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시간

정후의 하품에서 시작된 한 엄마의 생각

by 멜리챌리

2026년 2월 9일, 월요일.

정후와 내가 처음으로 오후 3시 30분에 픽업을 하고
이른 오후를 함께 시작한 날이다.

4시 15분쯤 집에 도착하자
정후는 기다렸다는 듯 “엄마, 놀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방금까지 일을 하고 돌아온 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정후야, 딱 10분만. 엄마 혼자 쉬는 시간.”

타이머를 맞추고
서둘러 시리얼로 허기를 달래며
잠깐 의자에 몸을 맡겼다.

휴.

앉아 있는 이 짧은 순간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그런데
타이머는 너무 빨리 울렸다.

10분을 정한 건 나였는데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질까.

곧 5시, 정후의 화상수업이 있다.

수업 전에 정후와 단 5분만이라도 앉아서
그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수업을 시작하면 정후는 하품을 크게 한다.

수업 중엔 하품하는 모습을 가리고 하라고 말했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나 역시 필라테스를 할 때
가끔 이상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품을 할 때가 있다.

난 그렇게 졸리지도 않았는데?

그제야 깨달았다.

하품은 졸림이 아니라
몸이 깨어나는 신호라는 걸.

정후도 놀 때는 하품하지 않는다.

화상수업을 할 때 갑자기 조용해지고, 집중해야 할 때
그때 하품이 나온다.

아,

우리 뇌는 이렇게 스스로를 깨우는구나.

수업 전, 나는 선생님이 주신 피드백을 읽었다.
정후에게는 소리 내어 들려주고,
나는 혼자 다시 읽었다.

읽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정후는 또 자기 자리에서 애쓰고 있겠지.

대단하다.

오늘은 저녁을 먹으며 정후가 동음이의어 이야기를 한다.

큰코다친다.
코 박고 먹는다.

상황에 따라서 쓰이는 말이 달라.

“아, 잘됐네.”

하늘에 내리는 눈과 우리 신체의 눈 있잖아.

그리고 “죽다” 같은 말은 꼭 내 귀에만 귓속말로 한다.
아이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뭔 말을 하면 갑자기 “뻥이야~” 한다.

시덥잖은 말을 자꾸 해서
“정후야, 집에서 엄마는 정후에게 그런 말을 알려 준 적이 없는데
누가 그런 말을 쓴 거야?” 하고 물었다.

물어보니 ㅅㅇ다.

초등학생 형이 있는 이 아이는
말이 7살 같지 않다. 그냥 요즘 초등학생이다.

이 아이가 정후 옆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쓰는
“뻥이야” 같은 말도 따라 한다.

나는 말해 준다.

의미 없는 말은
사람 마음도 가볍게 만든다고.

“왜 그런 말을 만들게 된 거야?”라고 물어보면서
우리는 GPT를 켰다.

문득 그런 시덥잖은 말을 만들어낸
개그맨 누군가가 미워졌다.

그래도 뭐 해.
정후에게 그 말 대신

“장난이야~”
“농담이야~”
“just kidding”

이런 말로 알려 주었다.

그리고 또 정후가 말한다.

“엄마, 내가 ㅇㅈ이에게 아기는 천재야라고 말했는데
아니래.”

얼마 전에 정후에게 내가 천재라는 말을 하길래
맞아 하면서 맞장구쳤던 것이
유치원에서 같은 반 아이에게 말했다가
반응이 다르게 나와서 나에게 말한 거다.

아—

어떤 엄마는 아이가 책을 다 꺼내면 야단을 치지만
엄마는 정후에게

호기심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궁금했구나”라고 말하며
모든 꺼내진 책들을 같이 읽어 왔어.

그랬더니 정후는 들려만 주면 알아듣지.

“영어로 어떻게 미국인이랑 말을 해?”
알려 준 적도 없는데?

그리고 정후 머릿속에서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엄마가 너를 천재라고 생각하고 키워서 그래.

그리고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들 때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며,
말을 가려서 하고 바른 말을 쓸 수 있는 것을 쓰라고 말했다.

이 정신없는 세상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잘못 알려 주고 있는 것 투성이인 이 사회에서
나는 정후에게 가르치고 싶다.

올바른 것을 고르는 힘과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음.

나도 완벽하게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더 바르게 살고 싶다.

혹시 내가 고지식한 걸까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결국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조용히 자기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오늘 나는 미래의 세상에서
정후가 잘 살기를 바란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정후가 좋은 판단을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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