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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시계...1.

by 김석철



동생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엄마를 늘 때렸던 독기 오른 승냥이 같은 인물이다.
늘 취해있었고 난폭했다. 동생의 기억 속으로 똬리를 튼 아버지는 '나쁜' 악당으로 붙박이가 되고 말았다.
내게 아버지는, 호방하고 사내다운 박력이 넘치는 상남자였다. 해병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보짱 있는 사내, 거나하게 취한 날이면 양손 그득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와 자는 우리를 깨워 주머니 탈탈 털어 용돈을 안겨주고 안아주었다.


동생과 나의 기억을 가르는 선은, '병든 아버지'와 '건강했던 날'의 아버지로 나눠졌다. 동생은 굳이 나빴던 기억만, 나는 애써 좋았던 시절만 붙들어맸다. 각자의 열여섯 나이에 정지한 아버지는 같지만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먼 먼 퇴계원의 부대, 둘째의 직장으로 면회를 오신 부모님의 걸음은, 집 지을 돈 좀 융통해 달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군악병에서 직업 하사관으로 전과를 해서 한 푼 두 푼 아귀처럼 긁어모은 통장의 잔고 냄새를 맡은 부모님이 쭈뼜대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돈으로 개 집 지을 겁니꺼?"
경박한 세치 혓바닥에서 쏘아올린 둘째의 첫마디는 애써 발품 한 부모님의 마지막 자존심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말았다. 후줄근한 아버지는 암시롱 못하고 높디높은 천장을, 어머니는 아득히 깊은 바닥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한 침묵이 완벽한 타인이 되어버린 세 사람을 싸잡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날의 둘째 아들놈은 한 마리 '개'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지 애비, 애미의 숨통을 물어버린 개, 미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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