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에 취한 주정뱅이처럼 허우적거렸다. 땅은 몸뚱이 하나 디디고 설 자리조차 내어주지 못하겠다며 연신 꿀렁댔다.
몇 날 며칠을 감지 못했는지 산발이 된 떡진 머리카락에서 햇빛이 튀어 올랐다. 들붙은 뱃놈의 흔적을 하나, 둘 땅으로 떨어뜨리며 걷는 동안에도 잘 삭힌 홍어 같은 냄새는 몸에서 야무지게 매달려있었다.
지구가 몸뚱이 하나를 마구 흔들어댔다. 움푹움푹 팬 길이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리며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을 쳤다. 배에서 이겼던 멀미가 땅에서 다시 시작된 것이다.
텅 빈 내장에서 아직 게워낼 게 남았는지 헛구역질이 났다. 자장면이라도 욱여넣으면 좀 나을려나, 하지만 귀신 형용의 지린내 풍기는 몸으로는 자장면은 고사하고 소금부터 맞을 판이다.
목욕탕부터 찾아야 한다. 온몸에 찌든 칙칙한 곰팡이 냄새가 가뜩이나 흔들리는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몇 명이나 스쳐 지나갔을까?
관짝 만한 크기의 침실. 햇빛 한번 받지 못하고, 침침한 백열등 하나로 간신히 빛을 붙잡아 두는 곳.
좁고 급한 경사의 계단을 내려가면, 습하고 고약한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 선실이 있다. 어릴 적 벽에 똥칠했던 골방의 할배에게서 맡았던 냄새라고 해야 하나, 소화되지 않은 무 트림 냄새라고 할까.
어쩌면 악취의 근원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팔방이 물 천지인 바다 한복판서 낯짝 하나 씻을 물이 없다니...그랬다. 그 역겨움과 눅눅함.
번개탄 먹고 배 터져 죽은 누구의 싸늘한 몸뚱이에서 풍기던 냄새, 바로 그 냄새였다.
침침한 어둠 속에 시신처럼 가지런히 누운 무표정한 얼굴들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다.
사람이 지내라고 마련한 장소지만, 정작 사람보다는 쥐들의 세상이었다. 어쩌면 애초 선실 설계를 주무른 손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괄호 밖이었을 수도 있다.
많이 바라지도 않았다.
빛, 공기, 물.
태초에 창조주가 공들여 만든 후 보기에 좋았더라고 흡족해한 것들. 조도 높은 전등, 누룩 뜨는 냄새 가끔씩 뽑아낼 환기구, 그리고 적어도 하루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낯짝이나마 씻을 수 있는 민물.
철계단 몇 개 아래의 이곳에서는 인간이나 바퀴벌레나 별반 차이가 없다.
씻지도 못한 채 디벼자고, 먹고, 배설하고, 그물질하고... 또, 먹고 자고 똥 싸고 일하고.
"땡땡!"
눈 좀 붙일만하면 기상 종이 울린다. 그물을 내릴 시간인지, 올릴 타이밍인지는 모르지만 꾸역꾸역 반사적으로 갑판 위로 올라간다.
선장이 마이크 너머에서 뭐라 뭐라 자그러운 소리로 꿍얼대지만, 신바람이 난 사람은 정작 선장 하나뿐이다.
어획량에 따른 총수익을 할당 비율에 맞춰 나눠먹기 식의 '보합제' 수입 구조인지라 그물이 터져라 많이 잡히면 좋겠지만, 그만큼 작업 시간이 늘어나고 잠잘 시간이 짧아지니 돈이고 나발이고 빈그물만 올라오기를 내심 바랄 때가 많다. 선장의 환호와 나의 신음소리는 늘 대척점에서 마주했다.
쌍대구리 배, 쌍끌이 배라고 부르는 두척의 배가 그물을 끌면서 조업을 한다. 망망대해의 가운데서 넘실거리는 파도와 동행하며 하루 세 차례 그물을 내렸다 올리고를 반복한다.
대상 어종은 '참조기'. 황금빛 자태를 반짝이며 파닥거리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조상님 제사상에 고이 모시는 참조기를 찾아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로 지칠 줄 모르는 항해는 이어졌다. 주구장창 먹고, 자고, 똥만싸고를 되풀이하면서...
이미 태풍의 영역에 들어선 배는 미친 듯한 파도를 가로질러 피양을 시작했다. 돌풍을 등에 업은 사나운 파도는 맹렬한 기세로 쫒아와서 사정없이 뱃머리를 때리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가까운 항구를 향해 사력을 다해 달아났지만, 배가 바람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이다.
제주도 먼바다에서 폭풍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산더미 보다 거대한 파도가 추풍낙엽 신세인 배를 에워싸고 지나간다. 고개를 한참 들어야 파도의 끝점이 겨우 보인다. 파편으로 흩어진 포말과 드쌘 바람은 모든 것을 옆으로 날려버린다. 자유낙하 따위의 자연 현상은 깨어진 지가 오래다.
관짝 만한 침실이 그야말로 진짜 관짝이 될 판이다.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오른다는 건 아예 상상 조차 할 수 없다. 부처님, 예수님 백날 찾아봐야 고스란히 수장이 될 신세다. 물고기밥으로 다 뜯겨나가고 누가누구인 줄도 모르는 앙상한 백골이나마 제대로 건수 해서 초상이나 치를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배가 요동을 쳤다. 선수가 수직으로 서나 싶더니 사정없이 곤두박질쳐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관짝에 누운 몸은 롤러코스트 보다 격렬하게 공중에 떴다 처박히기를 거듭했다. 배는 대가리를 바닷속으로 처박을 때마다 부서지는 굉음과 함께 발악을 했지만, 광포한 폭풍의 기세는 잦아들지가 않았다. 깊은 바닷속으로 자맥질을 하던 지푸라기 같은 배가 용케 중력을 이기고 수면을 향해 필사적으로 바둥거렸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모포를 헤집고 들어온 죽음의 공포가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근육을 마비시켰다. 말초신경 하나마저 내 것이라고는 없었다.
죽음이라는 게 이렇게 시시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 배는 만신창이로 갈가리 찢긴 채 이미 피난 들어와 빼곡히 들어찬 배들 사이로 숨어들 수 있었다. 살아남았다. 배도, 인간 비슷한 존재도, 쥐들도 구사일생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석 달만에 동지나해 어디쯤에로 연락선이 왔다. 식수며 식량, 연료를 옮겨주고, 냉동 창고에 급랭된 돈줄들을 걷어간다. 영하 38도. 넓은 냉동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뽀얀 입김은 얼음이 되어 떨어지고, 온기가 있는 생명체는 죄다 동태가 되어버린다.
선도 유지를 위해 생선들은 등급별로 선별하자마자 갑판의 반을 차지하는 급랭실로 보내진다. 그 많이 저장된 생선 상자를 두 팔로 들어 옮기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영하 38°의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말이다.
냉동된 생선들과 함께 연락선으로 옮겨 탔다. 급랭된 생선과 동급인 짐짝 신세로 퇴출이 되었지만 고작 챙길 것이라고는 석 달간 썩혀둔 시간들뿐이었다.
연락선이 오기 전 까지는 헤엄쳐 나가지 않고서는 배에서 내릴 재간이 없다. 생사 여탈권은 오롯이 선장의 끗발이다.
선장에게 싹싹 빌었다. 적어도 물고기밥이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빌어먹을 선장 놈은 나를 언 생선 보듯 했다. 그것도 반짝이는 참조기가 아닌, 뱃대지 터진 꼴뚜기 정도로 말이다.
배는 서있는 자체만으로도 노동이다. 파도의 롤링에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발가락 끝에서부터 힘을 주어야 한다. 광부는 숨 쉬는 게 노동이라면, 어부는 서 있는 게 노동이다.
통영의 항구에 내려졌다.
이제는 땅이 나를 마구 흔들었다. 역시 지구는 맹렬히 돌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