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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Feb 21. 2022

엘라폰니시

크레타섬 남쪽 끝. 시원의 바다.

  엘라폰니시 바다를 도대체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도대체 이건 무어란 말인가? 나는 엘라폰니시 바다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말한다면 너무 진부한 표현일까? 어떤 말로 형용하려고 해도 엘라폰니시 바다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너무나 절대적인 것 앞에서 인간들의 언어가 무용해지는 것처럼 엘라폰니시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다. 모래톱 바로 아래에서는 연한 노란빛이었다가 조금 더 가면 연한 하늘 색, 또 그 밖으로는 진한 잉크색의 바닷물이 펼쳐지는데 그 색들의 오묘한 조화를 보고 있으려면 눈이 시려온다. 절대적 아름다움 앞에서는 가슴이 철렁 흔들거리고 호흡이 멎는 듯 하고 눈은 아득해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과 기쁨.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감사함 등등이 수 분간 머릿속을 휘젓는다. 찬란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스의 해안가 전체를 내가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그리스 바닷가는 특별히 아름답다. 바닷물은 토를 달 수 없을 정도로 맑고 푸르고 해안가 모래사장은 길고 아름다웠으며 내려쬐는 햇볕 아래 수면은 더 할 수 없이 잔잔하다, 거의 모든 바닷가들이 이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엘라폰니시의 바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는 어디에서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속으로 연신 놀라고 탄성을 지르면서 바다를 응시했다. 꿈에서나 보았음직한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는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이 바다는 특별히 분홍색모래(pink sands)로 유명하다. 바다의 물결이 제일 처음 뭍에 닿아서 찰랑거리는 그 부분이 길게 띠처럼 이어진 분홍색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얇은 띠처럼 돼있는 부분의 바닷물이 분홍색인 것처럼 보인다. 그 분홍색 모래는 산호초와 조개의 껍질 등이 오랜 세월 바닷물에 침식되어 부서져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분홍모래가 신기한 사람들이 몰래 그것을 떠가지고 가는 일이 많아져서 분홍모래가 옛날 보다 훨씬 적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그렇게 모래를 가져가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우리에게 미리 당부를 해둔 터였다. 사람들의 물욕이란 이처럼 터무니없이 무분별해서 문제다. 그걸 가져가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지?      


  엘라폰니시로 출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날 Oneday trip으로 예약해둔 여행사의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아침 7시에 호텔 식당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가서 급하게 아침을 해결하고는 (이날 우리는 아침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20분 안에 밥을 먹고 준비를 마치고 30분에는 호텔을 떠나야만 했으므로) 호텔 뒤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 여행사에서 지정해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한 5분쯤 기다리고 있으려니 조그만 미니버스가 와서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우리가 타고 갈 대형버스 있는 데까지 우리를 데려가기 위한 버스였다. 나는 오늘의 여정이 이제 비로소 시작되는구나 하면서 약간 흥분된 가슴을 안고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크레타 섬 북쪽 해안을 따라 난 길로 그리 급하지 않은 속도로 달려갔다. 짙푸른 크레타 바다가 그 길을 가는 내내 창밖으로 보였고 가는 길에도 중간 중간 서서 두 세 명의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정거하곤 했다. 그 사람들 얼굴을 보니 그 표정 속에 내가 느끼는 흥분이 그대로 읽혀졌다. 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들은 그리스 해안가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바닷가 호텔촌, 팬션촌의 풍경을 하고 있었다. 여유롭고 한가하고 느긋한 풍경. 이곳에선 유난히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해안가를 벗어나 산골짜기로 방향을 틀면서 산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낸 좁은 길을 달려야했기 때문에 매우 위험스러워 보였는데 운전자는 그런 길에 이골이 난 듯 곡예운전을 하면서도 흥얼거리기도 하며 아주 태연해 보였다. 하여간 나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필요이상으로 오돌오돌 떨면서 스스로의 공포에 갇히고 마는 꼴이니 오나가나 나라는 사람이 문제였다. 버스는 한가롭게 해안가를 달렸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가 여러 가지 다채로운 풍경을 펼쳐 보여주면서 쉬지 않고 달려서 드디어 엘라폰니시에 도착했다.    


 

  엘라폰니시에는 일부러 편의시설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거기에선 화장실도 식당도 상점도 다 간이시설이었다. 여름 한 때만 잠깐 열었다가 해수욕 기간이 끝나면 다 철시하여 겨울에 오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다는 곳이다. 그러는 이유는 충분히 알만했다. 엘라폰니시 해변은 크레타 섬의 동남쪽 끝에 위치하고 있어서 섬의 다른 남부지역처럼 발전이 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관철되어 이곳에선 호텔이나 리조트, 펜션, 식당, 가게들을 절대로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이곳의 해변은 여름만 지나면 텅 빈 상태로 돌아간다. 엘라폰니시에서는 해변과 바다를 빼고 나면 저 뒤쪽 덤불숲이 있는 곳에 화장실 하나, 샤워시설 하나, 간이식당을 겸한 가게 하나만이 인공시설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이 자연 그 자체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쓸쓸하다는 인상까지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낙후된 시골구석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선 오직 바다와 하늘만 보인다. 나는 참으로 잘 하는 정책이라고 손뼉을 마구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구가, 자연이,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냥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인간이 그것들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잠깐 그것들을 누렸다가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것도 손상되지 않은 모습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우리보다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우리가 누리던 것들을 우리 후손들이 못 누리게 된다면 그건 공정하지 않다.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일수록 더욱 그 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려면 이 정도 규제나 제한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인간들은 조금만 자유가 허용되면 오만불손해지면서 닥치는 대로 자연을 훼손하고도 미안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엘라폰니시의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려니와 이러한 인간의 노력도 한몫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엘라폰니시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둥글면서도 길게 뻗은 해변이 우선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모래사장은 너른 들판처럼 환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까지 해변의 풍경을 보려면 눈이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해변에서 바닷속으로 한참을 걸어가도 물은 무릎께까지 밖에 안 온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꽤 멀리까지 걸어 나가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이나 수영에 서투른 사람도 이 엘라폰니시 바다에서는 빠질 염려 없이 마음껏 물장난을 해도 좋다. 혹시 장난치다가 잘못 해서 물을 마신다 해도 이 엘라폰니시의 바닷물이라면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햇빛을 받아 출렁거리는 물의 이랑이 하얀 모래위에 그대로 어른거리고 에메랄드색 바다는 우리들의 발목을 적신다. 옥색 빛의 바다는 저 멀리에서는 햇빛을 반사하여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그리고 저 너머에서는 짙푸른 잉크 색깔로 변한다. 이 색깔들의 조화는 그대로 우리 눈을 멀게 만들만큼 아름답다. 이런 색깔의 바다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201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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