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의식의 방엔
펜듈럼으로써의 엄마와 남편이 있다.
내 삶 속에는 다르지만 같은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엄마와 남편이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도 늘 몸이 아팠다. 30대 때부터 당뇨병에다 관절염을 꽤나 깊숙이 앓고 있어서 늘 끙끙 거리며 누워있기 일쑤였다. 특히나 비라도 오는 궂은날이면 증세가 더욱 심해지며 신경질도 확 늘었다. 덕분에 난 자주 약국 심부름을 해야 되었다.
손가락이 아파서 요리를 잘 못하는 엄마 대신에 간단한 청소와 음식을 해 주시는 아주머니들이 계셨다. 그분들 중엔 나와 잘 지내는 분들도 있었지만 간혹 위생관념이 별로여서 코를 파거나 침 묻힌 손가락으로 나물을 조물조물하다가 내가 깜짝 놀라도 그냥 씩 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이 반찬을 해 주면 아무리 맛있어도 식욕이 싹 사라졌다. 또 자주 바뀌는 아주머니들 때문에 어렸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깊이 정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늘 찡그린 얼굴로 언니들을 야단치고 아빠와 싸웠다. 그런 엄마의 표정에서 가끔 웃음이 피어나면 내 세상은 맑음이 되었고 또다시 금세 먹구름이 몰려오곤 했다. 99프로가 어둠이었던 탓에 내 얼굴은 어둠의 주파수에 고정되어 버렸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런 식의 삶이었고 대학을 다니면서는 지평이 차츰 넓어지면서 엄마의 영향권을 벗어나게 된 것 같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탈출하는 것 만이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
27살이 되던 해 1월에 남편을 만나고 그해 6월에 결혼했다. 그리고는 되도록 멀리 가고 싶던 소원도 이루게 되어 부산에서 서울로 갔다. 결혼식 날에 신부가 너무 좋아라 하는 통에 엄마는 그만 삐져서 내 얼굴도 안 보고 식이 끝나자마자 가버렸다. 언니 둘은 결혼식 때 많이 울었는데 난 울기는커녕 룰루랄라였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남편과 시작한 생활에서 나는 왠지 기시감이 들었다. 남편은 심장에 이상이 있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시술을 했다. 그런데도 젊다는 이유로 술 담배도 끊지 않았고 약도 제대로 안 챙겨 먹었다. 어떤 잔소리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여러 신체부위에서 적신호가 켜졌다. 지금은 술 담배를 끊었지만 돌이킬 수가 없다.
엄마와 남편. 둘 다 내가 전적으로 의지하고 없으면 내 삶도 절단이 난다고 매달리던 대상이다. 그런 그들과 함께 할 때면 오히려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었다.
펜듈럼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나는 그들이 내 삶에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펜듈럼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에너지와 주의를 차지하는 것이 펜듈럼이다. 우리는 살면서 온갖 펜듈럼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펜듈럼을 인지하고 그들에게서 받는 영향력을 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전환시킬 수는 있다.
엄마와 남편이 나에게 거대한 펜듈럼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그들의 무엇이 내 두려움을 건드리는가? 결국 그건 돈이었다.
그들이 돈을 나에게 가져다주는 존재 즉 내 생명의 연장이 그 돈에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해서 그들의 건강 문제가 나에게 그토록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더 나아가서 자연스럽게 나의 무능함과 그들의 능력이 합체되어 나는 그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관념이 생겼고 그 자체가 나를 힘들게 했다.
꼭 악착같이 돈, 돈 하며 축재를 하는 것만이 돈의 노예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닌 줄 알았다. 남편을 위해 성심껏 식사를 차리고 그의 스케줄에 내 시간을 올인하면서 나는 그것이 사랑하는 내 마음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물론 일부는 그럴 거다) 이제 내 마음의 바닥까지 긁어서 들여다본다. 갑자기 내 행동이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