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 속 서랍
음산한 분위기. 위축된 남자의 어깨. 그가 터벅터벅 어디론가 향합니다.
딸랑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섯 층짜리 선반이 보이고 모든 공간이 괴상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카메라 궁금해서 다가서면, 아래부터 가지각색의 이빨들이, 중간에는 여러 모양의 안구들이 그리고 맨 위에는 돼지 코부터 사람코까지 다양한 코가 전시되어 있어요.
그렇게, 남자의 쇼핑이 시작됩니다.
그가 동그란 안구 두 개를 골라 옷을 입어내듯 텅 빈 눈에 끼워 넣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의 모습은 기대와 달리 괴상하고 뭔가 안 어울리고 심지어 무섭기까지 해요. 당황한 안내자(?)가 이번에는,
라면서 <드라큘라>에나 나올 법한 송곳니로 가득한 이빨을 쥐어줍니다. 괜찮아 보인다고 아부도 떨어보지만, 잘못 만들어낸 해독 주스처럼 그는 점점 더 괴상하기만 해요...
이후, 여러 가지 시도를 계속 해내갑니다. 이 많은 제품 중에서 설마 나에게 맞는 얼굴 하나 없겠어?라는 기대를 여전히 안은 채요. 하지만, 선반이 텅 비어버릴 때까지 남자는 자신에게 맞는 얼굴을 찾지 못합니다. 당황한 안내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이제 어쩐담? 고민하는 사이 종업원이 뭔가 번뜩 떠올랐는지 주섬주섬 상자를 꺼내 그에게 건넵니다. 안에는 실과 바늘이 가지런히 들어 있어요. 안내자는 드디어 찾았다는 듯 활짝 웃으며 그에게 건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이런 걸까요? 남자가 망설이다 실과 바늘을 받아 들고는 바늘에 실을 연결해 입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뚫어낸 살이 고통스러운지 신음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는 멈추지 않아요. 그렇게 실밥모양의 입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때서야 그는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둘은 약간은 만족한 듯 가게를 나와 "언젠가는 네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거야"라며 남자와 함께 술을 마시러 갑니다. 그렇게 짧은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꽤 흥미로운 스토리였던 거 같아요. 쇼츠에서 링크를 타고 6분짜리 영상까지 시청했으니까요. 얼굴이 없는 남자가 얼굴을 쇼핑한다. 이제는 얼굴, 표정까지 쇼핑해야 되는 세상인가 하고 씁쓸하긴 하지만 이미 우리의 보이지 않는 주머니 속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언제 발생할지 모를 돌발상황을 위해 항시 비축되어 있잖아요. 이 상황에는 이거, 저 상황에는 요거.
왜 하필 입이었을까? 오뚝한 콧날도, 잘생긴 눈도 아닌 입이라는 게요. 잘생긴 입?이라고 한다면 사실 그게 어떻게 생긴 건지(예전에 엔젤리나 졸리의 도톰한 입술을 가지고 싶어 필러를 넣었다는 기사를 기억하지만) 그 이미지가 쉽게 그려지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을 하다,
맛있는 걸 먹자. 고생한 나를 위해. 지친 나를 위해. 혹은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자. 상사 욕도 하고. 세상 욕도 하고. 이야기에서 안내자와 남자가 술을 마시러 가는 거처럼요.
그렇게 입을 사방으로 놀리고 나면 다시, 또 하루치 얼굴을 쇼핑할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벌써, 수요일입니다. 오늘 아침에 황급히 얼굴을 쇼핑하고 온 여러분이 되도록 빨리 그 얼굴을 반납하고 신나게 입을 놀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쇼츠 링크: 얼굴없는 소년의 쇼핑
https://www.youtube.com/watch?v=CLM-a9l9Z4o&list=WL&inde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