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귤을 한 상자씩 사 오던 이유

귤 하나에 담겨 있던 겨울의 기억들

by 새벽다섯시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과일이 있다.


바로 귤이다.


요즘은 계절과 상관없이 다양한 과일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겨울이 오면 집 안 어딘가에 꼭 귤 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상자는 거실 한쪽 구석에 놓이기도 했고, 베란다에 놓이기도 했다.


상자를 열면 주황색 귤들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풍경만으로도 겨울이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귤은 이상하게도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과일이었다.


귤 (1).PNG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먹고,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손이 가서 또 하나 까먹곤 했다.


귤을 까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새 바닥에는 귤껍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기도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귤을 하나씩 까서 먹던 그 시간이 겨울의 풍경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귤을 까다 보면 항상 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귤 속에 붙어 있는 흰색 줄 같은 것들이다.


귤락(橘絡) 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어릴 때는 그걸 보면 하나하나 떼어내곤 했다. 괜히 깔끔하게 먹고 싶어서였다. 귤을 반으로 쪼개고 흰 줄을 하나씩 떼어내다 보면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귤락(橘絡)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산화작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굳이 다 떼어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습관처럼 몇 개는 떼어내곤 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이어진 버릇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귤 (4).PNG 귤 흰줄 부분 귤락


귤은 과일이지만 집에서는 약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특히 겨울철 감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았다.


예전에는 귤껍질을 그냥 버리지 않았다.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 두었다가 귤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말린 귤껍질을 뜨거운 물에 넣으면 은은한 향이 퍼졌다. 그 향은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따뜻한 귤차를 마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제로 그 차를 마시면 몸이 조금 따뜻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요즘은 다양한 차와 건강 음료가 많지만, 그때는 그런 귤차 한 잔이 겨울을 버티는 작은 방법 같은 것이었다.


귤과 관련된 기억 중에는 조금 특별한 습관도 있다.


잠자기 전에 귤을 까 놓는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밤에 귤을 까서 접시에 놓아두고 아침에 먹으면 어떤 맛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귤을 먹어보면 신기하게도 맛이 조금 달랐다. 막 깐 귤처럼 촉촉하지는 않았지만, 겉은 조금 단단해지고 속은 톡톡 터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 식감이 묘하게 재미있어서 가끔 그렇게 먹곤 했다.

아마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한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먹어보고 싶었던 작은 재미였을지도 모른다.


귤 (2).PNG


귤은 참 단순한 과일이다.


껍질을 벗기면 바로 먹을 수 있고, 특별한 준비도 필요 없다.

그래서인지 귤에는 복잡한 기억보다는 편안한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겨울 저녁 거실에서 귤을 까 먹던 시간

귤껍질이 쌓여 있던 작은 접시

귤 향이 은은하게 퍼지던 공기

그 모든 것들이 겨울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요즘도 겨울이 되면 자연스럽게 귤을 사게 된다.

예전처럼 상자를 가득 사지는 않지만, 그래도 집에 귤이 있어야 겨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귤을 하나 까서 먹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일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기억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


아마 귤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귤을 먹던 시간이 특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나는 여전히 귤을 산다.


그리고 귤을 까서 먹으며 잠시 그때의 겨울을 떠올린다.

주황색 작은 과일 하나가


그 시절의 겨울을 조용히 다시 불러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