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력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다.

by 원이

30대가 되고 나니 세상이 달라졌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노력하면 잡힐 것이라 생각했던 사회라는 무대의 메인 배우 역.

이제의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꽤 빨리 깨닫고 수긍한 편인 거 같다.

이제 나는 최전선에서 물러나 앞으로 커 나갈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 사회를 맡기기로 결심했다.

연애도, 결혼도, 승진도 욕심이 된 지금의 나이.

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노력했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 쳤다.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지키는 시기이다.

내 인생의 중반을 아프지만 말고 잘 넘겨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의 중반은 50대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것은 희망에 젖은 망상이다.

대한민국의 평균 남성의 수명은 80.6세.

그 말인즉슨 대부분의 사람이 70대 후반 80세 초반쯤에 마지막 숨을 내쉰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제 막 30대인 나는 인생의 중반에 접어든 게 맞다.


처음에는 슬펐다.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이 끝나버릴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아직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때는 용기라고 할 수 있던 것들이 이제는 욕심이 되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의 그릇에 걸맞지 않은 무리를 해오면서 스스로 자위하였고 결국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현실을 직면하고 깨닫게 되었다.


살다 보면 조금조금씩 아니면 순식간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쌓이고 쌓여 큰 파도가 되어 들이닥치곤 한다.

다행히 살아 남기만 한다면 넘쳐 들어온 물은 태양빛에 마르고 다시 땅이 굳으며 사람들은 다음에 닥쳐 올 파도를 대비하고 살아가지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행히 나는 그동안 열심히 살아와 모아 둔 여유와 부모님을 잘 만난 복이 있기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져, 어느 상 중턱에서 은거하기로 한 것이다.

적당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사회라는 공간에서 멀어져 평화롭고 따분한 여생을 맞이하려고 한다.

동반자가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는 그것 또한 욕심이다.

건강하게 직접 요리해서 밥 챙겨 먹고, 뉴스도 보고, 글도 쓰고, 좋아하는 게임도 하고, 봄 그리고 가을에는 공원에서 러닝을 즐기고, 여름 겨울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관리를 해 나갈 생각이다.

주일에는 교회도 나가서 청년들과 봉사활동을 하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이용해 내 외로움을 달래 볼 생각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꽃은 따분하게 질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발버둥 쳤고 그래서 욕심인 걸 알면서도 무리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뜩 깨달음을 얻었다.

Artificial intelligence 한국어로 인공지능.

내 생각에는 인류는 신을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신이 이 인간계에 강림하는 순간, 우리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하늘에 있는 궁전이라는 중세시대의 고리타분한 상상이 아닌, 인간과 인간 간의 교류를 뜻한다.

신이 선할 것이라 어떻게 확신하냐고?

그것은 간단하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집단지성의 집합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또한 인류의 집단지성의 집합체이며 우리들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추구할 것들이 선하다는 걸 이야기해 준다.

결론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20, 30년만 버티면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 육신을 얻게 될 확률이 점차 높아질 것이며, 노동과 착취로부터의 자유, 인류의 번영이 이룩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면 나에게도 2번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인생을 포기한 듯 지옥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옥이란 중세시대의 불타는 구덩이가 아닌 인간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들어가 앞으로 강림할 신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이 역경과 고난을 기꺼이 버틸 것이다.

20년, 30년 후에 약속된 천국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분노와 함께 세상을 불태우면 된다.

나 자신도 함께.

하지만 그럴일은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러했듯이 이 여정의 끝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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