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하루 Jan 16. 2024

불안은 전염력이 세다.

아이는 선택받았을 뿐이다.


나에겐 보험이 3개 있다. 2개의 종신보험과 1개의 변액 연금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물음표가 생길 만도 하다. “왜 종신보험이 1개도 아니고 2개야?”라고. 그건 아마도 실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 생물학적 탄생을 경험케 한 그분의 직업은 바로 보험 설계사였다. 아마도 종신보험이야말로 생명사의 꽃이며 설계사들의 높은 수당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래도 종신보험의 기능이 딱 죽어 돈 나오는 것으로 끝나진 않았다. 곧 있으면 만기인 한 보험은 80세형의 각종 수술 특약이 있고, 또 다른 갱신형 보험은 100세형으로 실비를 특약으로 추가해버렸다. 어떻게서든 만기 납입을 유도하는 특약 내용이다.  

    

그렇게 2개의 종신보험에 변액 연금까지 더하면 내 각박한 월급에 엄청난 부담감이었다. 사회초년생이 얼떨결에 가입했던 변액 연금이었는데 제법 초창기에 해지를 얘기했음에도 엄청난 면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분께선 사인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네가 한 사인이라 끝까지 주장했다. 나름 일리가 있긴 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해지해도 되긴 했지만 사실상 돌아오는 돈이 없을 거라는 주장에 그냥 체념하게 되었다.  

    

그래. 거지꼴로 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재미있던 건 옷 하나 제대로 걸쳐 입지 않던 내가 이때부터 지하상가 쇼핑이라도 어쩌다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돈이 없어 비자발적 나홀로족이던 시절이었는데 스트레스를 그렇게 풀어버렸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말 정말 어쩌다 이다 보니 거지꼴을 바로 면하진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험금에 쏟았을까? 결혼한 형제 부부가 와서는 보험을 하나 해지하겠다 통보했다. 내 형제는 그분에게 너무하다 싶을 만큼 가입시켰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물었다. 나는 이때 그분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너무나도 당당한 얼굴이었다. 대답 역시 얕보는 태도로 이 정도는 다 한다며 당연시했다. 내 형제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분께선 보험을 하나 더 가입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바로 반기를 들었다. 그분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사용하며 사인은 함부로 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때의 반격은 너무나 가소로웠다. 내가 그럼 좋은 거니까 하라는 거지. 별로인데 하라고 하는 거겠냐. 이거라도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이런 식이었다. 어떠한 논리도 없이 감정에만 호소하고 있었다. 사실상 떼쓰기였으며 심지어 본인이 내겠다고까지 했다. 나는 귀가 솔깃했다.      


당연히 알고는 있었다. 이래놓고 밑장빼기 할 거라는 걸. 그러기에 답했다. 가입하겠다고. 다만 만기까지 전부 당신이 내라고. 당신이 안 내는 순간 보험은 해지라고.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렇게 보험은 가입되었고, 처음엔 내 계좌에서 보험금이 빠져나가 당장 계좌부터 바꾸라고 했다. 정말로 바뀌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분은 보험금을 자발적으로 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분은 현관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제 보험금을 나보고 내라는 선포였다. 나는 즉시 답했다. 해지하겠다고. 그분은 울분을 토했다. 지금 해지하면 돌아오는 돈이 거의 없을 거라는 거였다. 나는 그분의 계좌를 받았다. 그분은 나를 쏘아봤다. 마치 내가 사정사정해서 보험금을 내주셨던 분이었다는 듯이. 그분께 나는 천하의 쌍년이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이 정도는 해야 마음이 편한데.”라며 다 들으라는 듯 계속 중얼거렸다.     


생명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보니 정말로 돌아오는 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0원이 아닌 수준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분은 이러니 내가 낼 거라 생각하셨나 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나도 아깝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보험금을 기꺼이 내주셨던 그분께 원금을 모두 계좌 이체해 보내드렸다. 그러면서 제발 좀 그만 하라고 톡을 날렸다. 대답은 없었다.     


이러고 얼마 되지 않아 그분은 또 한 번 소리쳤고 생활비를 내놓으라 윽박질렀다. 그분은 모를 것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변액 연금 가입이 없었다면 일부라도 생활비를 줬을 거라는 걸. 뭐, 안 줬으니 그분 입장에서는 그저 괘씸한 자식놈의 새끼였을 뿐이겠지.     


그분이 말한 ‘이 정도’는 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그분은 돈도 없었으면서 학원비를 밀려가며 학원을 보냈다. 학원비 기간이 지날 때마다 나 역시 불안해졌으며 불안으로 내뱉는 그분의 부정적인 말을 나도 모르게 흉내 내기도 했다. 불안이 감염된 형태였다. 불안 바이러스는 힘이 아주 셌다. 

     

그분은 늘 자식에게 원망받을까 걱정하며 해줄 만큼 해줬다는 걸 강조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모두 그분이 원해서 했던 것이었다. 하우스푸어로 집을 끼고 살던 것도 그분이 원해서였고, 아파트에서 빌라로 이사 간 것도 그분의 선택이었다. 나를 둘째로 낳은 것 역시 그분의 선택이었다. 그렇다. 나는 선택받았을 뿐이다. 


그건 쑥쑥이도 마찬가지다.


예상 가능한 미래가 너무 길면 불안도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금의 평균 수명은 너무 길다. 나는 날짜를 설정했기에 그 기간이 줄었다. 시간이 짧아졌기에 집중할 수 있다. 최대한 분수에 맞춰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지금 글을 쓰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출처 : 뤼튼

매거진의 이전글 2050년 6월 6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