아버지들은 먹고살 걱정 없을 정도로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셨다. 그냥 말 그대로 엄마, 아버지셨다.

 올망졸망 엎드려있는 고만고만한 마을 몇 군데를 돌다 보면 어둠은 짙어지고 아련한 쓸쓸함이 밀려온다.
 시골의 밤은 도시의 밤 보다 더 조급하고 조용하면서 새까맣다.
 짙은 어둠 속으로 멀어지는 트럭 위로 시골 별들이 요란하게 쏟아졌다. 

 자식 걱정, 날씨 걱정, 얼릉 죽지 못해서 걱정...
 
 오늘 들었던 어무이, 아부지들의 걱정을 내일도 변함없이 들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봉산댁이 엊거제 병원 실려갔는데 아무래도 초상 치르지 싶다. 감나무집 욕쟁이 할배 세상   베맀다, 그 영감탱이 좋은 데는 못 갔을 끼라...

하루가 다르게, 다급히 손짓을 하며 달려 나오던 어무이, 아버지들이 사라지고, 대문은 주인을 잃고 녹이 슬어간다.


 내일은 팔려나갈 고등어 눈깔을 닦으면서, 누군가의 아침 밥상에 노릿노릿 익어가는 사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고등어가 눈깔을 반짝인다.

 엄니는 고등어가 싫다고 하셨지, 자장면도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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