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좋아서 관광 가놓고 왠 불평은?
에딘버러에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죽 펼쳐진 평원들이었다. 막힘없고 거칠 것 없이 눈이 닿는 저 멀리까지 확 트인 평원들의 모습이 더 없이 풍요롭고 평화롭게 보여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순한 들판인지 경작하는 밭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그저 초록색 평원의 모습이었고 그것이 구릉으로 끝없이 이어지면서 넓게 넓게 펼쳐진 모습은 이 세상의 근심 걱정은 우리 일이 아니라는 듯 더없이 평화롭게 보였다. 그리고도 가끔씩 양들이 풀을 뜯는 양떼목장도 죽 이어졌는데 그 모양은 저절로 바흐의 칸타타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노래가 연상될 정도였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걱정 없고 평화로운 모습일 그 풍경들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곳곳에 보이는 크고 작은 시냇물의 모습도 생활용수와 농업용수의 풍부한 공급능력을 보여주었고 군데군데 보였던 농가들도 보통 2~3층의, 돌로 지어진 집들이 대부분이고 규모가 꽤 되어 보이는 집들로서 안정적이고 풍요롭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에딘버러나 인버네스 같은 도시들이 보여주었던 유서깊고 찬란한 문화를 가진 면모에 더해 제국주의 역사를 드러내는 부강한 모습에다가 끝없어 보이는 너른 들판에 자리한 부유한 농촌의 모습을 보니 영국이 왜 세계를 호령하는 강대국인지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국토의 면적으로나 축적된 문화적, 산업적 역량으로나 과거의 위대한 유산으로나 영국은 여느 나라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강국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신생 경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된 대한민국 국민이 볼 때는 부럽고 부러울 뿐이었다. 그 셀 수 없이 많던 양떼목장의 규모만 보더라도 스코틀랜드의 양모산업의 경쟁력은 자명한 것이었고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관광객들에게 팔려나가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타탄 무늬(체크무늬) 목도리만 봐도 그 숫자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의 산업 경쟁력 규모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겉으로만, 피상적으로만 보아도 영국은 엄청난 부국임에 틀림없었다.
이러한 풍요의 모습 외에도 느낄 수 있었던 전원마을의 목가적인 분위기도 더없이 아름다워서 영국에서는 농촌에 살아도 충분히 높은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겉에서 보는 것과 그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파란 목초지 위에서 하얀 양떼들이 풀을 뜯던 모습과 한가로이 흘러가던 구름의 모양과 숲과 나무들과 평원이 어우러진 모습, 구불대며 흘러가던 작은 시냇물과 강들의 평화로운 장면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목가적인 전원 풍경도 런던에 가까워져 올수록 경작지가 눈에 많이 뜨이고 농가도 다닥다닥 붙어있고 소규모 공장등도 많이 보이는 대도시 근교의 모습으로 변화돼가고 있었던 것 또한 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기차역만 보았을 뿐이지만 뉴캐슬이나 요크라는 도시는 공업도시의 삭막한 분위기가 확 와닿는 편이어서 각 지역의 특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또 눈에 띄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선 땅을 뒤덮다시피하던 비닐하우스가 여기에선 하나도 안 보였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선 농작물을 키워도 비닐하우스라는 별도의 환경을 마련하지 않고 그대로 바깥 환경에 노출시키면서 경작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군것질을 사기 위해서 몇 번 들렀던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랑 물가를 비교해보니 미친듯이 비쌌던 다른 물가에 비해서 그나마 야채나 과일 가격은 훨씬 싸다고 느껴졌다. 이정도 농산물 가격이라면 만일 우리나라 이민자 입장이라면 야채를 많이 필요로하는 우리의 요리 성격상 훨씬 부담이 작으리라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그나마 이것저것을 비교했을 때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에 다녀온 사람들이나 영국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던 다락같은 물가는 이미 런던에 도착한 직후부터 피부로부터 느껴져 소름이 돋을 정도였는데 보통 점심 한끼를 평범하게 먹어도 일인당 3만~4만원이 들었고 저녁에 좀 괜찮은 레스토랑에 가서 분위기 잡고 먹을라치면 일인당 6~7만원 근처로 계산이 나오는 것을 경험하고 다음부턴 식당을 찾을 때 어느새 좀더 저렴해 보이는 곳을 골라서 찾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신하고 얌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중산층으로서 이런 경계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호텔 조식은 보통 20~25파운드니, 우리 돈으로 하면 4만~5만원이다. 처음에 런던과 에딘버러, 인버네스에서 예약했던 호텔에서 열흘 이상은 그대로 잠을 자고 아침을 먹다가 뭔가 너무 계산이 안 맞는 듯해서(우리 돈 감각에 너무 안 맞아서) 나머지 여정은 예약했던 호텔을 모조리 취소하고(다행히 예약취소 위약금이 없어서) 조식이 붙지 않은 약간 싼 호텔로, 에어비앤비로 옮기고 나자 억울했던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선 아침은 둘이 합쳐 3만원 내외로, 점심은 8만원 내외로, 저녁은 좀 더 간단히 먹는 것으로 지출을 확 줄였더니 호구가 된 듯이 느껴지면서 스스로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 살인적인 물가를 어떻게 견디고 사나? 관광객들에게 입장료 등 바가지를 씌우는 영국은 말도 안되는 사기국가이다” 라는 쓸데없는 걱정도 안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에딘버러 같은 곳에서는 관광지의 핵심인 올드타운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80% 이상이 관광객들로 보였으니까. 모든 물가가 비싼 나라임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는 에딘버러 주민들은 고마운 심정일까 아닐까? “오버투어리즘 때문에 우리 생활이 망가지고 있으니까 제발 그만 와줘” 하는 심정일까, 아니면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입장에서 “어서 많이 와서 돈 많이 쓰고 가라 나는 자꾸 부자가 될테니까” 의 심정일까 갸웃거려 졌다.
이 상황은 런던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핵심 관광지는 말할 것도 없고 소호(SoHo)같은 지역에는 카페마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넘쳐나서 뭘 먹으러 들어갔다가 빈 자리가 없어서 그냥 도로 돌아나와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아, 어디나 불공평은 마찬가지로구나, 누구는 굶어 죽을 지경이고 누구는 돈이 돈 같지 않아 낭비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지경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존재해 왔고 겪어야만 했던 이런 불평등은 신이 하늘에서 다시 내려온다 해도 고치지 못할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