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열아홉 시절, 남에게 말하지 않은 고민으로 새벽을 다 새웠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누워 나는 피곤함도 잊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했다. 이 생각은 습관과도 같아서 일과 중 의뭉스럽게 달라붙었다. 애써 외면한 생각들은 밤이 되면 슬금슬금 머릿속에 차올랐다. 그렇게 꼬박 새운 새벽은 늘어만 갔다.
‘내가 자유로웠던 적 있나?’로 시작된 물음이었다. 이내 곧 의문이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자유가 나에게 있던 적이 있나?’ 이 물음이 새벽마다 찾아온 불청객이다.
나는 자유를 원했다. 누구에게 형용되는 그 자유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직 내가 가져본 적은 없다는 걸 알았다. 하루는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였고, 따분했다. 나는 그 루틴 틈으로 변주처럼 튀어 오른 자유의 조각들을 조용히 관찰하기를 즐겼다. 어떤 체육 교사는 체육관에 학생들의 발길이 잦아지는 틈을 타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켰고, 또 음악 교사는 “안녕 얘들아”라는 안부를 그날 마음에 드는 음을 몇 개 골라 불렀다. 국어 교사는 점심시간 짬을 내어 단잠을 청했고, 과학 교사는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두더지 가족을 만났다는 터무니없는 경험담을 풀었다. 나는 그 사람들 삶에 깃든 자그마한 여유를 발견하는 걸 즐겼고, 그 순간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형용하게 되었다. 1교시가 시작된 지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 느긋하게 들어왔으면서도 천천히 책상에 몸을 뉘거나,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노트북을 앞에 두고 베이스 코드를 따거나, 수업은 듣지 않지만 자기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느라 주변 공기가 시끄럽거나, 청소 시간에 주섬주섬 짐을 싸 들고 이르게 귀가하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부러웠다. 지금의 나는 할 수 없다고 단정 지은 것들이 그들에겐 어렵지 않은 거 같았다. 나는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닌데, 그들은 나의 주인이 나인 거 같았다. 지금 나는 그럴 수 없는데, 그들은 그럴 수 있었다. 그래서 부러웠다. 한편으론 그들이나마 그럴 수 있는 게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겁이 많았다. 주어진 틀 안에서 나서지 않았다. 언제나 정해진 만큼의 공부를 했고, 일과를 성실히 지켰다. 고등학생이라는 본분으로 주어진 일을 바지런하게 했는데 마음이 편해질 날이 없이 더러 불안했다. 삶의 주도권을 쥐고 여유와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올바른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는 오래지만, 열아홉에 걸친 나이까지 그런 자유를 쟁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성실했지만 무의미했다. 그래서, 나는 가질 수 없다고 여기던 자유를 쥐는 사람들을 볼 때면 잠깐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스물이 된 내게도 같은 자유가 주어지길 바라며 얕고 긴 숨을 쉬었다.
스물이 되었다. 내 삶의 주도권이 온전히 나에게 왔다. 대학에 들고 수업을 듣고, 내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보내는 맛을 보고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태초의 감각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설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우연히 열아홉의 내가 적은 일기를 봤다. 이런저런 사람을 관찰한 내용이었다. 그 이면엔 나는 쥘 수 없는 자유라고 허망하게 바라만 보던 내가 있다.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도 자유의 자격이 있으며, 성실함을 벗는다고 크게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안다.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누구나 성장할 수 있도록’. 우연히 여행하는 선생님들을 모집하는 공고를 봤다. 나와 같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아무렴 다 괜찮다고 전하고 싶었다. 주어진 자유를 어색해하지 말고, 나를 잃지 않고, 편안히 숨 쉬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짬이 나는 시간에 요약본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읽더라도, 저녁을 먹을 때 영어단어가 아니라 친구와 밀린 대화를 나누더라도, 무거운 눈에 힘주며 새벽을 견디는 게 아니라 잠을 청해도 괜찮다고. 이 사회가 열아홉을 가둔 틀에서 벗어난다고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마음 편안히 너를 살아가라고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하는 선생님들과 함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