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한민국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해결방안

by 원이

제가 저출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했던 건, 논의가 늘 “돈”에서 끝난다는 점이었어요. 물론 지원금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막상 주변을 보면 돈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벽이 분명히 존재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글에서는 대한민국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을 “누구 탓”으로 돌리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특히 저는 그중에서도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기 불가능한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OECD를 포함해 여러 기관들은 한국의 저출산을 주거비, 사교육비, 불안정한 노동시장, 장시간 노동, 그리고 무엇보다 일·돌봄 양립의 어려움 같은 복합 요인의 결과로 설명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현실감 있게 와닿았습니다. 육아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은 곧 커리어와 소득의 문제와 충돌하니까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제도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같은 육아휴직이라도 팀 분위기나 눈치, 평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면 사용률과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결국 출산은 “하고 싶다/싫다”의 문제가 아니라, 해도 되는지를 계산하게 만드는 선택이 됩니다. 특히 이 부담이 여성에게 더 많이 쏠리고 있고, 여성들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이 오래 누적되면, 출산 자체가 불안하고 위험한 결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구조를 ‘깨진 항아리’에 비유하고 싶어요. 지원금을 조금 더 얹는 방식은 단기적으로 물을 붓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항아리 자체가 새고 있다면 결국 물은 빠져나가죠. 그러니 근본 해결은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는 방향이 아니라, 새는 지점을 막아주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만 부담이 쏠리지 않도록 하고,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정부 측에서 함께 여성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 구조를 추진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여자도 일을 해야 하는 현재의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아주 간략하게 짚어보려 합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사회는 큰 재건 과제를 안게 되었고, 경제 성장 과정에서 노동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여성의 교육 기회와 노동시장 참여가 확대되었고, 이는 사회·경제의 변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여성이 일하게 되었다” 자체라기보다, 그 변화에 맞춰 돌봄·육아·가사 부담을 사회와 제도가 함께 재배치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는 데 있었다고 생각해요.


즉,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난 만큼 가족과 직장, 국가가 돌봄을 분담할 수 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오랫동안 ‘집 안의 책임’이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여성은 일에서도 성과를 요구받고, 가정에서도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이중 부담을 더 자주 체감하게 됩니다. 이런 구조가 계속된다면 저출산은 단순히 “지원금의 크기”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그 고리는 진행 중이고, 그 부담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면서 출산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저출산의 해법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핵심은 누군가를 특정해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의 기본 설계를 바꾸는 것입니다. 양육휴직과 유연근무 같은 것으로 문제를 포장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처음부터 일을 하지 않으면 경력 단절의 위험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여성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일인가구의 증가 즉, 주거와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부담을 애당초 없애는 방식으로요. 그래야 “아이를 낳는 것”이 희생이나 도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를 낳고 품어 생명을 세상에 맞이하게 하는 일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역할입니다. 저는 이것을 ‘부담’으로만 보기보다, 여성이 지닌 고유한 가능성이자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로도 바라보고 싶어요.

임신은 단순히 한 사람의 선택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책임을 나누겠다고 약속하는 관계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결심이, 한 생명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이어질 때 그 상징성은 더욱 커지죠.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삶을 설계할 필요는 없고,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다만 저는 임신과 출산이 “희생”이나 “의무”로만 소비되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소중한 가능성으로 이야기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 2030 청년들이 과거의 좋지 않은 관행과 서로를 옥죄는 문화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전통적인 역할을 선택하라는 거냐, 역행하는 것이냐고 비판할 수 있겠죠. 중요한 건 “이상”을 강요하기보다, 현실에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이야말로 관계도 가정도 더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조금씩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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