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산불, 봄꽃 — 『느낌표와 쉼표 사이』 중에서

재 속에서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

by 김인덕

산불, 봄꽃

김인덕

밤새 비가 내렸다
불이 스치고 간 산등성이 위로
그을린 가지들이 침묵으로 젖어간다

소리 없이 이름도 없이
불길은 모든 걸 삼키고 떠났다
말라버린 뿌리와 함께
울음마저 타버린 자리

잿더미 속에서
누군가 피워낸 듯
한 송이 봄꽃이 붉게 젖는다
누가 본 적 없는 틈에서
살아있으려는 몸짓으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모를
무너진 풍경 속에서 묻는다

왜 꽃은 이토록 조용히 아픈가
왜 피어나는 것은 늘
무너진 자리에만 오는가

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는 걸
나는 안다
돌아왔다는 말 한마디로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살려달란 말도 없이 꽃은 피고
나는 오늘도
젖은 창가에서
재속에 남은 불씨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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