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줏단지 모시듯 한시도 떼어놓지 못한 이모의 낡아빠진 녹슨 사탕통. 몇 차례의 조촐한 이사와 보잘것없는 옹색한 세간 살림에도 끝끝내 안고 돌아가신 통이다.
어린 마음에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감히 열어 볼 엄두조차 내지를 못하고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틀림없이 무지무지 맛있는 게 들었을 거야. 혼자만 먹으려고 꽁꽁 싸매고 있는 게 틀림없어.
싱거웠다.
어린 맘의 기대를 사정없이 걷어차버린 이모의 녹슨 사탕통. 꼴랑 이딴 거 땜에 죽기 살기로 껴안고 살았나 은근 배신감 마저 들었다.
슬쩍 흘겨본 사탕통 안에는 몇 안 되는 잡동사니와 빛바랜 사진이 전부였다. 과자, 사탕은 흔적도 없고 거들떠도 안 볼 잡다한 것들만 그득했다.
이모는 죽는 날까지 외톨이였다.
젊은 날에 청상과부가 된 이모는, 얻어와 키운 외아들에게 마저 일찌감시 버림을 받았다. 적적한 방에는 오로지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말벗이자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수다의 주인공은 늘 티브이였고, 가끔씩 뜻 모를 맞장구를 흘리는 게 다였지만, 티브이 속에서 온 세상 사람을 만나고 사랑했다.
이모는 체온만 남겨진 인간이었다. 세상에서 지워지고 늘 쓰라린 딱지만 덕지덕지 달고 살아도 텔레비전만 있으면 넉넉히 외로움을 견뎌냈다. 이모의 세상은 텔레비전의 각진 네모 속에 갇혀있었다. 어른 셋이 누우면 여백이 없을듯한 좁은 담장 안에서 스스로 미라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히키코모리 이모에게 유일한 애착이 있다면, 그건 이모만큼이나 늙은 사탕통이었다.
큼지막한 꽃문양은 세월이 묻혀둔 녹들로 시들었고, 이가 맞지 않는 뚜껑은 언청이의 입술을 닮아 제대로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외마디 날카로운 역정과 함께 뚜껑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돌아앉은 이모의 작은 어깨와 등이 쥐며느리처럼 동그랗게 오그라들었다. 아귀가 맞지 않은 뚜껑에서 초라한 자신이 보였던 모양이었다.
무에서 온 이모는 시시한 잡동사니만 가득 찬 사탕통 하나만을 달랑 남겨둔 채 생을 마감했다.
밤새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새벽같이 집을 나선 어머니가 만난 이모는 자는 듯 다소곳이 누운 모습이었다. 유일한 벗이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르는 텔레비전은 변함없이 혼자 수다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모의 맞장구는 영원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행히, 지독히 외로웠던 생의 마지막은 홀가분하고 평안한 표정이었다. 그 누구도 지켜보지 못한 죽음이었지만, 외로움은 늘 익숙했기에 별 문제가 못되었을 것이다.
먼 길을 떠난 이모의 녹슨 사탕통 속 사진에는, 짧은 치마의 새하얀 원피스를 나풀 입은 꽃 보다 고운 여린 아가씨가 벚꽃이 눈처럼 쏟아지는 계단에 피어있었다. 꽃인지 여인인지....
이모의 지독한 사탕통 사랑은, 그 속에서 오랜 세월 함께 걸어온 젊은 날의 아리따운 여인에게 머물러 있었다.
하아얀 눈송이가 된 이모는, 눈부시게 빛나는 앳된 여인에게로 훨훨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