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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직남 Jan 07. 2024

담배 가게 아저씨와 아래로 흐르는 담배연기

단편소설집

자네, 그 소문 들었나?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그를 쳐다봤다. 어느 흡연실이나 그렇듯 흡연구역은 제2의 뉴스채널이자 온갖 카더라 통신이 남무 하는 집합소였다. 담배 한 두 개비를 피우며 오가는 대화만 엿들어도 소설 한 편은 그냥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러 오는 건지 이야기를 수집하러 오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김 과장은 전자담배를 뻐금거리며(지독한 연기 대신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또 다른 흥미로운 소문에 대해 말할 참이었다.  


어떤 소문이죠? 


강남역 근처 OOO 수제 담배 가게라고 들어봤나? 


내가 알턱이 있나. 내 유일한 담배 구매처는 어느 곳에나 있는 편의점이었다. 문을 열고 곧장 판매대로 가서는 가장 보편적으로 팔리는 담배 브랜드를 말하고 자일리톨을 함께 구매하면 끝. 요즘 담배값이 비싸 수제 담배를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 가게 담배는 연기가 아래로 떨어진다고 하더군. 


엥? 나는 반쯤 타들어간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담배연기는 공중에 뜨게 되어있다. 내가 두 발을 붙이고 이 땅에 서 있는 거처럼. 구체적인 과학적 이유를 설명하라고 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실제로 누가 담배를 피우면서 그런 거까지 일일이 생각하겠는가)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휘날리는 연기는 누가 봐도 가벼워서 뜰 수밖에 없었다.   


에이, 세상에 그런 담배가 어디 있어요?  


그도 못 믿겠다는 듯(이런 내 반응을 이미 예측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쪽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나도 처음엔 못 믿었지. 그런데 펴 보니까 진짜 아래로 떨어지더군.  


김 과장은 주머니 속에 고이 모셔놨던 고급 철제 담배 케이스를 꺼내 신중히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모르게 라이터를 딸깍여 정중히 불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과장은 한 모금 크게 빨아들였다. 저렇게 깊게 빨아들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리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뱉었다. 그러자, 입에서 분출된 한 줄기 담배연기가 다른 담배와 마찬가지로 곧게 뻗어 나오더니 이내 폭포수처럼 아래로 낙하했다. 마치, 분수대에서 뿜어지는 분수를 정확히 90도로 꺾어놓은 거처럼. 그 이미지가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어색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공중으로 부유하려는 연기를 힘껏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과장을 쳐다봤다.  


신기하지?

네... 어떻게 이럴 수 있죠?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그는 히죽히죽 웃고는 한 모금 더 갚게 빨아들이고는 천천히 내뱉었다. 담배연기는 아까의 장면이 일시적인 우연이 아니라는 듯 바닥으로 어쩔 수 없이 떨어지더니 한참을 맴돌다 흩어졌다. 


  


내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가게를 찾았을 때, 가게 앞은 샤넬 백 오픈런이라도 하는지 기다란 줄이 진을 치고 있었다. 대부분이 20~30대였다. 모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올릴 목적으로 가게를 방문한 거 같았다. 한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고 목 언저리에는 마이크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맨 끝 줄에서 내 차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부러움. 기다리면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가게 앞에는 1인당 한 갑. 하루 200갑 판매. 라는 문구가 굳건히 써 있었다. 꼬으면 집에 돌아가라는 듯.  다음으로 든 생각은 이게 과연 정상적인 건가? 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무언가로 다시 재생산됐다. 뭐가 됐든 정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담배연기라도 아래로 가라앉혀야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야 장사가 된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 참으로 이상한 세상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게 뭐라고, 난리들이라니... 물론, 그 기다란 군중 속에는 나도 있었다.  


순서는 빠르게 지나 꼬리에 있었던 나는 머리 부근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제 건물 내부와 투명한 유리창이 보였다. 안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와글와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길쭉한 가판대 뒤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로 기계적으로 담배를 한 갑씩 판매하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무척 무기력해 보였다. 장사가 이렇게 잘 되고 있는데 표정은 거의 셔터를 내리기 전 망해가는 가게 같달까. 그 사이 내 순서가 찾아왔고, 안으로 들어가 담배 한 갑이요. 말을 하려는 찰나, 주인은 다 안다는 듯 한 갑을 쓱 내밀더니 반대쪽 손으로 카드를 요구했다. 나는 카드를 건네고는, 


저기... 


말을 다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다음.이라고 말하며 사장은 얼른 비키라는 제스처를 내게 던졌다. 뒤를 돌아보니 지루한 기다림에 지친 일련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질문을 도로 집어넣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무의식적으로 비닐을 뜯어내고(비닐은 없었다)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연기가 잠깐, 공중을 맴돌다 아래로 추락했다. 이제는 담배연기가 춤을 추는 거처럼 보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 장면을 몇 번이나 연출하기 위해 담배를 빨아들였고 담배는 순식간에 끝에 달해 있었다. 


이거, 은근히 중독적인데?  


그렇게, 나는 매일 그곳에 줄을 서 담배 한 갑을 구매하고 있었다. 신기하리만치 이 담배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생각하는 담배라고 적어놔야 할 판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흡연자라면 누구나 돛대를 마주하면 좌절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그 순간은 꼭 담배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찾아온다. 오늘이 그랬다. 평소라면 그냥 내일 사러 가면 되지. 하고 넘겼을 테지만 도통 그럴 수가 없었다. 어제 자라에서 구매한 코트를 걸치고 크록스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편의점에서 그냥 아무 담배나 피워야겠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편의점을 향해 걸어가다 문득,  혹시, 열려 있을지 모른다. 


싶었던 거다. 꽤 멀지 않은 거리였고 닫혔있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냥 편의점을 들리면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널린 게 편의점이니까. 뭐, 산책도 할 겸. 역시나 가게는 닫혀있었다. 당연히 예측한 결과였다는 듯 돌아서려는 찰나, 빨간 불빛이 닫힌 커튼 사이로 비취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 작은 빈틈이어서 나는 이마를 유리창에 밀착시키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서야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작은 틈 안에는 무기력한 가게 주인이 있었다. 그의 옆에는 담뱃잎 한 뭉텅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아마, 내일 팔 200갑을 제조해 내고 있는 거겠지. 내 심장은 흥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추락하는 연기의 비밀을 파헤쳐 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역시나 뭔가가 있었다. 보통 수제 담배를 말 때는 필터 종이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담뱃잎을 사뿐히 피자에 치즈를 뿌리듯 뿌려대고는 만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하나가 추가되었다.   


필터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담뱃잎을 올리고는 얼굴을 거의 박듯이 담뱃잎에 들이대고는 잠깐, 한 1초 정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뭔가 중요한 의식이라도 치르는 거처럼. 그리고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담배를 돌돌 말아 옆에 가지런히 쌓아두었다. 그 행동의 반복이었다. 도대체 머리를 처박고 뭘 하는 거지? 그것만 찾으면 될 거 같았다. 나도 곧,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더 가까이 보려 해도 단단한 유리창은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내 이마만 더 붉어질 따름이었다. 그가 50개비 정도를 말고는 지쳤는지 자리를 이탈했다. 아마,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겠지. 지금이 기회야! 하고 나는 이쪽저쪽 각도로 고개를 움직여 그 작은 틈 사이에서 최적의 앵글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고정된 빈틈이다. 어떻게 보나 보이지 않는 건 똑같았다.  막, 포기하려는 찰나. 뒤에서 알 수 없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 돌자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가게 주인이었다. 내 얼굴은 거의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민망함과 쪽팔림에 상기되어 있었다.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주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딸깍. 문을 열더니,  


들어오시오. 라고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요전에 봤던 무기력함은 잠깐, 어딘가에 맡기고 온 거 같았다.  그는 선반에서 위스키 바틀과 잔 두 개를 가져오더니 한 잔을 가득 따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반은 어안이 벙벙해서, 또 반은 눈치를 보며 술잔을 받아 들었다. 독한 술이다. 그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술을 홀짝였다.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이제 이 짓도 지겨워지던 참이었거든요.  


나는 놀라 물어야 했다.  


왜요?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방금 보셨잖아요. 어떻게 만드는지.

도대체 뭘 하시는 거죠? 도통 알 수가 있어야죠... 혹시, 무슨 약재라도 첨가하는 건가요?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한숨이요.  


하고 아주 가볍게 내뱉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그를 쳐다봤다. 그는 이를 증명하려는 듯 방금 말다 만 담배로 향하더니 내가 멀리서 봤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는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주 익숙하게 담배를 돌돌 말아 내게 내밀었다.  


피워보시오.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불을 붙이고 필터를 빨아들인 다음 가볍게 내쉬어 보았다. 정말 연기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 비밀이 한숨이었다니... 김밥천국 아줌마가 완성한 김밥에 참기를 바르듯 그는 담배 한 개비에 한숨을 도포했던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숨은 무겁소. 가라앉을 수밖에.  


아, 그래서 배출된 연기가 올라가려다 아래로 내려오는 거였군요. 하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청난 비밀이었네요.

무기력한 비밀이지. 하루에 200번씩 한숨을 내숴보쇼. 무기력해질 수밖에.  


그러고는 그가 한숨이 나올 타이밍을 알아맞히고는 자연스럽게 담배에 입을 가져가 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전염이다. 나도 그의 행동에 전이되어 한숨을 내쉬려 하자, 그가 긴박하게 담배입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지금까지 본 그의 행동 중에 가장 빠르고 정확했다.  


한숨을 낭비하지 말게.  


그러고는 만족스럽다는 듯(그래봤자 한 개비였지만) 담배를 돌돌 말았다.  


조금 도와드릴까요? 한숨이라면 저도 남부럽지 않게 내쉴 수 있거든요. 내일 출근할 생각만 해도 벌써 한숨이 나올 거 같아요.  


그는 내 하품 따위 필요 없다는 듯(아마, 하품에도 질이 있는 게 분명했다)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야, 가진 거라곤 한숨밖에 없으니 이 일을 한다지만, 젊은 사람이 그래서 쓰나.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한숨이 나오지 않는 일을 하게, 미소가 나오는 일을 하게. 그게 전부야.   


그 뒤로 나는 그 가게를 찾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 비밀이 한숨이었다는 게 뭔가 찜찜하고 답답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회사에서 하루에 수십 번씩 한숨을 내지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보며 이미 몇 대의 담배를 피운 것만 같았다.  


하.. 나는 입 밖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오려는 한숨을 포착하고는 그대로 그것이 나오려는 입구 안으로 집어삼켰다. 꿀꺽.  


한숨을 낭비하지 말게.  라고 말했던 가게 주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

현재 라이터스짐에서 관원을 모집 중입니다. 우리 같이 글근육을 키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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