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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20. 2022

크노소스 궁전

기원전 2000년 경의 서양문명의 발상지에 가다

  크노소스 궁전은 크레타 섬의 수도인 이라클리오에서 남쪽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900년 경 영국인 아더 에반스 경에 의해 발굴된 이 궁전은 발굴 당시 온 세계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끌면서 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의 중심이 되었다. 크노소스 궁전의 발굴과 그 이후 연구에 의해 명확해진 사실은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 보다 500년이나 앞선 문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2000년경 크레타에 문명이 태동하던 시절 크레타는 아프리카의 이집트나 아라비아 반도와 활발한 중개무역으로 부가 축적되고 세가 확충되어 그 당시 크레타 전 지역을 통일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노스 왕의 강력한 통치아래 고도로 발전된 문명과 국가를 확립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 유감스러운 것은 에반스 경의 크노소스 궁전 발굴은 그의 평생에 걸친 헌신과 노력으로 성취된 것이고 인류문명사 발전을 밝혀낸 중요한 연구와 발굴이었지만 그의 과도한 의욕이 궁전 이곳저곳을 자기 맘대로 복원하고 뜯어내고 기둥을 새로 세우거나 그림을 채워 넣음으로써 문화사적 가치가 훼손되어 세계문화유산에 기록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로서 앞으로의 고고학적 연구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크레타섬은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로 농사가 발달했고 관개시설까지 축조할 수 았었던 당시의 농업기술로 풍부한 농업생산을 바탕으로 예술과 정치를 꽃피워 나갈 수 있었다. 그리스 전설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미노스 왕의 궁전이었던 이 크노소스 궁은 1000개가 넘는 방과 3,4층 때로는 5층으로 이루어진 정교하고 웅장한 건물들로서 그 오래전에 어떻게 이러한 궁전 건축이 가능했는지 후세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초기청동기 시대의 인류가 발전시킨 모든 기술을 집약시킨 최대 완성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직사각형의 중앙광장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왕과 그 가족들을 위한 방들이, 또 그 서쪽에는 제례와 정치를 위한 수백 개의 작은 방들이 배치된 이 크노소스 궁전은 아더 에반스경이 발굴하기 전까지는 신화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궁전이었던 것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고 현실 속에 우뚝 서게 되었다. 전설 속에서는 복잡하고 오묘하고 수많은 방들로 이루어진 이 궁전이 미궁(Labyrinthos)으로 일컬어지고 한번 그 안에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해마다 각각 7명의 소년 소녀를 인신 제물로 바쳐야했던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퇴치하기 위해 자진하여 공물로 바쳐져서 그 안에 들어가게 되는데 테세우스에게 한 눈에 반한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실타래를 주어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뒤 미궁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하지만 아리아드네는 아테네로 가는 도중 낙소스 섬에 들렀을 때 잠을 자는 사이에 테세우스에게 버림받고 그 후에 디오니소스와 결혼하게 된다.     

 

  미노스 왕과 관련된 또 하나의 전설은 미노스 왕이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고 조각가, 발명가였던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둘 목적으로 이 미궁을 건설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솜씨가 너무 신묘해서 그가 만든 조각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나 동물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미궁 건축이 완료되자 미노스왕의 미움을 사게 된 다이달로스는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이 미궁에 갇히게 된다. 자기가 만들었음에도 이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다이달로스는  자기와 아들인 이카로스에게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붙여서 그 미궁으로부터 탈출한다. 그러나 낙소스, 파로스, 델로스 섬들 위로 날아가던 이카로스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올라 밀랍이 녹아서 바다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카로스가 떨어진 바다를 오늘날에도 이카리아해로 부르고 있고 이카로스의 시신이 묻힌 섬을 이카리아 섬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신화는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한편에서는 신묘한 발명가 다이달로스에게 주목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카로스의 추락에 관심을 기울인다. “끝없는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이카로스의 교훈은 나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왜 인간은 두 발로 땅에 붙박힌 채로 땅을 떠나지 못하는가? 나의 불만은 그것이다. 아무리 작은 참새라도 날개를 가진 존재에게 무한한 부러움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날개를 붙이고 잠깐 동안이라도 하늘을 날아본 이카로스가 부럽기까지 하다. 이 세상에 주어진 공간인 땅, 바다, 하늘 세 가지 중에서 나에겐 하늘이 제일 살고 싶은 공간이다. 그것은 무한대로 이어지고 거기서 나의 존재는 무한대로 이어질 테니....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해선 안 된다. 이 세상의 어느 생명도 육해공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은 없으니. 새들은 지상으로 내려오면 죽게 되고 어류도 땅에 오르는 즉시 죽게 된다. 사람은 두 발을 갖고 이 지상에 살면서 하늘과 바다로 잠시 놀러 갔다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비행기가 발명되고 우주선도 발명된 이 시대에 가끔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잠시 떠 있는 것으로 만족하자. 너무 하늘을 탐하다가 이카로스처럼 파멸을 맞이할 수도 있으니...      


  크노소스 궁전에 가보니 전 세계에서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이 문제가 된다는 기사에 부합하듯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쪽에 에반스 경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높은 기온 속에 햇빛은 쨍쨍하고 사람들은 많고... 우리가 선택한 영어 가이드는 여자였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잽싸게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사람들 뒤에서 들을 때면 거의 뭐라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기 위해서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의 지치고 피곤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었다. 반은 듣고 반은 못 듣고 하면서 1시간 반 정도 그녀를 따라다니다가 드디어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우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루루 몰려서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녀가 말해 준 내용 보다는 안내책자에 의지해서 다시 한 번 궁전 내를 돌아보았는데 그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그림엽서에 항상 등장하곤 했던, 크노소스 궁전에서는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빨간 기둥의 발코니는 역시 이곳에 와서 직접 내 눈으로 보길 잘 했다는 확신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회랑과 계단, 발코니, 각각의 크고 작은 방들이 왜 이곳을 미궁이라 부르는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각각의 방들에는 채광과 배수 시설도 완벽하게 배치되었고 중요한 방들은 동물과 꽃, 제사의식을 소재로 한 선명한 벽화들로 채색되었다. 방이나 홀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 창고에 놓인 도기류들과 항아리들,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물을 끌어와 채운 수조와 수관들, 2층인지 3층인지 분간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의 방과 계단들, 튼튼하게 축조된 회랑의 기둥들이 B.C. 2000년 시대의 유물들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고 완결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래 다섯 마리가 뛰노는 프레스코화의 색깔이 그토록 선명한 것도, 그 아래 돌기둥들의 기하학적인 무늬도, 우아하고 멋있는 뿔을 자랑하고 있는 황소머리 프레스코화도, 제물이 든 항아리를 손에 받쳐 든 두 명의 청년을 그린 프레스코화도 시대를 거슬러 바로 현재의 작품인 것처럼 생생하고 아름답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우아함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외계의 별에서 잠깐 동안 지구로 놀러온 외계인들이었을 거란 농담을 하곤 한다. 그들이 이룩한 미노아 문명이나 미케네 문명들을 보았을 때 4,5000 년 전에 존재했던 그들이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홀연히 나타나서 지구에 온갖 문명의 기초를 세워놓고 사라진 고마운 외계인들일 것이라고...

  (20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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