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날을 정해놓고 산다는 것
안다. 이 모든 것이 교만일 수 있다는 걸. 이보다 훨씬 빨리 죽음이 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죽는 날을 설정해 봤다. 태어나는 날을 설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2050년 6월 6일이면 만 나이 61세. 뱃속에 있는 우리 쑥쑥(가명)이 기준으로는 만 25세가 되는 날이다. 이미 작년(2023년)부터 만 나이가 법적 사회적 나이로 인정받았다지만 더 이상 뱃속의 태아는 사람 취급을 안 하겠다는 것 같아 그냥 만 나이라 구분 지어 말하고 싶다. 우리 쑥쑥이는 현재 14주로 다행히 기형아 검사에 무사 통과해 여름날 만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과학적으론 아이를 늦게 낳을수록 부모가 더 오래 산다고도 한다. (스켑틱 잡지에서 읽었다. 정확히는 부모인 생명체다) 최소한 어린 자식이 다 클 때까진 보살피고 싶어 하는 부모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만 25세면 딱 괜찮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알 만큼 알 나이이며 노인 부양인구가 반 이상이 될 거라는 암울한 전망 속에 나까지 부담으로 작용하고 싶지는 않다.
나름 생명사에 변액 연금도 만기를 끝냈으나 정작 받아야 할 시점에 받을 돈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종신보험도 2개나 있는데 안락하게 끝낸다고 가정했을 때 가족에게 사망 보험금을 주지 못하는 건 아쉬우나 나이가 들수록 짐이 되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나에겐 사보험만 있지 국민연금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가입할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쑥쑥이의 부담도 늘지 않을까 싶어 꺼려진다. 그리고 아마 내가 수령할 시점이면 받는다고 해도 만 65세부터나 가능할 것이다. 액수도 아주 작아지겠지.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은가. 국가 인구 그래프는 거침없이 노인이 대다수인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 옛날과 달리 60대면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노인이 노인을 먹여 살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두렵다. 내가 설정해 놓은 2050년. 내 시부모님. 그리고 내 부모라는 분 역시 아직 90대의 나이로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말이다. KOSIS 통계수치로만 본다면 이미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할 것이다. 나 역시 시부모님처럼 주택연금을 선택한다면 조금은 넉넉히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쑥쑥이는 집을 구하기 무척이나 어려워질 수 있다. 물려주기 위해 청약통장에 돈을 입금 중이나 과연 청약통장 만점만으로 집을 구할 수나 있을까? 서울에서 집을 사기엔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낳아만 놓고 밖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남편은 반대할 일이다. 먼저 주택연금을 얘기했던 것도 남편이니 말이다. 그러니 내가 사라져야 더 노후의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선택한 이의 사별자가 된다는 것.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안다. 그래서 여기에 적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지만 여기에도 남기고 싶다.
“난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렇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를 위해서는 거짓이다. 그저 이게 편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