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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Jan 11. 2023

회사와 가사 (會事와 家事)

중년 백수의 생 바라보기 8

물건을 사기 위해서 우리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간다. 가만히 보면 구매 장소에 따라 쇼핑하는 방법이나 남녀태도가 달라서 재미있다. 일에도 백화점 같은 일이 있고, 대형마트 같은 일이 있다.


백화점에는 온통 고급 브랜드들의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실용적인 물건보다는 타인의 관심이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제품들을 산다. 조그마한 가방 하나에도 몇 백만 원을 호가하지만, 우리는 줄을 서면서까지 물건에 대한 구매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그 가방을 너무나 아끼는 나머지, 평상시에는 들고 다니지도 못할뿐더러, 먼지조차 허용할 수 없다는 듯 집안의 장롱 속에 신줏단지처럼 모신다. 이렇듯 백화점에서 우리는 관상용에 가까운 제품을 산다. 한마디로 우린 물건보다는 허영을 사는 것이다.


자신이 사치를 하기 위해 백화점을 간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세일 기간엔 악착같이 시간을 낸다. 그러나 백화점은 365일 세일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그들이 파 놓은 함정이다. 백화점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구매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남자들은 원시시절부터 사냥에 능숙해서 그런지, 자신이 무언 가에 목표의식을 가지면 그 물건만 보고 직진한다. 그때에도 사냥감을 그렇게 얻었다. 반면 여자가 쇼핑할 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건을 살 때도 심사숙고를 한다. 남자들이 보면 심사가 뒤틀릴 정도로 고민한다. 예전에 여자들은 밖에 나갈 때도 위험한 맹수들이 없는지 주변을 확인했고, 채집하는 열매에 독이 있는지 없는지를 골똘히 살펴보고 연구해야 했다. 그래야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진화심리학적 행동은 아직도 우리의 쇼핑태도로 남아있다. 


거기엔 반해, 대형마트에 가면 우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질보다는 양이다. 한 개를 사는 것보다 한 다발을 사는 게 유리하기에, 그 싼 휴지도 10개씩 산다. 그래도 가격 부담이 없다. 그뿐인가, 먹거리 역시 완벽하게 안전이 보장되어 있기에 생각 없이 카트에 사정없이 싣는다. 백화점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쇼핑태도가 다를지라도 이곳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가격과 양이 싸다고 느끼면 서로 고갯짓 하나만으로도 구매를 결정한다. 심지어 시식코너에서는 남녀가 서로 맛보게 해 주며 다정하기까지 하다. 백화점에서는 아이들이 뛰는 것을 막는다면, 대형마트에서는 아이들을 아예 카트에 실어 놀이기구처럼 운전하며 즐긴다.

회사일은 백화점과 닮은 듯 다르다. 그곳에는 격식과 예의가 필요하다. 매일 가지만 매일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회사의 업무시간에 집중이 되지 않더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마치 일을 열심히 한 것처럼 느껴지는 묘한 안도감이 생긴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집에 있는 불안보다는 같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것은 흡사 백화점에만 있어도, 자신이 상류층이라고 느끼는 안도감과 비슷한 면이 있다. 따라서, 불편하지만, 꼭 있어야 할 곳이라고 느낀다. 나처럼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은 그런 소속감과 위치의식을 가지는 회사원들이 어떤 때는 부럽다. 하지만 백화점의 구매형태와는 다르게 남녀가 같은 공감대를 가지고 회사일에 임한다. 회사의 목표가 명확하게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집안일은 대형마트 같은 듯 닮지 않았다. 편하게 일할 수 있지만, 하다 보면 쓸데없는 일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대형마트의 물품들이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라 사도 또 사야 하듯, 집안일도 해도 표시가 안 날뿐더러 반드시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남자든 여자든 집안일이나 사적 인일보다는 티가 더 많이 나는 회사일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마트와 집안일이 닮지 않은 점은 남녀의 의견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니 당당히 집안일을 여자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여자는 하루 종일 힘든 아이를 보았으니, 당연히 남편이 회사일에서 귀가하면 아이정도는 봐주어야 남편이 요구하는 집안일을 할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 둘은 공통점을 찾지 못해 서로의 골이 깊어 간다. 마치 쇼핑의 방법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듯 말이다.


우리는 흔히 회사일은 더 중요하며, 집안일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집안이 평안하지 않은데, 어찌 사회일이 잘 될 수 있을 것인가. 가화만사흥(家和萬事興)이라고 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흥한다는 말이다. 회사는 우리를 언제 내쫓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사랑이라는 관계로 엮인 집안에서는 내쳐질 확률이 낮다. 그럼 어느 쪽에 더 충성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회 통념상 회사일에 더 집중한다. 그런 편견은 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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