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가에서 스스로 피어난 참나리가 새까만 자식들을 옹기종기 잎사귀 구석구석에 매달아 둔 채 맥없이 꽃망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씨앗인 주아들을 조심스레 훑어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습니다.
정원을 꾸밀 거라며 금계국과 루드베키아를 캐는 동생의 바지런한 손길과 기대와는 달리, 엄마의 흔적을 벗어난 이방의 땅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나 있을런지 염려가 앞서는 건 오지랖이 자초한 몇 차례의 참사를 겪은 탓입니다.
목단인지, 작약꽃인지....
목단인지 작약인지는 모르겠지만, 멀쩡히 잘 지내던 꽃을 잃었습니다. 언덕배기에 자리 잡았던 백합도 그렀습니다. 내 이기심의 말로는 늘 이렀습니다. 숨이 막혔던 모양입니다. 엄마의 땅을 잃은 울화였는지도 모르지요. 가서 보면 될 것을 왜 내 좁은 철창 속에 굳이 가두려고 했을까요?
개양귀비
몇 해 전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치 작은 개양귀비 씨앗을 나름 구역을 정해 흩뿌렸습니다. 하늘거리는 빠알간 꽃잎이 채색할 화원을 그리며 내심 설레었습니다.
나의 기대와 피어날 양귀비의 바램은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정작 피어난 꽃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외진 곳들이었으니까요.
제 설 자리는 따로 있었던 거지요. 계획은 내 소관이었지만, 결정은 온전히 꽃의 몫이었던 겁니다.
올해엔 농막 뒤편의 옮겨간 산소터 어귀에 생뚱맞게 큰 키에 연분홍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글라디올러스가 터를 잡았습니다. 어디서 꽃씨가 날아온 걸까요. 누군가 구근을 일부러 심었을 리는 없는 자리입니다. 사방팔방, 그 어디에도 글라디올러스가 피어있는 곳은 없는데 ,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또한 제 자리였을 테지요?
글라디올러스
산자락엔 엄청난 양의 코스모스와 백일홍 씨앗을 뿌렸더랬읍니다. 들풀들의 기세에 주눅이 들었는지, 코스모스와 백일홍 둘 다 초라한 모습으로 납작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잡초들의 텃새는 생각보다 훨씬 집요한 모양입니다.
긴 장마가 꼬리를 말면서 숨통을 조여대는 무더위가 자리를 대신합니다. 하루해가 무섭게 산야는 짙어질 테지요.
여름의 복판에서 만나는 찜통더위는 작물, 잡풀 가리지 않고 머리를 축 늘어뜨리게 합니다. 모기조차 날갯짓을 버거워하니까요.
그래도, 또 다른 꽃들이 인사를 하겠지요. 지는 꽃만큼, 새로운 자태로 다가서는 꽃들이 빈자리를 대신 채우게 될 겁니다.
그래서, 기다림은 또 다른 '설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