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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Mar 22. 2023

붉은 오름에 오르다

  어제 모처럼 붉은오름 등반을 했다. 나는 제주도를 좋아해서 사실 남들과는 비교가   정도로 제주도를 많이 오가는 편이다. 갖고 있는 여윳돈을 몽땅 거기에 쏟아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게  하는 짓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   때마다 오름   개쯤은  잊지않고 올라가는 편이어서 제주 사람에 비하면 턱도 없이 모자라겠지만 제주가 고향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많은 오름을 올랐다. 붉은오름은 사려니숲길 옆에 있어서 사려니숲길을 가며오며 표지판은 여러  본적이 있지만 특별히 무슨 느낌 같은 것이 없어서 언젠가 가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던 차에 어제 드디어 결심을 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작년에 물영아리오름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물영아리오름이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분화구 안으로 직접 내려가 볼 수도 있고 그 모습이 아름다운데다가 분화구 안에 람세르 습지가 있어서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들었지만  거기를 가기보다는 새로운 ,  가본 곳을 가자 하면서 어제 드디어 붉은오름에 가게  것이다.


  나만 그런 건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경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 중에서 어느 오름에 가볼 것인가를 정하는데 있어서 오름의 이름이 큰몫을 하는  같다는 생각이다. 우선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오름들이나 유명한 오름들,  사람  사람이 어디 어디 갔었는데  좋더라 하는 입소문이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유형에 속하는 오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용눈이오름이나 다랑쉬오름, 거문오름, 새별오름, 저지오름 등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유명하다는 오름들을 왠만큼 섭렵하고 나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으로 오름을 선택할 때가 오는데 그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우선순위가 숙소에서 가까운 곳일 테고  다음이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오름 이름은 대부분 제주어인 고로 뜻은  모르겠지만 제주어 특유의 맛깔나고 짭쪼롬하고 재미있고 유머스러운 이름들은 왠지 모를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을 받은 곳이 아부오름. 낭끼오름, 백약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거슨새미오름, 물영아리오름, 밧돌오름 등이었다.


  그런 선택 기준으로 본다면 이 붉은오름은 너무 맹숭맹숭하고 평범한 이름 덕분에 영영 나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어제 남편이 그쪽으로 가보지 않겠냐고 묻기에 특별한 생각 없이 그냥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붉은오름이니까 뭔가 붉음과 관계된 어떤 특징이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오름 입구부터 붉은 색 흙과 붉은 색 돌, 바위 들이 눈에 띄었다. 이 붉은 색 돌과 바위 등은 특별히 화산송이 라고 해서 제주도에서 매우 귀한 대접을 받는 돌이다. 제주도만의 특별광물자원으로서 허가 없이 도외 반출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할 때 점토가 고열에 탄 화산석으로 생성된 것인데 매우 가벼워서 물 속에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 특산물인 제주삼다수는 바로 이 화산송이로 걸러낸 물이라서 그렇게 맛좋기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색깔이 다른 흙과는 다르게 유난히도 고운 붉은 색을 띠기 때문에 그것들로 덮힌 이 오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붉은오름이란 이름을 떠나서 생각할 수없는 숙명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귀포 쪽에서 99 도로를 타고  올라가다가 사려니숲길 입구를 지나 조금 가면 붉은오름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과 매표소를 지나면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의 넓은 숲과 놀이시설,  잔디밭, 여러 갈래의 산책길이 있었는데 붉은오름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어야 했다. 오름 표지판 앞에서 남편은 "괜찮아?   있겠어? 컨디션 자신 없으면 이쪽 평탄한 길로만 한바퀴 돌아도 되고.." 라며 나의 의향을 물어왔다. 사실 그제는 불면증으로 잠도 거의  잔데다가 배도 약간 아프고 몸살기 비슷한 것이 있어서 아침도 제대로  먹고 비실비실해서 점심 사먹으러 나간  외에는 바깥 활동을 끊었었다가 어제 겨우  컨디션이 그나마 그제보다는 괜찮아진 터라 남편으로선 약간의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했다 혹시라도 올라가고 내려오는 도중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우리  에게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를 가져올테니 말이다. 나도 완전히 자신감은 없어서 표지판 앞에서 1 정도 망설였지만 언제  와보겠어 하는 의구심과 회의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올라가 보리라 발을 내딛었다.


  길 초입에는 굵은 밑둥을 자랑하는, 연수가 오래돼 보이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줄 맞춰 서 있듯이 시원한 풍경이 이어졌다. 제주의 숲에는 이런 풍경이 있어서 언제나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 시원하게 하늘로 죽죽 뻗은 나무들이 모든 잡념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너무 멋진 모습이기 때문에 무슨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진다. 그런데 도무지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다른 숲들은 대부분 편백나무면 편백나무, 삼나무면 삼나무 , 이런 식으로 한 가지 대표수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이 숲에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지라 한번 제대로 구별해보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아마도 잎사귀 같은 것이 다르겠지만 그 잎사귀란 것이 몇 십미터 되는 나무 꼭대기에 달려 있는지라 나로서는 까치발로 높이 서도 깡총발을 뛰어도 확인이 불가능했다. 전부터도 궁금했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번 차이점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모처럼의 시도는 그렇게 헛되이 끝나버라고 말았다. 내 눈에 보이는 기둥과 줄기는 너무 똑같아 보여서 돋보기를 들이댄다 해도 기대난망이었으니 포기하지 않고 어쩔 것인가. 식물학자나 생물학자가 괜히 있나 우리 같은 사람이 못 알아 보는 걸 확실하게 구별하라고 있는 것이지, 알아내지 못해 꼬인 심사를 아렇게 얼버무리고 나서 나는 스틱을 단단히 세워 잡고 곧장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음부터 이어진 길에는 바닥에 굵고 두꺼운 야자매트가 깔려 있었으므로 완만한 경사로를 올라갈 때까지는 힘이 별로  들었다. 그런데 내가 어제 유독 나무들에 관심이 많아져서 였는지 아니면 특별하게 붉은오름들의 나무들이 별다르게 보여서 였는지는 모르지만 올라가는  양옆으로 특이하게도 신기한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원래도 제주의 곶자왈 같은 곳을 가면 기기묘묘한 나무들과 바위들이 얽혀있는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놀라게 되지만  붉은오름의 나무들도 곶자왈의 나무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특이하고 아름다워서 가다가 중간중간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마다 귀찮음도 잊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다른 오름들과 달리 나무들 앞에 나무이름 팻말이 상당히 많이 붙여져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때죽나무, 참식나무, 산딸나무... 그밖의 더 많은 팻말 붙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내 머리는 그 이상의 이름들은 기억하지 못 했다. 어쨋든  종류의 나무들이 많이 분포된 지역 같았다. 대부분의 오름들(아니  말에는 어폐가 있다. 내가 오른 대부분의 오름들이라고 해야 맞다) 인공조림으로 이루어진 숲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문외한인 내눈에도  붉은오름은 천연원시림에 가까워 보였다. 온대와 난대 한대 수종이 다양하게 분포된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라니 !! 그래서 올라가는 길에 훨씬  빈번히 주위의 나무들에 눈길이  수밖에 없었다.


 누가 자연을 평화롭고 안전하다 했는가? 동물들도 심지어 식물들도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한다. 동물들 중에는 보호색을 띠거나 모양을 바꾸는 등의 위장을 해서 자기 몸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 나뭇잎꼬리 도마뱀처럼 주위에 있는 나뭇잎과 전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깜쪽같이 변신해서 자기 몸을 지키는 것들이 있다.. 식물들도 마찬가지다, 숲에 들어가서 보면 자연환경과의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기묘묘하게 틀어진 나무 줄기와 가지를 보며 놀라서 입을 벌리게 된다. 어떤 나무 기둥에는  보기 싫은 혹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서 혹부리 나무가 된 것도 있고 가지를 직각으로 꺽었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뻗은 나무도 있고 나무 기둥 하나가 나사처럼 배배 꼬이면서 올라가다가 다시 쪽 뻗은 것도 있다 어떤 바위 위에는 날려져 온 흙과 나뭇잎을 자양분 삼아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려 훤칠하게 가지를 뻗은 나무들도 있다.  길을 가다가 우뚝 멈춰서서 남편과 신기한듯 웃음 지면서 보게 된 어떤 나무는 나무 뿌리가 왼전히 뽑힌채 옆으로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장관이었다. 도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힘이 이 큰 나무를 이렇게 송두리째 뽑아 넘어뜨렸을까  매우 궁금했고 자연의 위력이란 실로 엄청난 것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어떤 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나무 줄기 가운데 옹이가 생기고 구멍이 패여 작은 빗물샘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전투의 역사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마다 깊게 새겨져 있는 걸 보면서 무릇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치러야할 고난의 숙명이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통인가 나무가 이상하게 휘었다고, 위로 자라야 할 것이 옆으로 자랐다고, 옆에 있는 나무를 지지대 삼아 꼬불꼬불 감으며 자랐다고, 바위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그워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고, 뿌리채 넘어져 뒤집혀 졌지만 그래도 일부는 옆에 있는 흙을 움켜잡고 살아 있다고 나무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살아남아 숲의 일부분이 되어준 그들에게 오히려 눈물 흘리며 경의를 표할 일이다  그 나무들을 일컬어 장애를 가진 나무라고 할 수도 없다. 장애는 커녕 역경을 이기고 생명을 이어가는 그 나무들의 모습은 다른 평범한 나무들과 달리 매우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경외심 마저 일으킨다.

  다른 날보다  배는  힘들게 숨을 헉헉 몰아쉬면서 가까스로 오름 끝까지 오르니 드디어 전망대가 나왔다. 전망대 양편으로는 주위를 파노라마 처럼 찍은 사진을 붙이고 일련번호를 붙여서  멀리 보이는 오름들의 위치를 가늠할  있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고 꼭대기까지 올라보니  아래로 넓은 들판과 집들, 길들, 산들과 숲들, 오름들이 보였다. , 이맛이야!!  역시 높은 곳에 올라 주위를 내려다 보면 우습게도 뭔가 승자가  느낌이 피어오른다. 흐흐 그냥 정확히 말한다면 힘든 순간순간을 이겨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서 그대로 똑같이 내려가는 방법이 하나 있었고  하나는 굼부리(분화구) 한바퀴  돌고 다른 길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분화구를 돌아서 다른 길로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분화구는 둘레만해도 1400미터에 달하니   분화구라고   있는데 분화구 속의 나무들이 너무 크게 자라서 둥그런 분화구를  눈에 내려다 보는  아예 불가능했고 부분 부분만이 가까스로 보이는 정도여서  점이 약간 아쉬웠다.

  밑으로 다 내려와서 찬찬히 둘러보니 이 붉은오름과 연결된 자연휴양림에는 산림휴양관 시설이 동그랗게 열을 지어 숲속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었고 3개나 되는 생태탐방코스가 있어서 다음에는 여기서 한번 자면서 주변의 탐방코스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오게 된 붉은오름이었고 사실상 올라갈까 말까 망설였던 오름이었지만 오르고 내려오니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더 오고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수종이 꽤나 매력적인 이 오름은 오랜만에 얻어낸 수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은 정말 안심하고 먹은 달디 단 약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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