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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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연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연수 선생님은 운전할 때 도로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멀리 보라고 요구한다. 그래야 관찰하고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운전한 지 2주일 된 나는 그게 잘 안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차에 타면 너무 긴장된다. 그래서 멀리 보지 못하고 앞만 보이고 내비게이션 소리도 안 들린다. 그냥 도로 위 내 차 앞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 바란다. 선생님이 운전 중에는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 내 감각이 모든 걸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동물은 위험상황이라고 감지하거나 겁이 나면 시야가 좁아지고 소리가 안 들리면서 감각 인지 능력이 제한된다는데, 아무래도 운전은 내 뇌가 판단하기에 위험상황인 거 같다. 스스로를 위험상황에 계속 밀어 넣으면서 익숙해지면 시야가 넓어질 거라고 다독인다.
연수가 끝나면 이직사이트를 뒤적거리며, 넣을 공고를 정리한다. 처음에는 기업규모나 연봉, 직무 여러 가지를 보고 지원했다. 전 회사보다 규모가 작거나 연봉이 작은 공고를 보면 콧방귀를 뀌며 ‘내가 이런 곳 가려고 나온 줄 알아?!?‘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불합격에 비벼볼 수 있는 공고에는 다 넣고 있다. 처음에는 분명히 직무와 퇴사 후 삶에 대해 나만의 기준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경계선이 점점 희미해진다. 나를 알고 싶었는데, 또다시 ‘나’보다 ‘돈’이나 ‘회사’, ‘소속감’이 우선순위로 올라간 것일까. 나도 모르게 다시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니까, 또다시 어디든 들어가면 된다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내 삶을 잘못 운전하고 있는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불안감도 익숙해지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다독인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연수 선생님도, 내비게이션도, 가족도 나에게 알려줄 수 없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체셔 고양이와 앨리스가 길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앨리스 앞에 두 갈래 길이 나있고 길목 나무 위에는 체셔 고양이가 누워있다.
앨리스 : 어느 길로 가야 할까요?
체셔 : 어디로 가는데?
앨리스 : 모르겠어요.
체셔: 그럼 아무 길로나 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 어느 길로 가도 마찬가지야.
자동차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긴장감과 불안감은 내 삶의 운전대를 나만이 잡고 운전할 수 있다는 그 느낌과 비슷하다. 근시안적 시야를 갖는 건 내가 그만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다. 운전대에 나를 밀어 넣는 것과 같이, 두려움을 느끼더라도 멀리 그리고 긍정적으로 삶을 이끌다 보면, 이 두려움도 나를 포근히 맞아주겠지.