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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02. 2022

봄처녀 제 오시네

  사람들이 기다리던, 기다리지 않던 봄은 온다. 오고야 만다. 추운 겨울날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잔뜩 움츠리면서 “이 놈의 날씨는 왜 이리 춥나. 봄은 언제쯤 오는 거야?” 하면서 간절히 봄을 기다렸던 사람에게도, 연륜이 있는 태도로 태평하게 “아 글쎄 뭘 그리 초조하게 그러나? 곧 봄이 올 텐데.”하고 느긋하게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봄은 똑같이 찾아온다. 이때에 봄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아지랑이 피어나는 들판과 불어오는 산들바람, 삐죽이 얼굴을 내미는 수줍은 꽃망울”들로 대변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단지 “따뜻한 날씨” 만일 수도 있다. “춥다”라는 상태는 피해야 할 개념이고 “따뜻하다”라는 건 적이 편하고 안온한 상태일 것이다. 우리는 항상 이 “추움”을 피하기 위해 옷을 껴입고 난방을 하고 따뜻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종종거린다. 그러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면 살판 난 듯 날씨에 대한 모든 걱정을 떨쳐 버린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이제는 푹푹 찌는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또 다시 동분서주한다.     

  인간은 이렇듯 자연환경의 변화에 예민하고 거기에 적극 대처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어진다. 심각하게 얘기하면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과 봄, 여름과 가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턱대고 낭만적인 기분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든 봄은 사랑스럽다. 머지않아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고 벚꽃이 만개하면 우리들은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할 것이다. 그 봄을 느끼기 위해, 벚꽃의 화사한 색깔을 마주하기 위해, 그러면서 짧지만 강렬한 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쯤에서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제 아무리 기술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고 우주를 정복하는 시대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종속적이다. 그 변화와 흐름에 역행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존재이다. 엄청나게 발전한 기술문명이 때로는 자연의 위력에 둔감하게 하고 무시하게 하기도 하며 인간이 거꾸로 자연을 지배한다는 망상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잠시라도 주변에 없을 때 인간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훅 불면 꺼져버리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아무리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고 하는 일마다 족족 난관에 부딪혀 인생이 구렁텅이에 빠진 듯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오늘 같은 봄날은 참기 어려운 유혹이다.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맑고 따사롭게 비치고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흩날려줄 때, 봄의 햇볕 속에서 하얀 천사 같은 목련과 새색시 같은 진달래와 신부처럼 치장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자꾸만 일에 집중해야 하는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게 할 때 이럴 때만은 누가 뭐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숲속이나 공원이 아니어도, 파릇한 들판이 아니어도 이런 봄날에 열려진 창가에 서서 주위에 드문드문 피어있는 꽃나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 진다. 할 일 다 제쳐두고 꽃들이 만발한 공원이나 산으로 뛰쳐나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지 않은가. 때때로 우리에게 극복하지 못할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자연의 사계는 인간들에게 더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봄은 매우 짧다. 한 두 달간 모든 꽃들을 대동하고 눈부시게 나타났다가 이내 여름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홀연히 떠나간다. 짧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봄은 세상 만물에게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이다. 두꺼운 껍질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만 생명의 싹을 감싸던 나무들도 봄이 와서 기온이 따뜻해지면 여린 싹을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하고 어두운 땅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던 초목들도 따뜻한 대기와 촉촉한 수분을 빨아들여 초록빛 잎사귀들을 땅 위로 솟아오르게 한다.     

  살갗에 닿는 기분 좋은 바람과 어디선가 코끝에 다가오는 아련한 꽃향기, 덩달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꽃들의 그 아름다운 모습까지... 봄은 오감의 만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봄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봄은 위풍당당하게 모든 무겁고 두렵고 싫은 것들을 물리쳐 버리고 모든 것들을 압도하면서 우리 앞에 와 있다.      

  아열대 지방이나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없는 지역에서 살다 보니 봄의 이러한 귀중함에 대해서 잘 모를지도 모른다. 따뜻하다 못해 더운 날씨 때문에 눈을 경험하지 못하는 그들은 어찌 보면 적어도 몇 가지 점에 있어서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축복처럼 펄펄 내리는 눈을 맞아보지 못하는 것, 눈에 덮인 산과 들의 풍경을 보지 못한다는 것, 얼어붙은 강이나 개천 위에서 썰매를 타보지 못하는 것, 눈 덮인 슬로프에서 스릴 넘치게 내려오는 스키의 맛을 모른다는 것 외에도 추운 겨울을 이기고 맞게 되는 봄에 대해 느끼는 짜릿하고 황홀한 반가움을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더운 나라에서도 작은 공간에 인공눈을 만들어 깔아놓고 눈을 기계로 날려서 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곳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지만 그런 인공 눈과 하늘에서 펄펄 내려 쌓이는 눈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겨울이 마냥 싫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추운 겨울이 있었기에 따뜻한 봄이 더욱 반갑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나무들이 대견하고 연약하지만 환한 얼굴로 가지 끝에 매달린 꽃들이 더욱 예뻐 보이는 지도 모른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에 이리 민감한 것은 기대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혹독한 겨울 동안에는 추워서 못하던 것들과 누리지 못 했던 것들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갑갑한 실내에 갇혀 하늘과 들과 강물과 산길을 내 것으로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활짝 문이 열리듯 봄이 오면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에 온몸을 던져 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분출하게 된다. 선물처럼 찾아오는 봄이 그래서 더욱 반갑다.      

(201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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