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이름, 한국

12년만에 되찾은, 상표를 읽는 기쁨에 대하여

by 광치


아직 내가 해외에서 체류한 기간보다 한국에서 살아온 기간은 짧다.

여전히 거리에 나서면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려오는 것이 신기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건너오는 모국어의 친절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마트 물건 뒷면에 적힌 상표를 막힘없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즐거워하며, 나는 글자를 처음 배운 아이처럼 달리는 차창 밖 거리의 간판들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읽어보곤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사람들은 묻는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오니까 어때? 거기는 한국이랑 뭐가 달라?”


글쎄, 사실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느 곳이건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픔과 낭만, 그리고 고단한 현실이 공존하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한국이 좋다.

면전에서 거침없이 담배 연기를 내뿜던 무례한 타국인들의 거리보다, 지나가다보면 노상 술취한채 싸워대는 붉은 얼굴을 말려대는 경비아저씨보다, 낡은 돌계단에 기댄 뒤에 머릿니로 고생하는 기억보다,

자글자글 주름진 손으로 정답게 건네주시는 박하사탕의 향이 나는 한국이 좋다.


나처럼 고국을 오래 떠나 있던 아이들은 역설적으로 모국어를 더 사랑하게 된다. 정체성의 가장 큰 칸에는 멀어질수록 선명해졌던 그 이름, ‘한국’을 적어 넣는다. 우리는 타향이라는 끝없는 방랑의 길 위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추위를 견디는 북극의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그저 “안녕하세요”라는 정다운 한마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뭉칠 수 있었다.


돌아갈 곳이 분명한 우리조차 멀리서 고국의 이름을 부르며 그토록 목말라했는데, 만약 돌아갈 곳마저 잃어버린 실향민이었다면 그 마음은 얼마나 애달프고 서글펐을까. 아마 갈비뼈 한쪽이 사무치도록 시리고, 그 빈틈으로 모진 바람이 쓸쓸히 들이찼을 것이다.


어머니가 업무 현장에서 만났다던, 이상한 말투를 가진 어느 ‘동지’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돌아갈 수 없는 땅을 등 뒤에 둔 채 모국어의 숲을 헤매고 있을 그들의 마음에, 나는 이제야 살며시 나의 공감 보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