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버리지 못한 깨진 항아리가 하나 있다.
특별한 사연이나 애착을 가진 것도 아닌데, 버리기에는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녀석이다.
이여사의 집에는 맨날 갖다 버리는 며느리와, 구시렁거리며 슬그머니 다시 줒어챙기는 두 부류의 인종이 동거 중이다.
냉장고는 뒤죽박죽 까만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뭐가 뭔지도 모르는 먹거리들이 숨도 못 쉬고 뒤엉켜 있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냉장고 쟁탈전 벌어지고 실세가 며느리인지라, 이여사의 애장품들은 사정없이 봉지 채로 쓰레기통으로 패대기 쳐진다. 믿는 구석인 아들레미한테 투덜대봐야, 진즉에 마눌의 권력에 굴복당한 허접한 신세라는 걸 모르니 하소연은 말짱 도루묵이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도 많은지, 평생 한 번도 쓰지 않을 자질구레한 것들 어느 하나도 버리지를 못 한다. 막상 없으면 아쉽다는 레퍼토리는 신권력 며느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비우자'가 철학인 돌쇠 아재도 시나브로 늙은 이여사를 닮아가는지 뭘 주섬주섬 줒어 모으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쓰일 것 같아 챙겨놓고는 보지만,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어 굴러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짐이 되는 것. 이여사도 그렇고, 나도 그런 존재이다.
정 붙이면 동물이건 온기 없는 사물이건 인연을 끊는 게 힘들어진다. 정 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시덥쟎은 이유만으로도 인연의 끈은 질겨진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깨진 항아리를 어떻게 살려낼까 고심하다, 어차피 깨진 신세, 더 크게 깨뜨려 화분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은 삼 년째 현재진행형이고, 어쩌다 눈에 뜨이는 순간에만 잠시 아, 그랬지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깨진 항아리일까?
물 새는 독으로 방기 될 것인가, 꽃을 품어 같이 향기를 퍼뜨리는 화분으로 거듭날 것인가.
내게는,
버리지 못 한 깨진 항아리가 하나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