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선생의 오만함에서 '작가'를 읽다

by 광치


왜 그 사람은 ‘선생’보다 ‘글 쓰는 자’의 냄새를 더 짙게 풍겼을까.


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확신도,

교육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신념도 쥐고 있지 않다.


다만 문학의 텍스트 앞에서 그는 돌변한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오해받을 것을 알며,

심지어 적대적으로 비칠 것을 예견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감상을 검열하지 않는다.


이것은 교육자의 문법이 아니라, 작가의 생리에 가깝다.



교육자는 대개 안전한 해석을 채집하고,

다수가 납득할 보편의 언어를 사용하며,

오직 책임질 수 있는 말만을 뱉는다.

반면 글 쓰는 자는 틀릴 권리를 먼저 행사하고,

고립을 전제로 발화하며,

그 책임을 말이 아닌 자신의 존재로 지불한다.



나쁘게 들리는가?

하지만 그것이 글 쓰는 자의 숙명이다.



그들은 대저 착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으며,

결코 모범적이지도 않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기보다

문장의 정직함을 먼저 고려하고,

공동체의 안녕보다

자기 확신의 타협 없음을 우선시한다.


이것은 선택할 수 있는 미덕이 아니라,

진실을 대면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에 가깝다.



물론, 이기심이 곧 작가임을 뜻하진 않는다.

무책임함이 예술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글 쓰는 무리 중에 유독 이기적이고,

사고를 치고,

타인의 삶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비루함의 본질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자기 생각을 타인 앞에서 왜곡하지 않겠다는 고집.

지독한 외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끝내 말해버리고 마는 자세.


그 국어 선생의 오만함 속에서 내가 본 것은 교육의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예민한 감각 하나로 생의 파도를 버텨내고 있는,

한 예술가의 처절한 항해였다.



...그는 감각으로만 버티는 예술가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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