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이었다.
살아남은 다섯 마리의 몬난이 새끼들은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며 날이 갈수록 해작질이 심해지고 있다. 새끼 때부터 안고 지낸 몬난이와 이쁜이는 여전히 몸을 부비며 살갑게 다가오지만, 전적으로 애미의 육아로 성장한 녀석들은 꽤나 안면이 트였음에도 경계심이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는다.
똘만이들의 입장에는 그저 지들 일용할 양식이나 꼬박꼬박 때맞춰 상납해 주는 그닥 위험하지 않은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만 여기는 것이 분명하다. 몸종도 아니고 얄밉기 짝이 없는 츤데레 괭이들이다.
덩치들이 부쩍 자라고, 먹이 경쟁에 눈이 뒤집힌 일곱의 괭이들을 먹여 살리는데 종놈은 쎄가 빠진다.
딴에는 자랑질하려고 그런다는데, 가끔씩 문 앞에 들쥐나 두더지를 물어다 놓는 바람에 식겁을 한다. 늘 배가 부르니 쥐는 식량이 아니라 유희의 대상일 뿐, 식상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햄스터나 사마귀처럼 동족 포식을 하는 것은 자연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사자는 교미를 위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새끼를 죽이고 포식하기도 하며, 토끼는 사람에게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새끼를 살해하고 먹어치운다. 탯줄을 끊고 먹어버리는 행위는 포식자로부터 흔적을 지우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행위다.
동족 포식은 종과 류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부실한 개체로 태어나 생존의 확률이 희박할 경우에도 애미에 의한 카니발리즘이 나타난다.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식인 풍속은 있어도, 식인종은 없다고 주장한 학자도 있지만, 인간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카니발리즘은 존재한다.
인간의 카니발리즘은 생존과 종족 보존이라는 대의명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단순 유희, 권력이나 이권을 차지하거나 지키기 위해, 자연의 허락을 벗어난 살육이 자행된다. 인간의 카니발리즘은 언제나 본능을 앞선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인간 동족끼리의 잔인한 살육이 전쟁이란 꼬리표를 달고 갖은 명분으로 벌어지고 있다.
동족 포식, 즉 카니발리즘의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현장이 코 앞에서 벌어졌다. 유난히 성장이 더디고 소심해서 늘 변방의 왕따 신세였던 녀석이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혈육들에 의해 희생이 되고 말았다.
득달 같이 덤비는 녀석들에게 만정이 떨어졌다. 배가 고파서는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끔찍한 일이...
분노의 발길질에 혼비백산 흩어진 놈들이 혈육의 피 냄새에 슬금슬금 눈치만 보고 있다.
내 농장에는 피의 카니발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