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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un 13. 2022

스위스 여행

2005년 8월의 기억들

  지난 여름 12박 13일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지금 내 머리 속에 남겨진 기억들은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본다. 여행에 관한 기억을 몇 개라도 붙잡아두기 위하여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love story의 첫 구절이 떠오른다. “Where do I begin, to tell the story how great a love can be...” 하는.

 나도 이 글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든다.          

 그 푸른 산과 골짜기, 호수, 눈 덮인 봉우리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수많은 휘황찬란한 궁전들과 성당들, 건축물들, 박물관과 미술관의 장중한 작품들, 유서 깊고 분위기 있는 거리와 골목길들이 내 망막을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그러나 그 외에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많은 것들과 여행 중에 우리는 마주하곤 한다. 기차여행의 설레임, 무거운 여행가방 끌고 다니기, 수많은 낯선 길 위에서의 서성임, 지도를 들고 두리번두리번하며 여행객 티내기, 식당에 들어가 익숙지 않은 메뉴들 속에서 최적의 메뉴를 찾지 위해 애쓰기, 창백한 흰색 시트가 깔린 낯선 침대 위에서 잠들기,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 사이에서 서로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며 호텔 식당 안에서 아침식사하기, 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구경하기, 아기자기한 기념품들 구경하기, 그 중에서 몇 개 골라 머릿속에 환율 계산하며 사서 가방 속에 넣으며 느끼는 작은 즐거움, 그리고 사람들 틈에서 자리 잡고 서서 재빨리 한 컷, 사진 찍기 등등...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이런 것들 말고도 자연의 품에 안겨서 한가로운 숲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푸르디푸른 알프스 산 속에서 왠지 모르게 터져나오는 한숨을 쉬면서 자연의 광활함 앞에 숙연해 지기도 하면서 이제까지 와는 좀 많이 다른 감흥을 숱하게 받았는데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그러한 여행의 편린들을 조금씩 꺼내어 보고 싶다.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5박 6일, 그 많은 볼거리들, 베르사이유 궁과 비견되는 쉔브룬(Schoenbrunn)궁전의 아름다움, Egon Schiele라는 작가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Leopold Museum 에서의 충격, 그리고 2박 3일의 기간 동안 중세의 어느 한 지점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 프라하의 아름다운 고성과 궁전, 다리, 거리들도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벅찬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 주었지만 예전 유럽의 도시들에서 익히 보았던 강렬한 기억이 먼저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익숙한 그 무엇과 다시 마주하는 듯한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었고 그 보다도 무엇보다 강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스위스의 알프스 산속에서의 4박 5일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스위스의 산 풍경에 반해버린 적이 있었다. 서너 번 스위스를 여행하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이런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며 산과 도시의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며 부러움을 느꼈었다. 그 때의 여행들은 루체른, 쮜리히, 제네바 등 대도시 위주였거나 패키지여행이어서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다녔기 때문에 조용하게 무언가를 사색하며 관찰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그 유명한 융프라우에 올랐을 때에도 다른 일행과 함께 허겁지겁 갔다가 돌아오는, 그저 전형적인 둘러보기 식의 관광에 그쳤을 뿐이어서 목적지에 가는 동안의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골 풍경을 창밖으로 스쳐 지나면서 보는 것이 고작이었었지만 이번의 스위스 여행은 산골짝 깊숙이, 그야말로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감춰져있는 아름다운 비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기분이어서 그렇게 느낌이 다를 줄은 나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지였던 스위스의 실스 마리아(Sils-Maria)라는 곳은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ustra.)’ 라는 기념비적인 철학책을 완성했던 곳으로서 병약한 니체의 마지막 쉼터가 됐던 곳이다. 니체는 바젤대학에서 철학교수직에 있던 중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다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여름마다 니스나 베니스, 로마, 투린 등을 휴가 여행 차 다녔는데 그 중에서도 이곳을 가장 좋아하여 매년 여름이면 찾아와서 수많은 사색과 연구, 통찰을 이뤄낸 끝에 드디어 그 방대한 책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시 건강을 해치고 지독한 근시와 두통, 외로움에 의한 고통을 끝끝내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 묻히고 싶다던 니체의 소원과는 달리 자신의 어머니의 집으로 가서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로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곳은 안네 프랑크,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장 꼭토 등도 찾아와서 휴가를 보냈던 곳으로서 이태리적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지명에서도 벌써 그 분위기가 느껴지며 여행객들의 반 이상은 이태리 사람들인 것 같았고 어디를 가나, 심지어 식당 메뉴판에도 영어는 볼 수가 없고 독일어와 이태리어로만 씌어져 있을 정도였다.     

 스위스와 프라하의 중간 지점에 있는 빈을 중심으로 왕복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 때문에 첫날 항공편으로 빈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그곳 호텔에서 잔 다음, 그 다음 날 눈을 뜨기 무섭게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기차로 9시간을 달려 쮜리히에 도착했다. 잘 생긴데다가 연하이기까지 한 스위스 남자와 결혼한 한국인 여자 분과 만날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쮜리히는 돌아볼 사이도 없이 기차역까지 마중 나와 준 그 사람들과 우아한 스위스식 저녁식사를 하느라 저녁 시간을 다 보내버리게 되었다. 우리를 초대해 준 그 분들의 환대가 고마워 피곤함도 잊고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일어설 때 보니 한참 늦은 시간이 되어 있어서 Swissotel에 들어가서 자는 것으로 그날의 일정은 끝이 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십여 년 전에 보았던 쮜리히를 기억 속에서 다시 끄집어내어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또 다시 기차를 5시간가량 타고 실스 마리아까지 가야만 했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가는 데에만 꼬박 사흘이 걸리고 몸을 파김치로 만들어 버리는 곳을 뭐 대단한 곳이라고 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여행일정을 전적으로 남편한테 맡긴 터라 이러고저러고 잔소리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터져 나오려는 불평을 꾹 참고 도착하고 보니 아,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곳이어서 가슴 속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여행 책자에 적혀 있기를 해발 2284m 인 그곳에 올라가는 기차부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레티셰 철도>라고 하였다. 빨간 색의 그 산악기차는 총연장 122km 로서 다리 196개, 터널 53개를 지나는 기차였다. 쮜리히 출발, 츄어로 간 다음, 다시 기차를 갈아탈 때부터 느끼기 시작한 야릇한 흥분은 구불구불하며 기차가 산비탈을 오르고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가로지르며 놓여있는 다리들을 지나고 터널을 수없이 지날 때마다 어릴 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해지며 고조되어 갔다. 곳곳에서 골짜기로 떨어지는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었고 만년설 등 알프스의 비경을 볼 수 있었다. 아, 장장 5시간 동안 기차 속에서 바라보았던 스위스의 산골 풍경은 가히 신의 작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말로는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자연과 인공의 조화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할 만큼 아름다웠다.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어떤 것은 코발트빛 하늘색과 닮아 있었고 또 어떤 것은 계곡 바닥의 석회암의 색을 비춰서 우윳빛 색깔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어떤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족히 수십 미터가 됨직하게 늘씬하게 하늘로 뻗어 오른 전나무 숲들은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한 위용으로 끝없이 이어졌고 짙푸른 하늘을 이고 수 천 수 만 년을 그곳에 버티고 서 있는 수천 미터의 알프스 연봉들은 섣부른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 해서 기차의 종착역인 생 모리츠(St. Moritz)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잠시 버스 편을 알아본 우리는(남편과 나) 드디어 목적지인 실스 마리아(Sils Maria)까지 우리를 싣고 갈 버스에 올라탔다. 실스 마리아와는 달리 이 생 모리츠라는 곳은 유럽의 부호들이 겨울철이면 스키를 타러 찾는 곳이라 제법 웬만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휴양지의 활기 같은 것이 넘치고 있었지만 우리가 갈 곳은 거기에서도 버스로 20분 남짓 걸리는 산속 깊숙한 골짜기였고 벌써 거기서부터는 일부러 알고 찾는 사람이 아니면 존재하는지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오지라고 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생 모리츠에서부터 따라온 코발트빛 호수는 우리의 목적지인 실스 마리아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중간 중간의 작은 마을에 붙어있던 호수들과는 달리 점점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호수에 간간이 보였던 물놀이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실스 마리아의 호수는 그저 호수의 모습, 본디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일부러 니체가 여름이면 찾아와 책을 읽고 산책을 하며 살았다는 니체하우스(Nietsche Haus)로 숙소를 예약했던 우리는 서둘러 check in을 하고 짐을 풀고 호수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하여 마을로부터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호수를 찾아 나섰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호수의 진짜 모습, 그림책에서 보았던 동화속의 호수, 알프스의 눈 녹은 물들을 그 안에 담고 본디부터 생겨난 모습 그대로 산 속에 자리한 호수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넓디넓은 호수의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없이, 인공의 그 어떤 흔적도 찾기 힘든 태고 적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은 여태껏 회색도시에서 인간들 속에 부대끼며 살아온 나의 사고를 일순간에 정지시켜 버릴 만큼 장엄하고 비길 데 없는 아름다움으로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해발 2000m~3000m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여름인데도 가져간 옷으로는 도저히 추위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차디찬 바람 속에서 고요히 누워있는 모습이라니!  둘러싼 산봉우리 위에는 찬란한 햇빛 속에 희디흰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고 파란 하늘과 파란 호수, 자연의 웅장한 신비가 거기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갑자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심정이 되었다.      

 이미 시간은 저녁으로 이어지며 오후 6시가 넘어 있었고 가져간 옷 중에서 가장 따뜻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고는 해도 호수의 수면 위로 미끄러져 불어와서 옷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내일 아무래도 두꺼운 옷을 하나 사든지 해야 이곳에서의 앞으로의 4박 5일을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갖고 숙소로 돌아갔다. 배속에서 전해져오는 신호를 느끼면서 다시 저녁 먹을 식당을 찾기 위해 숙소를 나와서 우리는 야외 정원 속에 제법 사람들이 붐비면서 분위기가 그럴듯한 식당으로 들어가서 따뜻한 수프와 샐러드, 감자가 곁들여진 스위스식 치킨 요리로 배를 채웠는데 맛있다는 느낌도 잠시, 옷 속을 파고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니체 박물관 큐레이터를 만나 니체의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들은 후 이층 방으로 올라가서 숙소를 찬찬히 살피니 완전히 내가 1900년대 초 니체가 살았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는 듯한 느낌이 다가왔다. 우리가 묵게 될 방은 바로 니체가 살았던 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니체하우스는 의도적으로 니체가 살았던 그 당시와 거의 똑같이 모든 방의 상태와 집기가 갖추어 놓아서 사방의 모든 벽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바닥조차도 나무였는데 발을 심하게 구르기라도 하면 구멍이 나지 않을까 괜스레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닐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침대도 옛날 스위스의 산골 마을의 침대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지 하는 느낌이 드는, 장식이라고는 없이 투박하고도 견고한 20세기 초의 스타일인 것 같았다. 마당이 보이는 곳의 열려진 창가에는 빨간색의 제라늄 꽃들이 여러 개의 화분 가득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큐레이터의 말로는 니체는 그나마 우리가 묵었던 방을 임대할 돈도 모자라서 바로 앞의 산에 가로막혀 전망이 좋지 않은, 우리 방 바로 옆의 어둑한 방에서 살면서 하루 7-8 시간을 이 일대를 산책하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책을 썼다는 것이다. 니체는 실스 마리아의 호숫가, 또는 실바플라나 쪽의 숲길을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했다고 한다.     

 니체 박물관은 니체가 죽고 나서 니체를 흠모하고 따르던 지인들이 돈을 모으고 후원자들의 성금을 모아 이 집을 사들이고 집기 등을 기증받아 세우게 되었다는 것인데 여름에는 박물관 운영의 일환으로 이층과 삼층의 방들을 관광객들에게 호텔처럼 빌려주어 돈을 받고 나머지 공간들은 니체의 서적과 편지, 각종 유물들을 전시해서 니체를 기념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호텔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시설이었지만 숙박료는 훨씬 더 비싸서 일인당 100 유로를 받고 있었으니 여기에 묵는다는 것은  니체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대충 샤워를 마치고 우리는 니체가 살았던 바로 옆방에서 스위스 산속에서의 첫날밤에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음 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추위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던 우리는 마을 속의 늘어선 호텔들 사이에서 스포츠 용품점을 발견하고 두꺼운 스웨터를 사러 들어갔는데 그러지 않아도 비싼 유로의 환율(1유로=1600원 정도)에다가 물건 값이 어느 것이든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런데 어차피 하나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라는 남편의 성화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여 거금 35만 원 짜리 내 스웨터를 사고 남편 것은 조금 싼 것으로 20만 원 짜리를 골라 생각지도 않았던 거한 쇼핑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나머지 3박 4일 동안을 매일같이 Sils-Maria 의 호숫가에 나가서 산책을 하기도 하고 호수의 다른 쪽 끝인 Silva-Plana까지 호숫가 옆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또 뒷산에 올라 해발 2200m까지 오르기도 하고 하루는 또 다른 지역의 산으로 가기도 했는데 거기로 가기까지는 또 다시 기차를 타고 디아볼레짜라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000m 까지 오르는 복잡한 행로였다.이렇게 오로지 알프스의 자연 속에서 속세의 모든 것을 잊고 산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 우리의 여행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다시는 또 이곳에 올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곳에 온다는 것이 여간한 시간과 돈,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 있는 이 순간만이라도 최대한 그 자연을 느끼기 위하여 작년에 심하게 삔 후 계속 좋지 않은 예후를 보이고 있는 아픈 발목과 다리를 이끌고 숨을 몰아쉬면서 가능하면 열심히 돌아다녔다.     

 니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가팔라서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니체 하우스 뒤편의 등산로도 가 보았는데 내 발로 올라서서 알프스의 연봉을 바라본 그 느낌이라니!


 중간 중간 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하이디 오두막(Heidi Huette: 일반적으로 봄, 여름에 양이나 소를 이끌고 산에 들어와 겨울이 오기 전까지 몇 달을 머물며 양과 소들이 풀을 뜯어먹게 하던 양치기의 오두막을 부르는 이름)과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들, 하늘을 찌를 듯이 키 큰 전나무 숲들,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보았던 산자락에 띄엄띄엄 박힌 작은 집들, 우윳빛의 계곡물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흐르던 모습들, 한 번 빠지면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갈 듯한 급한 물살의 계곡, 이 깊은 숲속에 겨울에 눈이 몇 미터씩 오면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내나름의 상상, 호수를 굽어보며 서있던 성채 같은 호화로운 호텔의 모습, 비탈길이 끝나는 곳에 있었던 드넓은 초원,  골목길을 따라 늘어선 스위스 산골의 아름다운 집들, 비탈길이 끝나고 나타난 초원 저 끝의 작은 첨탑을 매단 교회,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를 한참이나 젖혀야만 눈에 들어오던 봉우리들, 그 위에 펼쳐져있던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던 하늘,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라볼 때마다 나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왔던 실스 마리아의 그 고요한 호수...     

 저녁을 먹고 나서 밤에 찾아가 바라보았던 호수의 모습은 이 세상 풍경이 아닌 것처럼 너무도 신비스럽고 아름다워서 금방이라도 어딘가에서 호수와 밤의 요정이 튀어나와 달빛 속에 춤이라도 출 것 같다는 상상 속에서 하염없이 그 앞에 서 있고 싶게 했다. 달빛이 비치던 밤에 찰랑찰랑하며 가장자리에 밀려와 부딪치던 호수의 작은 파도, 영원까지 계속될 그 파도소리, 그 호수 위로 불어오던 바람, 호숫가의 빽빽한 전나무 숲들... 자연 앞에서 한없이 허무해지던 나의 모습,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눈을 감고 그 때의 광경을 떠올리면 가슴 속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 같다.     

 이틀 동안의 오후는 박물관에 머무르면서 이것저것을 둘러보았는데 니체에 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 슬픔이 교차하면서 위대한 인간이란, 어쩌면 인간의 일반적인 상식 밖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정신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그가 끝끝내 밝히고자 했던 이 세계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에게 과연 그 경지란 가능한 것일까 하는 물음들이 어지러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는 중에도 빨리 밖에 나가서 그가 거닐었던 숲과 들판, 호숫가, 산길, 호수위에 살던 바람과 마주하고 싶다는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호수 한 쪽 편에는 또 조그만 반도(독일어로 Halbinsel 이라 부른다)가 있었다. 옛날 로마시대에 그곳에 로마인들이 성을 축조해 놓았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 없고 다만 샤스떼(Chaste)라는 지명만이 남겨져 있다고 한다. 그 샤스떼 안에는 니체가 매일 같이 들르던 지점의 커다란 바위 위에 니체의 시가 새겨져 있기도 했는데 그는 가끔 사람들에게 이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고 싶다고 했을 만큼 고독했던 니체의 영혼에 크나큰 안식을 제공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그곳의 풍광에 취해 살다가 드디어 그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가슴 속에 자리하게 될 그리움과 동경, 슬픔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먹먹해지는 마음을 안고 아쉬운 발걸음을 떼어 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다시 올 때의 과정을 되짚어서 빈으로 돌아갔고 빈에서의 며칠과 프라하의 2박 3일 동안 여러 곳을 지나면서 많은 것을 둘러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알프스의 산골모습 만큼 나를  미치도록 강하게 잡아 끌지는 못했다.      

 지금 이 순간 Sils-Maria 호숫가의 그 광경을 되돌이키면서 내 영혼의 일부를 그 곳에 떼어놓고 온 것처럼 또 다시 막막한 슬픔에 빠져드는 것은 나의 유난한 감상벽 때문일까?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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