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지금이 황금기

불로소득

by 원빌리

나는 결혼 전에는 막연하게 결혼자금으로 5천만원만 딱 모으고 나머지는 다 써버릴 계획이었다. 집안 형편도 어려워서 입사 초기 1년 넘게는 용돈 30만 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집에 보내줬었다. 어쨌든 나를 키워준 값이라는 생각에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덕분에 부모님도 더 일찍 빚을 청산했었을 거다. 워낙 빚에 쪼들려 힘든 삶을 살아봤기에 미래에 결혼을 하면 빚 없이 단칸방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애는 3명쯤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워낙 회사 동료들이 시집들을 일찍 가서 그런가.. 나도 20대 중반에는 갈 줄 알았더랬다.

특정 금액을 정해둔 건 아니고 정기 적금을 하면서 쓰고 남는 금액은 CMA로 옮겨서 하루 이자를 받아먹었다. 나는 유흥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주변 지인들이 술을 못하거나 유흥을 싫어했기 때문에 강제로 저축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결혼을 할 남자친구가 생겼다. 통장에는 1억 2천만 원 정도가 있었다.


'잉? 이거 뭐지?'


금액을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무지성으로 저축은 저축 대로 하고, 필요 없는 저축성 보험 등을 해지하고 나니 최종금액이 1억이 넘었다. 근속연수 9년 정도였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네'


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울컥했더랬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서로 모은 돈을 오픈했다. 그 당시 나는 9년 차였고, 남자 친구는 3년 차였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8천만 원?'


소름이 돋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얘 뭐지? 근속연수가 나랑 3배가 차이 나는데 8천만 원? 내 근속연수 대비 모음 금액이 초라하게 보였다. 남자 친구는 그저 둘이 해서 2억이니 작은 아파텔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겠다며 별소리하진 않았다. 내가 괜히 자격지심이 들어서 미안했다. 내 가정형편이 좋았다면 집 빚도 안 갚아 줬을 거고.. 매달 선물이며 용돈 드린 것이 갑자기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서로 예산을 짜기 시작했다. 1억 3천만 원 25평 아파텔 전세, 반지 200만 원, 스드메 100만 원, 1200만 원 중고 SM3, 신혼 여행비 1500만 원, 신혼여행 선물 500만 원, 가전 가구 1500만 원, 기타 생필품 100만 원 등등 2억이라는 돈이 0이라는 숫자에 가깝게 줄어들었다. 통장에 돈이 가득 들어 있었을 땐, 뭔가 마음이 든든했었는데 이제는 초조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우리 통장 귀여워졌어. 든든한 맛이 사라졌네."


그래도 미혼일 땐 여행 갈 거 많이 가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구 먹어서 쓸 만큼 썼다고 생각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는 데에 필요한 금액이 이 정도였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더랬다.


애를 가지고 나니 외벌이로 수입이 반토막 나고, 산부인과 검사 비용과 산후조리원 비용 육아 용품등 또 머리가 아파왔다. 최대한 아낀다고 했는데도 애를 가진 순간 천만 원은 우습게 썼다. 이젠 매달 고정비용으로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추가 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빚내기를 극도로 싫어해서 대출 이자가 없다는 것 정도?


외벌이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는 가장 먼저 내 식비부터 줄였다. 첫째 주는 카레, 둘째 주는 짜장, 셋째 주는 미역국, 넷쨋주는 두부찌개 이렇게 주말마다 일주일치의 국물요리와 잡곡밥을 만들었다. 매일 해 먹었으면 며칠 안 가서 배달음식에 손을 댔을 것이 뻔하다.


'주말까지만 버티자.'



남편이 3끼를 회사에서 먹고 오면 주말에라도 나는 배달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렇게 외벌이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200씩 저축했다. 이 정도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행도 안 갔고, 비싼 외식도 안 했다. 두 가지만 안 해도 50%는 아낄 수 있었다. 그 외 자잘하게 겨울에는 많이 껴입고 여름에 혼자 집에 있을 땐 최대한 버텼다가 남편 퇴근, 애들 하원시간에 맞춰서 켰다.


연이는 출산으로 2년 정도가 흘러 복직 시기가 찾아왔는데, 정말 하루하루 눈물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애는 하루 걸러 열이 나고 노란 콧물이 났으며, 전염병으로 등원이 불가하고, 남매가 서로 연타로 옮았다. 정말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났다. 돈 쓸 체력도 시간도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주말엔 꼼짝없이 집에만 있었다. 남편도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서로에게 불만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애들이 6,5살이 됐다. 이제는 밥 차려주면 혼자서 밥 먹고 양치도 잘하고 옷도 스스로 갈아입는다. 자주는 아니지만 주말에 하루정도는 외식도 하고 해외여행은 못 가지만 여름휴가, 겨울 휴가 기간 국내에 짧게라도 갔다 오곤 한다. 맞벌이로 전환하니 정말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통장 잔고가 쭉쭉 늘어났다.


나는 부동산에, 남편은 주식에 관심이 많아 서로 관심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 전에 살던 전셋집 보증금을 돌려받는 날인데, 이날 고배당 주식에 투자해서 첫 불로소득을 일으키는 날이다.


남편과 내 근속연수를 합하니 약 30년이 되는 시점이다.


비록 파이어족이 되려면 앞으로 20년은 더 일해야겠지만 애가 어릴 때 많이 저축하라는 선배님들이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내년이면 애들이 학원에 다닐 것이고, 그러면 저축액이 줄어들겠지만 내 연봉도 오르고 배당금도 들어오니 또이또이 할 것이다.


'지금 나는 과거에 살고 있지도, 현재에 살고 있지도 않다. 오로지 미래를 살고 싶기 때문에 저축을 그만둘 수 없다. 고로 평생 맞벌이 확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