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웃긴데 웃을 수 없는 순간들
손님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짧은 시간 손님을 관찰하고 말을 건다.
손님에게 말을 걸 때 자주 쓰는 호칭이 있다.
“어머님.”
“아버님.”
“사장님.”
문제는
“어머님”과 “아버님”에서
자주 튕겨 나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엄마.
그리고 어머님.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데
가끔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저… 엄마 아니에요.”
대부분은 이모다.
이모는 그나마 낫다.
문제는 친구들이다.
그 순간 가게 안에 흐르는
그 싸한 공기란,
너무 차갑다.
빠른 사과가 최고다.
“죄송해요.
바빠서 손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습관처럼 불렀어요.”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이름은
아버님이다.
아이들에게
모든 걸 해주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미안함을
하나쯤은 품고 있을 이름.
그런 마음을 담아
“아버님”이라고 부르는데
가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저… 아빠 아니에요.”
대부분은 삼촌이다.
가족 여행 중
조카를 데리고
닭강정을 사러 오는 삼촌도 더러 있다.
삼촌도 수습은 가능하다.
더 큰 실수는
임산부로 착각하고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임산부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잘해주고 싶은 손님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을 받은 분들이라
대화를 나누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어느 날은 조심스레 어머님이라고 불렀는데
상대의 반응이 멈추는 순간이 생겼다.
다행히 주변에 어머님들이 많아서 다른 분을 부른 척했지만
그 이후로는
임산부 먼저 마크가 없는 분에게는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너무 큰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최애고객
‘임산부 보호’ 표시를 달고 오는 분들에겐
환대, 또 환대를 한다.
아이 생일은 언제인지,
출산하면 아이와 함께 꼭 오시라고
진심으로 말한다.
친절과 실수 사이의 경계는
아주 얇다.
그 경계는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