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비숑 생애
눈이 댕댕 부셔 잠을 깼다. 엄마는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일어날 생각도 않는다.
엄마 보는데서 내 화장실에 쉬~하면 간식도 얻어먹는데 애라 모르겠다. 급해서 안 되겠어.
소파 옆에다 쉬를 그냥 싸 버렸다.
냄새를 맡았는지 엄마가 일어나 거실에 나왔다. "뭐야 거실이 한강이 됐어. 쉬~ 계곡물이 철철 흐르잖아." 하면서 나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이 '개팔자 상팔자라고 한다.'
사람들은 내가 일도 안 하고 맘마만 받아먹고 낮잠만 실컷 자니 부러운가 보다. 사람들이 돈 벌러 다니느라 일하러 다니며 허둥대는 걸 보면 좀 딱하긴 하다. 근데 나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유' 란 것이 나에겐 없다. 산책 나갈 때도 목줄에 끌려 나간다.
그래도 요즘같이 뜨거운 삼복더위에 엄마가 저녁에 산책을 매일 시켜줘서 그 낙으로 살고 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한낮의 땡볕이 내리쬐는 베란다에서 꼼짝도 못 하는 화초군단들 보다야 내 팔자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낮에 엄마가 나가는 현관문 소리가 쾅~ 들리고 나면 그때부턴 내가 왕이다. 내가 화초들에게
여봐라~호령하며 멍멍 거려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내가 오로지 밥값 하는 일은 엄마가 돌아오면 헬리콥터 꼬리를 혼절하듯 흔들어대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엄마랑 마사토길로 맨발 걷기를 간다. 맨발 걷기가 끝나면 엄마는 오금이 저리도록 엄청 시원한 지하수물에 내발도 씻겨준다.
이럴 땐 엄마도 쪼끔 착한 것 같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댕댕이가 나에게 으르렁대며 달려들어서 십년감수했다. 엄마는 무조건 "괜찮아"라고 말한다. 나 스스로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너는 말을 왜 못 하는 거야."라고 말하다가 "강아지가 말을 하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하다가"강아지가 말을 하면 너랑 단둘이 있을 때 누구 욕하는 것도 모두 고자질할 테니 안 되겠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처럼 말 좀 했으면 좋겠다.
말하는 대신 내가 잘하는 "멍멍!" 짖기를 하기라도 하면 "놀랬잖아!"이웃에 시끄럽다면서 엄마는 나에게 "작게 짖어!"라고 한다.
이 모두가 문밖에서 소리가 나면 엄마를 보호하려고 하는 짓인데 말이다. 그렇게 매일 크게 짖지도 못하게 하더니,
며칠 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오른발을 밟혀서 발톱이 까맣게 멍이 들었다.
산책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엄마가 만지면 아프다. 속도 모르고 엄마는 미안한지 자꾸 만져댄다.
나는 키가 작은 '미니비숑'이라 몸집이 작아서
엄마 발 밑으로 죽어라 따라다니는 내가 잘 안 보이나 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아무 데나 쉬~ 싸면 무섭게 소리 질러도 화장실에 쉬~성공하면 '엄지 척!' 하며
맛있는 간식을 주니 엄마를 흠~ 의지하며 살아야겠다.
하루하루 쉬~ '내 화장실 성공'만 하면
간식을 바로 하사 해 주는 엄마가 있는 하늘 아래 귀여운 강아지로 태어난 나의 '미니비숑 생애'
이만하면 괜찮은 견생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