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이어폰을 꼈다 뺐다 반복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계속 들려서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래도 그것들이 내면이 허기 말라빠진 나를 위한 소리이니
어서 주워들으라고 목을 조여왔다.
그래도 듣기 싫었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고개 흔들흔들 흥얼거리며 그저 가만히 있고 싶었다.
내 두 눈은 참고서의 꼬불한 글자로 향해 있었고,
정신은 무언가에 홀린 듯 음악의 선율을 따라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막혀 터져 버릴 것 같은 내 마음의 급류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흔들거리면서.
급기야 물리적인 힘에 의해 양쪽 귀 구멍에서 이어폰이 강제로 뽑히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기 더는 있을 수 없어, 집을 나가야겠어.'
이것이 내 인생 첫 가출의 갓밝이가 됐다.
주섬주섬 책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가방에 책들을 구겨 넣다가
'어디로 가야 하나!'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집 나가려니 잠은 '어디서 자야 하는지, 돈은 또 어떡하고.'
난생처음 엄마 지갑을 열어봤다.
배춧잎 2장을 꺼내 내 가방에 챙겨 넣고서
발자국 소리를 숨죽이며 집을 빠져나왔다.
학교 가는 것은 겨울방학중이라 다행인데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일까?'
생각하는 동안 발길이 멈춘 곳은 독서실 앞이었다
'바로 여기야, 그 누구의 잔소리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도 하고,
오늘의 사단인 음악도 마음 놓고 듣고, 배가 고프면 라면도 끓여 먹고
졸리면 바닥에서 잘 수도 있으니 이만한 데가 없어.'
독서실 모서리쯤에 나만의 자리를 호젓이 잡고 보니,
또래로 보이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밤이 깊어가면 저 친구들은 집으로 총총히 돌아갈 것이고,
나만은 여기에 남아야 한다.'
갑자기 두려움과 편안함이 뒤섞인 생각들이 몰려 왔다.
그렇게 이틀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나는데 누군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누굴까, 내 엄마가 맞는 걸까!'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아시고 오신 걸까!'
엄마는 세상 무엇이든 다 알고 찾아내는 존재인 것인가!
신기하고 이상스럽게 내 앞에 서계신 분은 분명 엄마임에 틀림없었다.
'난 죽었다.' 돈까지 훔쳐서 가출을 했으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오금이 저려왔다.
'엄마, 어떻게 여길...',
"밥은 먹었니?, 집에 가자!"
엄마의 첫마디였다.
"어디서 돈까지 훔쳐서 가출을 해?, 이런 못쓸...",
이런 말들이 가슴에 아프게 꽂힐 줄 알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아주 혼줄이 나야 할 순간에
내가 집 나와 밥 굶고 딱딱한 바닥에서 잤을 것을
먼저 염려하셨던 어머니, 나의 그리운 어머니...
잘못한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철없는 자식을 쾌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셨던 어머니,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과 국을 먹고 포근한 이부자리 위에서
잠을 자며 엄마의 잔소리도 그런대로 견딜만해졌다.
고2, 그때 그 시절 내가 몰래 가져가 쓴 2만 원의 행방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여 적금을 들어 200만 원으로
갚아드리며 나는 말했다.
"이것은 엄마의 그때 그 첫마디, 밥은 먹었니?"에 대한
밥값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