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Mar 05. 2022

신들의 섬, 낙소스

에게 해의 보물, 디오니소스의 섬

  그리스의 남쪽 바다에 떠있는 섬 낙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매우 비중 있는 섬이다. 크레타의 미궁에서 빠져나온 테세우스가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 간 섬으로 유명하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이 불세출의 장인 다이달로스에게 명령해서 인간과 소의 혼혈아인 미노타우르스를 가두어두었던 크노소스 궁전은 한 번 들어가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Labyrinthos)이었다. 크레타의 공주였던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해서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실타래를 주어 실을 풀면서 궁으로 들어가게 한 후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난 뒤 그 실을 다시 감으면서 빠져나오게 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꿈에서 본 아테나 여신의 지시대로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 혼자서 아테네로 돌아간다. 아리아드네는 그 후에 축제와 술의 신이며 낙소스의 수호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발견되어 그 아내가 된다. 아리아드네는 이후 죽은 뒤에 제우스신의 배려로 ‘북쪽왕관자리’라는 별자리가 되어 영원히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돌아가면서 살아 돌아올 경우 흰 돛을 달고 그 반대의 경우 검은 돛을 달겠다고 했던 약속을 깜박 잊고 그대로 검은 돛을 달고 항구로 들어갔다. 그런데 멀리서 검은 돛을 단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던 테세우스의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은 테세우스가 죽은 것으로 짐작하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그대로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 후에 그 바다는 오늘날까지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의 이름을 따서 ‘에게해’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그 자리에는 포세이돈 신전이 세워져 오늘날 수니온 곶으로 불리며 세계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나는 옛날에 이 신화를 읽었을 때 어쩐 일인지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낙소스라는 섬의 이름이 머릿속에 또렷이 박히면서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어왔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그리스 여행을 하게 되면서 다른 어느 섬보다도 낙소스에 가보고 싶어서 여행 일정 속에 낙소스 체류 5일을 넣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뮌헨으로 가서 거기서 아테네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새벽의 6시간을 아테네에 머물다가 낙소스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이번 여정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이틀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어서 적잖이 피곤하고 힘든 일정이었다. 그런데 아테네 공항에서 이른 새벽에 비행기에 올라 30분 남짓 걸려 도착한 낙소스 공항에 대해서는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한번쯤은 언급하고 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비행기 자체도 40인승이 안 되는, 관광버스 크기의 아주 작은 프로펠러 여객기여서 마음속에서 웃음과 함께 약간의 공포심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낙소스에 내려 공항건물을 보는 순간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터져  나올 만큼 매우 작은 건물이 서 있었다. 마치도 우리나라 어느 시골 역을 보는 듯  작디작은 공항 건물은 사람들 내리는 곳 따로, 짐 찾는 곳 따로, 화장실 따로인 각각의 정말로 작은 가정집 같은 건물이었고 소박하다 못해 초라할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기네스북에 기록될 정도가 아닐까 여겨져서 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남기기로 하였다.


  짐을 찾자마자 택시에 올라탔는데 택시에는 미터기가 따로 없어서 우리가(남편과 나) 묵을 호텔까지 요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10유로라고 간단히 대답을 하였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만한 요금이라면 그렇게 터무니없는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택시에 몸을 싣고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호텔은 바다와 항구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외관과 실내 또한 매우 깨끗하여 호텔을 잘 골랐구나 하는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묵기로 했던 방은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한데다 아직도 손님들이 첵크 아웃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짐을 플로어에 맡기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시내라고 해봐야 어림짐작으로 우리나라 한 개 동도 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규모였고 수많은 배들과 하얀 요트 등이 보이는 항구를 둘러싸고 음식점들 가게들, 호텔들이 늘어선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이었다. 낙소스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베네치안 캐슬과 오른 편 한쪽 나지막한 산 위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하나만 남은 문이 멀리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전의 다른 부분은 오랜 세월 속에서 다 무너져서 돌무더기로만 남아있고 이 문 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것은 낙소스의 명물로서 처음에 봤을 때는 약간 실망스럽고 아쉬웠지만 나중에 다시 가서 보고 또 볼수록 그 하나 밖에 없는 문이 수많은 배들이 들고나는 항구 한 편에 딱 버티고 서서 그 어떤 위엄마저 내뿜고 있는 듯 했다. 초기 키클라데스 시대의 유적으로서 5000년 정도의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면서 낙소스의 상징처럼 항구와 함께 한 편의 그림과 같은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석양 무렵이 되어 붉은 노을이 문 뒤편으로 드리우면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향수와 고독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아폴론 신전을 보고 나서 베네치안 캐슬에 올라갔는데 그곳은 항구에서 몇 백 미터쯤 올라가면 되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항구와 배들과 파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라갈 때 까지만 해도 더운 날씨에 땀이 많이 나서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와 뺨에 달라붙었다가 이리저리 바람에 날렸다가 하는 통에 몹시 성가시고 다리도 몹시 아프고 숨도 차서 괴로웠지만 다 올라가고 나서 보니 주위의 작은 골목들을 통로로 하여 올라온 바람과 꼭대기의 바람이 합쳐져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으므로 매우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


  아래쪽에 펼쳐진 바다는 흔히들 하는 표현처럼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고 하얀 돛을 단 배들과 어우러져서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눈길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것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의 2박 2일 동안의 수많은 피곤과 노고를 한 순간에 위무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성안을 잠시 둘러보고 그 안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더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간 나의 생각을 한 순간에 바꿔놓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박물관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유물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미 몇 해 전에 아테네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과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서 그리스의 고대 문명인 미케네 문명의 화려하고 정교하고 방대한 유물에 머리를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놀랐으므로 그런 종류이겠거니 했지만 여기에 있는 유물들은 크기에 있어서는 다소 소박하였지만 그 양이나 종류에 있어서 왠만한 다른 박물관에 손색이 없을 정도였고 지금으로부터 6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선사시대로부터 A.D. 5세기경까지의 유물로 꽉 차있었으며 그것이 오로지 모두 낙소스 섬에서만 출토된 것이라는 점이 몹시 놀라웠다.  박물관은 예술작품들 뿐만 아니라 후기 신석기 시대로부터 초기 비잔틴 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일상생활 용품까지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2차 세계 대전이후부터 지금까지 발굴된 것들이라고 했다. 그 중 초기 키클라데스 시대(3200~2300 B.C)의 유물들은 이 박물관의 귀중한 보물들이다. 


  아르카이크 시대(고대 그리스시대)(B.C.7~6C), 고전시대(B.C.5~4C.), 헬레니즘 시대 (B.C. 3~1C.)의 유물들은 도자기와 테라코타 유물들로 대표되며 로마시대(B.C.1C.~A.D. 2C.)의 유물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유리제품 들이다.  초기 키클라데스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그리스의 여러 섬에서 발견되었던 대리석 인체조각인 스페도스 타입의 아이돌은 얼굴 중에는 유독 코만 융기되어 있고 두 팔을 배 위에서 포개어 접고 있으며 두 발을 나란히 하여 서있는 자세의 여성을 상징하는 아이돌이다. 그러나 실상은 바닥에 두 발로 서있지 못하는 형태로서 발끝으로 세워져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엑스터시 상태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이 조각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요정이거나 아니면 탄생과 죽음의 여신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짐작하고 있다고 한다. 그 조각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이스터 섬의 거상과 얼굴 모양이 거의 비슷한 것 같아서 좀 특이하게 느껴졌다.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얼굴모양이긴 하였지만 5000년 전의 인류에게 공통의 미적 감각 비슷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사를 전공하지 않은 본인으로서는 막연한 추측이었지만 이 부분을 더 들여다보면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밖에도 미케네 문명의 영향을 받은 섬세한 테라코타 토기들과 정교한 금속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이 5000년 ~ 2000년 전의 유물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그 시대의 인류가 얼마나 치열하게 예술적 미의 탐구에 천착했는지, 깎고 다듬고 빚고 칠하며 거의 종교적 믿음처럼 얼마나 극적으로 미적 만족을 추구해 왔는지, 절정의 위대한 예술혼을 보여주면서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을 웅변해 주고 있었다. 금을 종잇장처럼 얇게 만들어 그 위에 섬세하기 그지없는 각종 부조를 새겨 넣은 것이라든지 실처럼 가는 금줄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팔찌를 만든 것이라든지 토기로 만들고 그 위에 기하학적 무늬를 그려 넣은 매우 실용적인 프라이 팬, 동시에 세 가지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세 개짜리 화덕, 동물 모양을 한 컵이나 금으로 된 정교하고 섬세한 봉인 도장 등, 실용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최고 수준의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유물들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있는 골목들마다 예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가득했는데  피곤 때문에 제대로 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시간이 12시에 가까워 오고 있었으므로 호텔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한 후 샤워를 하고나서 잠시 쉰 다음 오후의 일정을 시작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잠시만 쉬겠다던 계획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 시쯤 잠자리에 누운 것이 그대로 밤을 지나 다음날 아침 7시쯤에야 눈을 뜨고 말았다. 아무리 피곤했더라도 이렇게 계속해서 18시간을 내처 자버린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는 몹시 놀랐다. 원래의 나는 불면증도 있고 자는 중에도 무슨 조그만 소리만 나도 잠을 깨고 오래 누워 있으면 허리도 아픈 증세가 있고 하여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잔다는 것은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여행의 하루가 날아가 버렸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자고나니 개운한 기분도 들었다. 하긴 이틀 동안이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먼 거리를 여행했으니 무리는 아닌 것이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8시쯤 식당에 내려가니 음식은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으나 일하는 아주머니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었으니 좀 썰렁했지만 음식은 매우 훌륭했다. 먹고 있다 보니 부부로 보이는 3쌍의 남녀가 더 들어오고 혼자 온 아가씨도 열심히 밥을 먹고 나가는 것이 보였다. 호텔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손님은 방방이 다 들어찬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아마도 늦게 일어나서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느라고 그런 것 같아 보였다. 그나저나 호텔조식은 너무나 훌륭했는데 예전에 왔던 그리스 여행에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그리스가 음식 인심도 좋고 솜씨도 좋고 생각보다 훨씬 메뉴도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리고 이것은 해변 쪽의 호텔로 옮긴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호텔 안에서 아침과 저녁 두 끼를 해결했는데(half boarding으로 예약했으므로) 음식의 맛과 모양, 색깔과 다양함, 양념과 향료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맛, 재료 자체의 신선함이 느껴지는 독특한 요리법등이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해변 호텔의 식당은 비치 가까운 곳에 차양을 치고 하얀색의 테이블과 의자와 빨간색 체크 테이블보의 화사한 분위기와 친절한 서비스로 음식을 먹는 내내 기분이 고조되는 느낌이었다. 해가 지는 바닷가 풍경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테이블 위에서 깜박이는 작은 촛불과 어우러져서 신혼여행이라도 온 듯 기분을 들뜨게 했다.     


  호텔 예약을 첫 번째 호텔에서는 하루, 그 다음 두 번째 호텔은 나흘 씩 해놓았으므로 아무래도 비치가 바로 호텔 앞에 면해 있는 두 번째 호텔로 곧장 옮기는 것이 나을 듯해서 바로 체크아웃을 하였다. 이 두 번째 호텔은 돈 좀 쓰기로 작정을 하고 예약한 호텔이라 숙박비도 더 비싸고 시설도 훨씬 좋은 편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펼쳐진 해변이 햇빛 속에 빛나고 있는 것이 조바심을 일으킬 정도였다. 호텔 방에서 몇 발자국만 떼어놓으면 바로 비치였고 그 앞에 펼쳐진 바다는 수정처럼 맑은 바닷물에 물결 자락 하나하나가 그대로 비치는 환상 그 자체였다. 게다가 수십 미터를 계속 걸어가도 허리까지 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아 어린아이들에게는 물론 수영에 별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도 물속에서 마음대로 자맥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얕아서 더 없이 좋았다. 먼 곳까지 눈으로 어림짐작해 보아도 3km 이상 됨직한 해변이 활처럼 안으로 휘어져서 동그란 만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파도마저 잔잔하여 천혜의 해수욕장이라 할만 했다.       

    

  햇빛 속에 금빛으로 부서지는 물결들, 해변 가까운 곳에서는 연한 파란 빛이었다가 점점 짙어지면서 에게해 만의 독특한, 짙은 잉크 빛깔로 변해버리는 바닷물(언제보아도 이 짙은 색의 바닷물은 사람의 눈을 쉽게 떼게 하지 못하는, 미칠 듯이 아름다운 파란 색이었다), 하얀 돛을 단 요트들이 점점이 떠 있고 파도는 있는 듯 없는 듯 잔잔하고. 모든 것이 더할 수 없는 조건으로 손짓하여 부르는 곳, 낙소스의 바다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다음 날에는 현지여행사를 통해서 델로스, 파로스, 미코노스 등 3개 섬을 여행하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그 중 델로스 섬을 방문한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적과 유물의 거대한 보고였던 델로스를 떠나서 이번엔 미코노스 섬으로 갔지만 미코노스는 쉴 새 없이 부는 거친 바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만 하는 너무 많은 관광객들, 낙소스 보다 족히 두 배는 될 듯한 비싼 물가로 인해 마냥 좋은 인상만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틀 후에 낙소스에서 다시 아테네로 떠날 때 (한국에서부터 낙소스-->아테네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지 못해서 배를 타고 미코노스로 와서 미코노스 공항에서 미코노스-->아테네행 비행기로 갈아탐) 찬찬히 보니 이 섬은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와서 먹고 마시고 쓰고 놀다가 가는 곳으로서 차림새부터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쩐지 가족 단위 관광객들 보다는 커플 단위 관광객이 많았고 야한 옷차림의 멋쟁이 숙녀들이나 주위의 시선을 얼마든지 감당하겠다는 투의 거침없는 숙녀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또 특이한 것은 유달리 다른 섬에 비해서 동양인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중국인들로서 크루즈 여행으로 온 것 같았다. 그 여자들 중에는 양산을 쓰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어색하게 느껴졌고 아시아 사람들만의 햇빛 노이로제를 드러내는 폼이 세련된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넷째 날에는 낙소스 섬 내륙지방으로 역시 당일치기의 버스여행을  하였다. 이 버스여행에는 두 개의 코스가 있었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항구근처인 코라(Chora)에서 하나는(A 코스) 내륙을 거쳐 제우스 산을 지나 북쪽의 해안도시 Apollonas 까지 갔다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B 코스) 역시 깊숙한 내륙으로 갔다가 서쪽 해안으로 가서 Mikri Vigla 라는 마을을 거쳐 돌아오는 코스였다. 어느 것을 고를지 망설이던 끝에 그냥 A 코스를 따라 가기로 했다. (생각하기 귀찮고 선택의 정보가 많지 않을 때에는 항상 눈에 먼저 띄는 것을 선택하던 예의 버릇대로-- 이 코스는 다른 코스를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내륙지방 여행이야말로 낙소스 섬의 본 모습을 진짜로 마주 대하는 기회를 준 것 같다.     

  버스가 항구 마을의 오밀조밀한 골목길을 벗어나자마자 눈앞에는 올리브 농장들과 한적한 마을들, 황량한 들판이 펼쳐졌는데 30분쯤이 지나면서부터는 길이 좁아지면서 산골마을 들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골 마을들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것은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예쁜 교회의 모습이었다. 어떤 것들은 제법 크고 번듯했고 또 어떤 것은 저렇게 작은 교회가 정말로 교회가 맞는 걸까 싶게 작은 규모인 것도 있었다. 그것들은 한결 같이 햇볕 속에 흰 색의 벽들이 눈부셨고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작은 십자가가 그 역시 하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 정교회의 역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마음을 의지하고 신과 소통하며 경건하게 기도할 수 있는 정신적 고향이 꼭 필요한 것 같았고 그 때문에 그렇게도 많은 교회들을 지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시간 쯤 지나자 버스가 멈추고 한 마을에 들렸는데 거기서 옛날식으로 올리브기름을 짜내고 있는 방앗간을 구경했다. 몇 백 년 전부터 쓰던 기구라고 하는데 방아를 잘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쓰던 연자방아를 연상케 했다. 방아와 맷돌의 원리를 적절하게 조합해서 놀라운 기능으로 올리브기름을 추출하는 듯이 보였다. 가이드 말로는 아직도 이 기구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어쩐지 그 말은 믿기 어려운 듯 했다.     

   그 다음에 들른 아피란토스라는 마을에서는 도자기 공장(pottery)를 견학했다. 직접 실연도 곁들이고 있는 그 공장에서는 실연하는 이가 주전자의 꼭지가 거꾸로 달려 있어서 액체를 담으면 쏟아질 것 같은 신기한 모양의 주전자 만드는 법을 보여주었는데 그 원리는 포도주 같은 술을 파이프로 흡입한 다음 그 관을 그 꼭지에 꽂아 액체를 주전자 속에 주입하는 것으로서 보기와는 달리 절대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 다른 원리로 非욕심쟁이 컵도 있었다. --이것은 컵의 어느 일정한 수위 이상으로 술 같은 것을 따르면 아예 몽땅 쏟아져 버리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 없는 원리로 만들어졌다 ) 그리스인들은 실생활에서도 과학의 원리를 이용하여 해학으로 풀어내는 참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그 공장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도자기 모습에 흠뻑 빠졌는데 어느 것을 살까 고민하던 나는 크기 때문에 나중에 갖고 갈 일이 걱정되긴 하였으나 고대 그리스 도자기를 복제한, 양 쪽에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주발을 10유로를 내고 샀다. (가격도 착해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른 물건들도 엄청 욕심이 나긴 했으나 쓸데없이 짐만 크게 만들어 들고 갈 때 고생하지 말라는 남편의 충고에 따라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버스에 오른 우리는 할키라는 마을에 내려서 이번에는 골목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 작은 마을에도 민속 박물관과 고고학 박물관이 있었지만 그 쪽은 깨끗이 포기하고 때 마침 점심시간도 되고 하여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므로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테이블보가 유난히 화사해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놀라운 점은 골목길 바닥이 전부 대리석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근처 대리석 공장에서 정교하게 다듬지 않은 대리석을 대량으로 싸게 구입하여 마을의 모든 골목길에 깐 것 같았다. 마치도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건물들의 바닥이나 보도가 현무암으로 깔려있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낙소스가 유명한 대리석 산지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많을 줄은 몰랐고 오는 중에 지나치면서 보아 온 산중턱의 그 수많은 바위와 암석들이 대부분 대리석이었다는 사실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오래 전부터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과 건물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길가 카페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많은 관광객들을 구경하면서 주문한 그리스식 커피와 에스프레소, 그리스식 샐러드, 시금치파이를 먹었는데 맛도 그만이었을 뿐만 아니라 양도 많아서 (우리가 그리스에 있는 동안 나오는 음식의 양을 한두 번 빼고는 제대로 다 먹은 적이 없었는데 남길 때마다 요리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로 맛이 있었지만 우리로서는 그 음식을 다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 귀국하고 나서 저울에 달아보니 몸무게가 자그마치 2kg이나 불어 있었다) 다 먹을 수가 없었다. 한 30분쯤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앉아 있다가 마을을 다시 둘러보니 우리가 상당히 높은 산의 60부 고지쯤 올라와 있는 듯 했고 산 이쪽저쪽에 작은 마을과 교회들이 예쁘게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나서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는 설악산의 한계령보다도 더 높은 산길을 이리저리 꼬부라지면서 가는 것이어서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산길이 내내 이어지는 동안 거의 정상에 이르는 데까지 올랐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제우스 산의 꼭대기에는 성냥갑처럼 작은 교회가 흰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또 눈에 띄었던 것은 해발 천 미터 가까운 꼭대기까지 그리스 사람들이 석축을 쌓아서 올리브 밭을 만든 것이었는데 그렇게 높은 곳까지 땅을 일구고 개척하고 올리브 나무를 심고 또 게다가 석축까지 쌓아 올렸다는 것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 근방뿐이 아니라 섬 전역의 산비탈 모두가 이런 지경이었으니 그리스인의 그 강인함과 투지, 극한적 상황에 맞서 싸워 이겨내는 놀라운 용기, 엄청난 정신력이 느껴져서 고대 그리스 문명이 우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그 노력과 성실함, 지극함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경외감 비슷한 것이 마음속에 밀려들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아테네 시내는 낡고 허름한 건물과 집들이 많고 우울한 표정의 사람들, 깨지고 튕겨져 나간 보도블록 등이 눈에 많이 뜨였지만 시골지방, 섬 지방 일수록 집들과 마을들이 훨씬 윤택하고 풍요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 마을에서 조금 더 가서 둘러본 것은 레몬으로 술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1860년대부터 시작하여 4대가 내려오는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레몬주는 이제는 낙소스섬의 중요한 명물로서 고유한 상표를 달고 여기저기로 팔려 나간다는 것이었고 생산 공정을 한 눈에 보여주는 정갈한 공장내부는 물건에 대한 신뢰를 최고조로 높이는 데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나는 또 큰 병, 중간 것, 작은 병 2개해서 4병이나 사들고는 득의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골목길에 늘어선 예쁜 기념품 가게는 정말로 한 두 개쯤은 사지 않을 수 없도록 예쁜 물건들로 가득차서 발걸음을 떼어 놓기가 무척 어려웠다.     


  다시 버스에 오르니 가파르게 올라가기만 하던 산길이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은 훨씬 안정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부터는 저 멀리 산자락 아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것이 보였고 우리의 마지막 목표인 아폴로나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아폴로나스에 이르러 버스를 내리자 눈앞의 푸른 물결은 사나운 파도로 변해서 엄청나게 큰 하얀 거품을 내며 해안에 부딪쳐왔다. 그래도 해변과 물속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지만 수영에 서투른 나로서는 물속에 들어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 구경만 하다가 목도 축일 겸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손님들을 서빙하는 아가씨는 채 열 다섯 살이 될까 말까한 어린 소녀였는데 얼굴이 너무나 예쁘고 표정 또한 순진하면서도 영리해 보였다.      

    

  카페에서 나와서 그 마을을 다시 둘러보니까 섬 저쪽의 낙소스 항구쪽과는 달리 이곳의 물결은 너무 사납고 물은 더 맑은 대신 섬 북쪽의 외딴 곳이라 그런지 어딘지 쓸쓸하고 서글픈 느낌이었다. 조그맣고 예쁜 가게에 들러 엽서 몇 장을 사고 나서 바로 옆에 교회가 있어서 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교회 안은 바깥에서 보는 소박한 모습과 달리 매우 생생한 프레스코화와 수많은 이콘들, 촛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촛불 하나쯤은 켜볼까 했지만 초가 놓여있지가 않아서 대신 기도만 짧게 드리고 이내 나왔다.    

 

  귀로가 바빴으므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타서 조금 올라가다가 산 중턱에 있는 미완성 쿠로스를 보러 갔다. 이것은 쿠로스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잘 알려진 여타의 쿠로스들과는 다르다. (쿠로스는 대개 일정한 모양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머리카락은 땋아 늘였으며 직립나신의 청년상이다. 다리는 항상 왼쪽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형상이다.) 쿠로스라는 명칭은 초기의 오해에 의해 비롯된 명칭이라고 하며 디오니소스를 조각하려고 했던 장인이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만들다가 만 형태로 산 속에 그대로 방치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라고 추측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그 대리석상의 얼굴에 커다란 턱수염이 붙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그 많은 신들 중에 턱수염을 갖고 있는 신은 디오니소스가 유일하다고 하니 아마도 그 설명이 제일 합리적인 것이리라. 크기와 무게가 엄청났으므로 이것이 만일 완성되었다면 어떤 방법으로 산 아래까지 끌고 갔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제기하자 가이드는 산 밑에 까지 쭉 부드러운 흙을 깔아서 밀고 내려가는 방법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대답을 했는데 한편으론 머릿속에서 수긍을 하면서도 어떤 방법이었든지 간에 여기저기에 세워진 신전들을 보건대 정말 대단한 그리스인들이 아닐 수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디오니소스 상은 이곳 말고도 낙소스 섬 군데군데에 몇 개가 더 있다는 것이었다. 디오니소스신에 대한 낙소스 섬 주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귀로는 올 때와는 달리 산길을 택하지 않고 바닷가 길을 따라갔으므로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려 호텔이 있는 항구까지 7시쯤에 도착했다. 가는 중에도 군데군데 작은 마을들이 그림 같은 모습으로 흩어져 있었고 마을의 정경은 모두 평화로워 보였다. 이렇게 내륙 깊숙이, 산의 내밀한 곳까지 둘러본 여행은 낙소스의 참모습을 훨씬 더 잘 보게 해주었으며 이전보다 더욱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일구고 가꾸어 나가는지, 어떤 집에 살며 어떤 음식을 먹고 사는지, 마을을 어떻게 예쁘게 가꾸고 밭을 어떻게 일구는지, 교회와 신앙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으므로 해서 그들의 삶과 예술이 얼마나 고양되는지 훨씬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낙소스 섬은 산토리니처럼 카메라의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대로 그림엽서가 되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섬은 아니다.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면서 미친 듯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섬도 아니다. 델로스처럼 섬 자체가 유적인, 숨을 멎게 만드는 곳도 아니다. 또한 유행과 멋의 선도 역할을 담당하며 멋쟁이들을 끌어 모으지도 않는다. 아테네처럼 크고 장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신전들도 낙소스에는 별로 많지 않다. 또 코스처럼 섬과 도시와 바다의 조화가 앙증맞게 귀여운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소스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고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으며 사람들의 진솔하고 소박한 삶이 있고 낙소스만의 독특한 마을들이 있고 제우스 산꼭대기에는 작은 교회가 있고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과 평화스러운 웃음이 있다. 5일간의 체류로 낙소스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내가 느낀 것만으로도 낙소스는 내게 유일무이한 섬이 되었다. 나는 정말로 낙소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다섯 째 날은 아테네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으므로 바다가 아쉬워질 것 같아서 오전에는 호텔에서 여유 있게 물놀이를 즐겼다. 그런데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허둥대고 아쉽고 다시는 못 보게 될 애인과 헤어지는 심정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짐을 싸서 미코노스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쪽으로 떠나면서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미코노스는 며칠 전에 와 보았던 터라서 시가지의 몇 몇 골목만 둘러보았을 뿐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바람 부는 미코노스 앞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곳도 나름대로는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큰 가방을 끌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용기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가 오는 대로 올라타서 미코노스 공항으로 향했다. 거기서 다시 2시간쯤 기다린 끝에 아테네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아테네에서는 나흘을 머물렀다. 아테네도 수많은 사람들이 설레임과 기대를 갖고 오는 곳이며 볼거리가 너무 많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가 본 곳이기에 아테네에 대한 인상은 생략하기로 한다.  (2013.7.28)    



* 키클라데스 제도 : 인구 약 12만, 22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이다. 주도(州都)인 헤르무폴리스는 시로스 섬에 있다. 키클라데스란 원형이란 뜻의 영어 cycle과 같은 뜻이다. 아폴론 신의 탄생지인 델로스 섬을 중심으로 섬들이 고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낙소스, 안드로스, 파로스 등이 가장 큰 섬들이며 각각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기후도 쾌적하고 농산물 생산량도 많다. 그 외의 섬들로는 미코노스, 밀로스, 산토리니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