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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y 14. 2022

“ 부~~자 되세요 ”

온국민 부자 되기 캠페인

 “부~~자 되세요”  십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대유행이었다. 한 카드회사가 만든 광고가 공전의 대히트를 친 것이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예쁜 여자 연예인이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면서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무슨 신드롬이라도 일으킨 듯, 자신이 꼭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따라서 활짝 웃으면서 “부~~자 되세요”를 외쳤다.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덕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서 했고 신년에 보내는 연하장에도 이 말이 실렸다. 나는 이 현상이 우리나라 전체를 뒤덮는 것을 보고 실없이 웃고 또 웃었을 뿐이다. 나는 이 말을 누구에게도 하기 싫었고 누가 나에게 이 말을 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고 속으로는 거부감 때문에 거의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그만큼이나 이 말이 미치도록 싫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진심으로 이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왜 나한테는 이 말이 그토록 싫었는지 모르겠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이렇게 부자 되기 열풍에 미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 말을 반복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도대체 이것이 인사말로 적당한 것인가, 그것도 새해 첫 인사로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정말 없단 말인가, 혼자서만 이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인가 싶어 나는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수없이 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나 남에게 새해에 덕담으로 주고받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건강, 행복, 성취, 결혼, 승진, 대학합격, 성공, 새 생명의 탄생, 장수, 무병 등등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소망들이나 부자 되기나 그게 그거 아니겠느냐고, 뭘 그렇게 꼬치꼬치 따지고 있느냐는 핀잔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들을 빌어주는 것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해결되니까 부자나 되라고 빌어주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이제는 정말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렇게 직설적이고 즉물적인 욕망에 지배되는 사회가 되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일뿐이라고, 부자가 되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화두이며 우리가 추구해 마지않을 최대의 관심사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시키는 것 같아서 영 마음이 불편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어떻게 되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유교적 사회라고 인식되어 왔다. 조선시대부터 우리의 정신을 지배해온 유교적 가치관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욕망을 말하거나 현실적인 욕심을 추구하거나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져왔다. 개인들의 관심이나 욕망은 스스로 추구는 할 수 있으되 내놓고 말하고 욕심을 내보이고 갖기 위해서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젊잖치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더더군다나 그것이 돈이라는 대상일 때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생의 목표가 돈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어야 했다. 학문의 도야, 인격의 수양, 인간으로서의 도리 등을 최대의 가치로 여겨온 유교적 문화로 보았을 때 이것은 정말로 언어도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지적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적이라니 웬 말, 너도나도 뒤질세라 마치도 갖고 있는 부를 나누어 주듯 서로에게 이 말을 해주느라 열심이었다. 이 말을 안 하면 오히려 깍쟁이처럼 취급받을 지도 몰랐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케케묵은 유교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적 가치관, 불교나 이슬람적 가치관에서도 이러한 부의 추구는 건강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없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친구도 가족도 부모도 선생도 제자도 몰라보는 사회가 된 것이 물신주의적 가치관의 결과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유교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배척되어 온지도 이제는 꽤 되었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유교니, 정신이니, 문화니 외쳐대 봤자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냉소밖에 없을지 모른다. 나 또한 유교적 가치를 절대적 우위에 놓고 있지도 않다. 평소에는 아예 관심도 없다. 확실히 현재와 같은 시대에서 장유유서니 남녀유별이니 부자유친이니 한들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지 현재까지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이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여자인 내 입장에서 보아도 이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남존여비 어쩌고 하면 나부터도 목소리 높여 상대를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전해져 내려오던 모든 가치를 부정한다면 도대체 무얼 갖고 살아야 하는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가치관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다. 도덕적 이념 상실의 시대에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900년 후반 대 이후로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점점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학교를 안 다녔어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사람의 도리를 모르지는 않았다. 공동체를 이루는 작은 사회에서 태어날 때부터 귀에서 귀로 전해져 내려온 어른들의 가르침대로 살면 최소한 패륜이나 패덕은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동네 훈장님이 회초리를 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교훈을 귀동냥으로 듣기만 해도 사람이 할 도리는 모두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대학, 대학원, 외국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이 주위에 넘쳐날 정도로 학력과잉의 시대가 되었지만 도덕률은 그에 반비례해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판단은 나만의 잘못된 해석일까? 전 세계가 동일한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고 첨단문명의 발명체가 하루하루 새롭게 사람들의 일을 대체해주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빛의 속도로 달려 나가는 눈부신 지식발전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겨운 요즈음 사슴이 말이 되는 것과 같은 가치전도를 경험하면서 씁쓸한 입맛을 느끼는 사람이 꼭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부자가 되는 것이 싫어?” 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해온다면 나도 잠깐은 대답을 망설이면서 주춤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 또한 그러하니까. 그렇지만 모든 가치를 뒤로 한 채 오로지 부자가 되기만을 추구할 때의 그 부작용이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조심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치러야할 희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쩌다 운 좋은 사람은 나쁜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부자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부자가 되려면 본인의 각고의 노력은 물론이지만 여러 가지 불법과 편법에 발 담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던 나로서는 ‘부자 그 자체’ 보다는 ‘정당한 부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이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짧은 지금에 와서는 내 형편에 맞게 ‘안분지족’을 목표로 살고 있고 그것이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나의 부모님이나 내 형제들, 내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의 목표라고 확신하고 있다. 부(富)에 매몰되어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진 다른 모든 아름다운 가치들을 복원시키기 위해 나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극동 지방의 한 작은 나라에서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가난을 물리치고 이만큼이나마 살게 된 것은 해방 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많이 배우고 더욱 많이 일하고 빨리빨리 일처리를 한 결과가 아니냐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100% 동의해 주고 싶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올림픽 정신을 삶에서 구현시킨 민족으로서 이 보다 더 찬란한 성취를 이룬 민족이 이 세계에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단연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부를 누리고 살면서 우리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고 격려하고 더욱 잘 살라고 말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할지 모른다. 그 말에도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 정도 잘 살게 되었으면 됐지 뭘 더 잘 먹고 잘 살겠다고 그처럼 극성을 떨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됐으면 그 다음의 단계를 향해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IMF 사태가 오고,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고 나서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져서 이렇게 약간 뻔뻔해진 것이 아니겠느냐고 할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사는데 지쳤고 힘들어 하니까 힐링이 필요한 차원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이렇게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부자 되세요”라고 소리높이 외치기만 하면 정말로 부자가 되긴 되는 것일까, 부자만 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어떻게 되도 좋다는 것일까?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 고작 부자가 되는 것, 그것뿐이란 말인가, 부의 추구만이 아닌,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고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주고 작은 것 하나부터 양보하는 사회, 정신적 가치가 물신주의적 가치 아래 매몰되지 않는 사회, 문화가 숭상되고 예술적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는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통합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올바른 가치관과 철학의 부재와 빈곤, 이것이 오늘 날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이다.     


  옛날 잡지를 뒤적이다가 이 문구를 오랜만에 다시 보고 열 받아서, 옛날의 불쾌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몇 글자 적어보았다. 너그러운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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