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벽시계

by olive



시계와 시간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할 때, 하나는 물리적 실체이고 하나는 추상적 개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실체는 시간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다 못해 무생물도 시간 앞에서는 변화를 겪는다. 아마도 그것이 무생물의 나이 먹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감에 따라 풍화에 시달리기도 하고 마모되기도 하고 작아져서 없어지기도 한다. 하물며 동물과 식물은 세월이 축적되면 나이를 먹어 시들거나 병들거나 하면서 땅 위에서나 물속에서의 존재가 무로 변해간다.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시간을 쪼개어 년, 월, 일, 시, 분, 초로 나누어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류는 태양이 떠서 지는 시간을 낮으로 칭하고 서쪽으로 태양이 지고 나면 밤으로 부르면서 다음 날의 태양이 떠오르기 까지를 하루로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여름의 낮과 밤이 겨울의 낮, 밤과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리고 다시 정교하게 시간을 나누어서 일년이 365일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못박아서 오늘날의 시간 개념과 맞는 시간대로 맞추어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동양의 달에 맞춘 시간과 서양의 태양에 맞춘 시간이 서로 달라서 그것을 맞추느라 윤달과 윤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초등학교 때에 이미 배워서 알고 있다. 나는 시간이 십이진법으로 되어있는 것이 신기하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듯해서 십진법으로 바꾸어도 되지 않을까 내 나름대로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시간을 재는 척도인 12간지를 알고나서 묘하게 일치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반기를 들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하루 24시간을 20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이 아닌 72분으로 바꾸면 어떨까 등등의 생각을 해봤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라는 결론에 이르자 맥없이 멈춰서버리고 말았다)



올해도 어느덧 삼월 중순이다. 새해 인사를 주고 받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라니! 시간의 덧없음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제 조바심을 치면서 벚꽃이 피기만을 기다리거나 개나리가 피었네 진달래가 피었네 하면서 꽃구경하러 가려고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지는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계절이 이렇게 빨리 바뀌는 것을 그렇게 안달하면서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제 이 봄도 조금있으면 또 여름으로 빨리 바뀌어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정신 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강물에 띄워놓은 일엽편주처럼 시간의 흐름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흘러간다. 거슬리려해도 거슬러 가지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시간에 지배당하고 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신이 창조해 놓은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시간에 얽매여서 초조하게 살아갈 운명을 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달력을 보고 세월의 흐름을 가늠할 때마다 알 수 없는 허무와 초조감, 엷은 슬픔을 느끼곤 한다.



그 시간을 재어주는 물건이 시계이다. 시간을 인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시계도 인간의 생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입학선물로 새로운 손목시계를 받아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 시계는 초록색 자판과 크리스탈 앞면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투명하게 반짝였기 때문에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는데 그 후, 몇 년만에 잃어버려서 그때는 또 상실감에 많이 속상해 했었다. 그 후에도 내 손목시계는 십 수개쯤 바뀌었지만 내 기억에 아직도 설레임으로 남아 있고 만약에 잃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시계는 그것만이 유일하다. 그 다음 시계들에는 별로 유별난 애착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두번 째로 중요한 또 하나의 시계는 우리 집 거실에 아직도 걸려있는 갈색 나무 벽시계이다. 지금껏 나를 거쳐간 수많은 물건 중에서 제일 연한이 오래된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벽시계이다. 그것은 우리 큰아들과 나이가 거의 같다. 우리 애가 81년생이니 올해로 45세가 되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첫째를 낳고나서 그전보다 조금 큰 연립 모양의 방 두 개짜리 학생기숙사로 이사하면서 부푼 마음으로 새집 벽에 걸어놓을 벽시계를 하나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독일에서 학생으로 살던 시절에 가구 하나, 조그만 가전 하나를 살 때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심사숙고후에 뭐 하나라도 사던 때인지라 벽시계를 사러 도시 변두리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고르고 골라 사 갖고온 그 벽시계는 언뜻 보면 평범한 외양의, 모서리가 둥글게 깍인 사각형의 오크나무로 된 시계였다. 화려하거나 예쁜 모양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저 평범하고 실용적인 모양의 시계였지만 처음 우리 집의 하얀 벽 높은 곳에 걸어놓으니 뭔가 집의 구도가 완성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뿌듯하고 좋았었다. 그후 그 벽시계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번이나 벽에서 떨어져나가 뒹구는 통에 표면의 유리가 깨져나가기도 하고 시침이 구부러지기도 하고 프레임이 뒤틀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어떻게든 고쳐 쓰이는 바람에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몇 번씩이나 ‘아유, 이젠 이거 버리고 새로 하나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왠지 그것에 정이 들어버렸는지 번번이 생각을 고쳐먹고 ‘완전히 고장날 때까지는 그냥 써보자‘ 하면서 오늘날까지 우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이사를 다니면서도, 독일에서 한국까지 건너와서, 다른 물건은 잘도 버리고 새것으로 다시 사들이면서도 어쩐지 그것만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시계, 오랜 세월동안 나를 지켜보고 나의 동반자가 되어준 그것으로부터 이별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유난히 오래된 것, 낡은 것, 역사가 있는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집의 그 수많은 물건 중에서도 이것만큼은 뭔가 그 의미와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 어느 사이에 나의 분신처럼 되어버린 그 시계는 낡아지고 그 옛날의 광택도 흐려지고 모양도 약간 이지러지고 그야말로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이 없지만 앞으로도 나의 삶이 계속되는 한 나와 같이 내 옆에 머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왔으니 미래의 시간에도 또 얼만큼은 버텨내리라 생각한다. 옛날 어렸을 때 영국의 동요인 “할아버지의 시계” 를 들을 때마다 왜인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면서 슬픔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처럼 내옆에서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낸 물건들에서 지나간 추억들이 묻어나고 그것들이 애틋해지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