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봄의 상징과도 같은 꽃
영국에 와서 열흘 쯤 지난 지금, 내심 나를 많이 놀라게 만든 장면은 영국 땅, 들판이나 정원이나 집앞이나 강가나 산기슭, 어디에서나 초록색 잎들 속에 얼굴을 떨구고 피어있는 수선화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봄이 되면 제주도나 남쪽 지방에서 쉽게 눈에 뜨였던 꽃이지만 영국에 와서 보니 어딜 가나 천지 사방에 수선화가 예쁘게 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심하게 수선화가 영국에도 많이 피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눈길이 닿는 곳 어딜 가나, 너른 들판에, 공원에, 건물 앞에, 길가에 피어있는 것을 보고 그것들이 주위 풍경과 녹아있는 모습이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런던의 대표적인 공원인 하이드파크에서부터 공원 내 여기저기에 넓디넓은 파란색 잔디 위에 피어있는 수선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청초하게, 수줍게, 여리여리하게, 밝은 노란색으로 환하게 피어있는 수선화가 참으로 아름다우며 주위 풍경을 예쁘게 물들여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런던을 떠나 에딘버러를 거쳐 인버네스에서 첫날 밤을 자고 난 후인 오늘따라 이곳 영국 북쪽의 오래된 도시 인버네스의 네스강 강변을 걸으면서 강가 기슭에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 있는 노란색 수선화 꽃들이 얼마나 눈에 예쁘게 들어오는지 마치도 그것들과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듯, 마음이 설레고 떨려왔다.
영국에선 봄의 전령으로 제일 먼저 피는 꽃이 수선화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잎들 속에 다소곳이 고개를 반쯤 들고 있는 노란색의 수선화가 그렇게 인상적일 줄을 예전엔 몰랐던 것인데 영국 남쪽의 런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하일랜드를 대표하는 이곳 북쪽의 인버네스에서도 유독 강가에 초록 풀숲 사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수선화를 보자 아, 영국 3월을 대표하는 꽃은 수선화로구나 하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설적인 괴물 네시로 유명한, 도시 남쪽의 네스호에서부터 흘러온 네스 강은 이곳 인버네스에서는 그렇게 강폭이 넓지 않아 어림짐작으로 100미터가 채 될까말까 인것처럼 보인다. 강 이쪽 편에서 저쪽 편의 건물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일 정도이다. 그 강 양편 기슭에 여기저기 노란 수선화들이 흐드러지게, 절정의 시기를 맞은 듯이 피어있는 모습에 불현듯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강의 유속도 빠르지 않고 적당한 폭의 강물이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과 그중에서도 상류라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키 큰 나무들의 가지가 물에 어리는 모습, 그 아래 초록색 풀숲위에 대조적으로 피어있는 노란 수선화 꽃은 그냥 한폭의 그림이라 할만 했다. 오늘부터 수선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이 이 풍경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면 이 풍경을 떠올릴 때 얼마나 가슴 저리게 그리워질까 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눈만 뜨면 보게됐던 풍경으로부터 멀어지면 그것이 얼마나 그리움으로 사무칠까 싶은 것이다. 이른 봄의 상징과도 같은 그것, 초록색과 노란색의 조화, 흐르는 강물과 키 큰 나무들과 그밑에 옹기종기 피어있던, 봄햇살을 받아 밝게 웃던 그 예쁜 꽃, 그 그리움은 아마도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지독하고도 깊은 것으로 추억되리라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내 경우에도 옛날 절은 시절에 독일에 살 때 고국에 대한 향수로 힘들어했던 경험이 있다. 그것은 갑자기 밤에 일어나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흘려도 결코 해소되지않는 상실감이었었다.
(2025.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