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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섭 Jan 16. 2023

인생 사우(四友)

중년 백수의 생 바라보기 9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심심하면 뽑아 먹던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인연이 되어 그 후 커피는 갈색의 믹스커피밖에 없는 줄 알고 살았던 세월이 있다. 그때의 커피는 간식이었고, 주식이었으며, 밤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저 커피는 원래 다디단 음료라 여겼고, 인생 역시 믹스 커피처럼 달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는 말이다. 

대학에 올라와서 비로소 블랙커피라는 쓰디쓴 맛을 알게 되었다. 믹스커피는 이젠 올드한 아저씨들이 다방에서나 마시는 것이라고 여겨졌고, 블랙정도를 마셔줘야 인생을 쓴 맛을 아는 것처럼 우쭐해졌다. 마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처럼, 나의 젊음은 쓴 이야기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커피는 나에겐 쓴 인생의 경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운동을 좋아하셨다. 아버지 친구분들에 의하면 대학시절에 축구선수로도 유명하셨다고 한다. 중년의 아버지는 테니스를 즐기셨고, 난 그런 아버지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때 테니스장엔 어린 친구라곤 나 혼자였고, 마치 어른의 놀이를 하고 있는 마냥, 혼자 벽치기도 하고, 아버지와 어른들 사이에서 라켓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는 운동은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어른이 되어서는 한동안 운동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느지막한 나이에 친목을 겸하여 나가게 된 축구가 어느새 재미있어졌다. 불행하게도 승부욕이 강한 나는 너무 역동적인 나머지, 스스로를 수술대에 몇 번이고 오르게 만들었다. 수술에 들어간 돈 보다도 다친 몸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운동을 쉬면서 두통이 시시때때로 찾아왔고, 몸은 더 황폐해져 갔다. 덩달아 마음은 더 피폐해져 갔다.


부모님이 어느 외판원의 딱한 사정을 들으셨는지, 어느 날 어린이 위인전집을 책장 채 내 방안에 들여놓으셨다. 방학 때 심심하면 읽기 시작했던 위인전에 있던 인물이 시공간을 넘어 다른 세상의 일로만 생각되었다. 재미있었다. 그곳에는 많은 삶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고, 마치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는 것처럼 하나씩 빼서 읽었다.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장래희망은 바뀌었다. 과학자가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다가 종국엔 예술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때, 책은 나에겐 희망이었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정작 전공책들과는 가까워졌지만, 그 전공공부가 나와 책 사이를 이간질했고, 난 어느 순간, 전 국민의 평균 독서량인 일 년의 한 권도 보기 힘든 나날이 쌓여 갔다. 큰 마음먹고 숙제처럼 남겨 놓았던, 한 유명 소설가의 대하소설을 읽는데, 무려 1년이란 세월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 나에게 책은 하지 못한 숙제처럼 마음의 부채로 남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여자는 얼굴이라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예쁜 여자들만 보면 저절로 미어캣처럼 내 얼굴도 돌아갔다. 그땐 나만 이상한 줄 알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동시에 돌려진 얼굴은 돌아올 줄 몰랐다. 우린 미의 세계를 예술이 아닌 여자들의 얼굴에서 찾은 듯 천진난만한 득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자는 그렇게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 몇 번의 연예실패를 경험하면서, 인생은 덩달아 어두워졌다. 유행가 가사의 모든 사연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나를 향해 달려들곤 했다. 그 아련한 감정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끝이 마치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비관하기도 했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니, 찐한 아메리카노의 향은 구수해졌다. 하루 커피 두세 잔이 노년의 적이라는 치매와 성인병을 예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보약처럼 들이켜기도 한다 


힘든 재활을 마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니 내 몸속에 가지고 있던 모든 고통과 번뇌는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의 성적표를 받을 때마다, ‘참 잘했어요’를 받는 것처럼 나아지는 수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독서는 점점 나 이외의 세상을 알려주었고, 연신 ‘아’를 연발하기도, ‘어’라고 소리치기도, ‘흑’하고 울기도 한다. 그런 끄트머리에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드는 용기를 온전히 주었다. 


아내를 처음 본 날, 얼굴 외의 배경은 백지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빛이 났고, 그녀의 고개가 창 밖을 향할 땐 나는 창 밖 세상은 관심도 없다는 듯 그녀를 과녁처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땐 그렇게 얼굴만 봐도 행복했고,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얼굴보다 더 아름답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오류로 추억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만큼 값진 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함으로 삶이 빛나는 것이다. 내 인생과 더불어 함께한 삶의 사우(四友)는 첫사랑처럼 달콤하게 다가왔고, 인생의 쓴 좌절을 안겨주었다가 결국 은은하게 내 곁에 머물러 있다. 화롯불이 추운 밤을 버티게 해 주듯, 내 인생의 겨울을 끝까지 함께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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