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내외랑 친구 본가인 산청에를 들러리로 따라나섰다.
내가 사랑하는 벗 중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넷 있다. 그중 한 명인 친구다.
그중 둘은 법을 모르니 법이 있으나마나, 법 없어도 살 인간이고, 또 둘은 인성이 너무 진국이라 법 따윈 의미가 없는 벗이다. 물론, 법을 모르는 두 명은 법의 취지가 무색하리만치 선한 친구이자 동생들이다. 잘 삐치는 것만 빼고....
한 명은 선한 삶에 보상을 받았는지, 로또 2등에 당첨되어 졸지에 3,000만 원짜리 돈벼락을 맞았다. 그 착함이 화근이 되었는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당첨금으로 주머니가 두둑한 정황을 안 지인의 돈을 빌려달란 부탁에 박절히 거절을 못하고...결국 다시 쪽박 찬 웃픈 사연의 주인공이다. 덕분에 저렴한 초밥 잘 얻어먹었다.
또 한 명은 '천재와 둔재'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약간은 4차원적 인물이다.
전도한답시고 혼자서 전단지 뿌려가며 이벤트를 열었는데, 학교운동장으로 구름 떼 같이 몰려든 참가자들로 인해 감당을 못하고, 냅다 팽개 치고 36계 줄행랑친... 아, 이 에피소드는 로또 후배 사건이구나, 실수!
'천재와 둔재'의 어중잽이, 지킬 하이든 같은 이 후배인 벗은' 자유영혼'이다. 럭비공은 예측이나마 할 수 있지, 이 친구는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관리개선, 아이디어 같은 걸 부탁하면 실로 상상불허의 기발한 착상을 한다. 물론, 늘 뭔가 2%가 부족하다.
마산의 터미널 후미 번화가에서 작업이 있었다. 다운타운은 어디 할 것 없이 주차 전쟁이다. 우리는 직업상 차량도 크고, 공구가 많아 현장 지근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여간 곤욕이 아니다.
4차원 이 친구. 그 어렵다는 주차를 단박에 끝내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싶어 확인을 하니, 남의 영업장 입구를 완벽히 봉쇄하고 떡하니 주차를 한 것이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 문을 열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비싼 밥 먹고 욕을 바가지로 들을 판이었다.
"차를 그다(그기에다) 공가면(주차하면) 우짜노?!"
"아, 행님아, 내가 빙신이가! 저(저기) 머라 써붙이놨노?"
"금일 휴업!"
셔트에 대충 임시로 걸쳐놓은 안내팻말.
제기랄. 하필이면 그날이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일요일에는 장사를 안 하는 가게라고 나를 놀리며 가르쳤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적 얘기라고 한다.
4차원의 본가는, 모로 가도 가기만 하면 된다는 삼천포와 공룡 발자국 고성과의 경계 바닷가다. 어릴 적 사건이니 한참이나 오래전 얘기다. 시내버스가 하루에 두어 번 정도 다니는 그런 동네, 그런 시절이다.
버스정류소는 시골마을 양대 사랑방이자 검문소다. 마을어귀의 당산나무 아래와,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작은 점방을 겸하면서 표도 파는, 동네에서의 서열이 확실하게 정해지는 정류소에 딸린 자그마한 가게. 버스를 기다리며 일찌감시 판을 펼친, 짬이 되는 어르신들에게만 허락되는 실내 막걸리 자리에 낀 4차원 아버지 왈,
"00아, 뻐스 오는지 잘 바라이(봐라). 뻐스 오면 손들어 세아(워)놔라."
허걱! 뻐스가 팽 지나쳐버렸다. 몇 시간 만에 겨우 온다는 그 귀하디 귀한 뻐스가 흙먼지만 폴폴 날린체..
먹걸리판 고위급 어르신들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쏟아져 나오고, 아수라장이 된 것이다.
"ㅇㅇ야! 와 버스를 안세웠노?!"
순간, 눈에 별이 번쩍 하더란다.
" 아부지요! 쪼깬한 내가 저 큰 버스를 우째 세웁니꺼!!!"
니미럴, 130센티도 안 되는 초딩3학년이 무슨 재주로 저 무겁고 커다란 버스를 일으켜 세우겠냐고!
아이고, 세우다가 그 세우 다냐고.
이 친구 엉뚱한 에피소드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뭔가 급조된듯한 약간의 어설픔, 그래서 더 재밌는 친구다.
나머지 둘은 돈 안 되는 일에 무지 바쁜 선한 벗이다.
이 선량한 벗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안된다, no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 이런들 어떠며 저런들 어떠하리, 물에 물, 술에 술 탄 듯 마냥 예쓰다. 그래서....집사람들은 환장을 한다!
둘째, 매사가 중립이다. 회색도 아니다. 당최 정체성이 모호하다. 가끔 천불이 난다!
셋째, 남 말을 좀처럼 안 한다. 고작 한다는 표현은, 그럴 수도 있지다. 가끔은 맘에는 없지만 맞장구도 쳐주고 해야 공범의식의 묘한 연대감이 생길 텐데, 정치질하고는 거리가 멀다.
넷째, 대체로 주머니가 가볍고, 신발끈을 빨리 묶는다. 그래서 이런 벗들과 함께면 칙사대접을 솔챦게 받는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사람 대접 받는다는데..
다섯째, 씨사이처럼 잘 웃는다. 그래서 주위로 편안함을 전염시킨다. 에이스 침대다!
그러고 보니, 돌쇠아재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 오히려 반대다. 삼단논법상, 그런 고로 돌쇠는, 나쁜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