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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ul 04. 2022

6월, 제주, 수국   

6월 제주에서 수국 꽃에 마음을 빼앗기다

       

  6월의 제주는 어디서나 수국 꽃이 지천이다. 웬만한 집들의 안쪽 뜰이나 울타리, 길가의 경계들이 거의 수국 꽃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들이 아기 얼굴만큼 큰 꽃송이들을 무겁게 받쳐 들고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그득해진다. 아무 계산 없이 누가 인정해주든 말든 내 스스로 부자가 된 느낌이다. 세상에 수국 꽃만큼 풍성하고 그득하고 아름다운 꽃이 또 있을까 싶다. 수국 꽃은 색깔도 매우 다양하다. 제일 흔한 색깔이 파르스름한 색깔이고 흰색에 가까운 연한 파랑색부터 짙은 파랑색, 연한 분홍색, 짙은 분홍색, 빨간색, 짙은 빨간색, 보라색, 짙은 보라색 또 적색에 가까운 빨간보라색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수국 꽃들이 그 예쁜 꽃송이들을 탐스럽게 흔들며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도 왠지 두둥실 공기 속으로 떠다니는 기분이 되곤 한다.     


  내가 제주도에 갈 때마다 들르는 종달리 해안도로는 6월만 되면 일찍 피기 시작한 꽃들부터 띄엄띄엄 얼굴을 내밀며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환하게 인사한다. 2킬로쯤 되는 길에 2차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 길 가득히 수국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 소중한 선물을 아낌없이 받은 것처럼 세상으로부터 축복 받은 느낌이 된다. 장관이라는 말만으로는 무색할 정도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멋있고 화려하고 풍성한 모습에 6월만 되면 종달리가 생각난다. 색깔이 화사할 뿐만 아니라 자태 또한 아름답고 우아해서 젊은 연인들은 그 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지나치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혹시 갈 길이 급해서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들은 공터 길가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는 되돌아와서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온갖 포즈를 잡고 사진을 서로 찍어주며 그 순간을 즐긴다. 어디 젊은 연인들뿐이랴? 이 길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어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순수무아의 지경에 빠지게 하는 수국 꽃은 정말 특별한 꽃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종달리와 일부 몇 몇 장소에서만 수국 꽃이 가득히 피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었는데 요즘엔 그 인기를 실감한 듯 제주 사람들이 수국을 엄청나게 많이 심어놔서 여기저기, 이집 저집의 울타리와 정원 속에서 수국 꽃이 만발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종달리 근처 카페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제주도 전역에서 길가에 풍성하게 피어있는 수국 꽃을 만날 수 있다. 어떤 곳에선 파란 수국 꽃이, 어떤 키페에선 분홍 꽃이, 어느 길에선 보라색 수국 꽃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온평리의 혼인지에선 또 유난히도 짙은 파란색 수국 꽃들이 사람들을 맞아준다. 혼인지는 꽤 아담하고 예쁘고 조용한 곳이지만 여느 관광지와는 달리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서 나한테는 산책 장소로 꽤 선호되는 곳인데 6월 하순쯤에 연못으로 통하는 산책길이나 군데군데 한옥 건물을 둘러싼 호젓한 길들에 파란색 수국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은 정갈하고 차분한 혼인지의 분위기와 어울려 가히 제주 제일의 정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진하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준다. 서양식 정원도 물론 아름답지만 한옥의 기둥이나 처마선, 기와색깔, 한국적 연못, 한국적 정원이 자아내는 특별한 분위기가 선사해주는 美感은 그 어느 것도 따라오지 못할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혼을 건드리는 것 같다.      


  수국 명소라고 하는 곳들은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지만 6월의 제주를 말할 때 수국 꽃들과 관련된 장소라면 내게는 종달리와 혼인지 만한 곳이 없을 만큼 나는 이 두 곳에 만족한다. 돈을 내고 입장하는 수많은 수국 명소에서는 인위적인 사람의 손길이 너무 많이 느껴지면서 자연스러운 맛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 관심이 가지 않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수국 꽃들은 자체적인 색소에 의해 꽃의 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토양의 성분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고 한다. 즉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다가 점차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 색을 더하다가 결국에는 보라색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색이 변하는 것은 처음뿐인 것 같고 파란색 꽃은 파란색으로 항상 피어 있고 보라색은 보라색으로, 빨간 색 꽃은 빨간 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것들은 종자개량으로 바뀐 것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초여름과 함께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국 꽃의 자태는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부푼 행복감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키우기도 쉬운 편이어서 처음 뿌리가 내릴 때에 정성을 다해 물을 주고 관리해주면 그 다음부턴 자기 혼자 알아서 왕성하게 번식을 해나가고 꽃을 피우고 풍성해지기 때문에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나 듬직한 맏이를 곁에 두고 있는 느낌마저 가져다준다. 2~3년 만에 훌쩍 커버려 사람 키만큼 껑충해지고 축복처럼 가득 꽃송이를 달고 있는 수국은 뭐니뭐니 해도 제주의 여름을 강렬하게 대표하는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꽃이다. 나는 6월만 되면 수국 꽃을 만날 생각에 다급해져서 마음부터 먼저 수국 꽃길로 달려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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