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올해도 농사는 허탕이었구나."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창호지 문틈을 타고 새어 나왔다.
그 해, 이십여 필은 너끈히 넘는 비단들이 사랑방 한켠을 차지했다.
어머니는 비단 봇짐을 머리에 이고
어린 나를 등에 업은 채 강원도 두메산골로 행상을 떠났다.
갈길은 멀고도 험했다. 까마귀 울음만이 산허리를 메아리쳤고
허기진 배는 안간힘으로 몸을 끌고 갈 뿐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아래로 드러난 목의 힘줄이 일그러질 때마다 한걸음 또 한걸음을 내디뎠다.
해가 기울 무렵, 널찍한 마당을 가진 한 기와집에 도착했다.
인기척에 문이 열리자 참기름 냄새가 콧속을 가득 채우며 허기를 더 자극했다.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들어와 한술 드시죠."
주인의 따듯한 말에 사양할 틈도 없었다.
봇짐을 내려놓고 아이를 바닥에 앉힌 후 방으로 들어섰다. 한술 두 술 비빔밥을 입에 넣으니
흐릿하던 눈이 맑아지고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양푼 바닥이 드러날 무렵,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고, 우리 아이는!’ 허겁지겁 한 숟갈을 떠서 등 뒤로 넘겨주니,
아이는 고개를 들며 잘도 받아먹었다.
‘이제 배부르겠다.’ 싶어 뒤를 돌아보니
주인집 아이가 밥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아이는 건넌방 문지방에 걸려 넘어오지도 못하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머리통만 들썩이고 있었던 것을.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내 품에 있어야 할 아이, 내 손으로 챙겨야 할 아이조차 잃고 살던 고통의 시간
일제강점기, 쌀 한 됫박, 고무신 한 켤레도 귀하던 시절,
그러나 그 밤에도 별은 빛났다.
시리도록 아픈 시대 속에서도 한 점 희망처럼 반짝이던 별 하나.
그 이름, 8.15 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